의사들의 신뢰성을 올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의사들의 신뢰성을 올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최근 2016년 미국 워싱턴대 보건계측평가연구소의 국제공동연구팀이 주관한 ‘전세계 질병부담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HAQ (Health-care Access and Quality, 보건의료 품질 및 접근성) 지수를 토대로 대한민국은 ‘보건의료 접근성과 품질’ 부문에서 90.3점을 받아 195개국 중 25위를 기록하였다. 비록 2015년에 비해 두 계단 떨어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대한민국이 의료강국임을 알 수 있는 수치이다. 또한 전국민을 대상으로 국가의료보험제도가 있어 많은 국민들이 의료혜택을 받을 수 있는 나라이며, 의료관광 및 여러 의료 산업이 발달되어 있는 나름의 의료 선진국이다.
그러나 이런 좋은 의료 수준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은 의사와 병원에 대해 긍정적이지 않다. 시장조사전문기관 엠브레인 트렌드 모니터(이하 엠트모)가 전국 만 19세 이상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병원이용과 관련한 전반적인 인식 조사”에 따르면 그 중 44.5%가 “많은 의사들이 환자의 생명보다 돈을 우선시한다.”라고 답했고 이에 비해 34.3%만이 “많은 의사들은 의사로서의 소명의식이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답했다. 또한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가 20대 이상 남녀 총 331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우리나라 국민의 공중보건 위험 인식 조사와 정책 활용 방안에 대한 기반연구’에서는 11.9%가 “의사에 대해 전혀 확신하지 않는다.” 라고 답했고, 50.5%가 “확신하지 않는다.”라고 답했다. 25.4%가 “확신한다.”, 7.3%가 “매우 확신한다.”라고 답하여 총 32.7%가 의사를 신뢰하는 태도를 보였지만, 62.4%는 신뢰하지 못하는 태도를 보였다. 즉, 의사에 대한 신뢰도가 국민 전반적으로 매우 낮은 수준이다.
그러면 국민들이 의사를 신뢰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엠트모가 전국 만 19-59세 성인 남녀 2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사회적 자본 및 전문가 권위와 관련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의사를 신뢰한다는 비율이 36.1%에 그쳤고, 그 이유로는 “환자를 대하는 태도”가 83.2%, “관련분야 경력”이 67%, “전문 분야의 좋은 평판”이 63.5%를 차지하였다. (중복응답으로 인해 총 합이 100%가 넘는다.) 가장 큰 이유로 “환자를 대하는 태도”가 뽑혔다. 가장 큰 이유로 뽑히는 요인은 바로 환자와 의사 간의 의료전달체계가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의료업은 서비스업의 일종이다. 환자들은 의료 서비스를 다른 서비스업과 마찬가지로 의료 서비스에 대해 선택가능하고 의사와 같은 의료 서비스 제공자들에 대해 컨설턴트나 보통 상담자로 여기기 쉽다. 그러나 의사를 단순히 컨설턴트나 상담자로 보기는 힘들다. 의료법 제 15조 2항에 따르면 의료인은 응급환자에게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최선의 처치를 하여야 한다. 즉 의사의 보건 행위는 의무성을 띠며, 이는 환자 입장에서는 강제성으로 보여질 수 있으나, 이는 합법적이다. 따라서 의사의 법으로부터 위임받은 권위는 존재하며, 그 권위를 바탕으로 환자를 설득하여 치료를 행할 의무도 지닌다.
그러나 권위만 가지고서 환자를 설득하려 하면 환자는 당연히 반발할 수밖에 없다. 또는 마음의 문을 닫아버릴 수밖에 없다. 시민건강증진연구소 김창보 사무국장은 “진찰실 문에 들어서서 나올 때까지 환자들은 의사 권위에 철저히 복종한다.”며 “묻고 싶은 말을 마음 속에 묻어야 하는 환자는 우리나라에 없다.”고 꼬집었다. 그러나 의사의 권위를 포기하는 것도 위험한 발상이다. 최근 의료의 경향이 의사중심에서 환자중심으로, 의사와 환자의 수직적 관계에서 환자의 병을 같이 치유해 나가는 동반자적 입장으로 옮겨가고 있지만, 의료 현장의 전문가는 의사이고, 이 전문가에게 권위를 위임한 것은 법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권위를 가지면서 환자의 마음의 문을 열려면 환자와의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하다. 이현석 대한의료커뮤니케이션 학회장에 따르면 환자와의 커뮤니케이션은 환자가 처한 입장, 가족관계 등의 이야기를 이끌어내면서, 환자의 마음과 영혼을 어루만져서 결국은 환자를 설득하여 의사와 환자 모두 올바른 방향으로 함께 갈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역할을 한다. 증상과 치료방법에 대한 충분한 설명, 그리고 환자와의 올바른 커뮤니케이션을 통한 라포(rapport) 형성으로 의사와 환자 서로 윈윈할 수 있는 그러한 관계를 만드는 의료전달체계를 갖추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 한국의 진료시간은 이러한 의료전달체계를 갖추는 데 힘든 배경을 제공한다. 한국에서는 짧은 진료 시간을 빗대어 “3분 진료”라는 말이 생겨났다. 실제 조사로도 이 현상을 뒷받침한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일산병원 연구팀에 따르면 평균 진료 시간이 4.2분으로 나타났다. 이는 라포를 형성하여 올바른 커뮤니케이션을 사용하는 데에 매우 짧은 시간이다. 긴 진료시간은 올바른 의료전달체계를 위해 필요하다. 의사는 환자를 새로운 행동으로의 변화로 유도하는 역할을 하여야 한다. 이는 상담학 사전(김춘경 외 5인 저)에 따르면 NLP(Neuro Linguistic Programing ; 인간의 무의식적 경험처리 구조를 의식화하여 새로운 해동으로의 변화를 유도하는 접근)에 해당한다. 이 책에서는 NLP를 위해서는 라포(rapport)형성이 전제가 되어야 함을 역설하고 있다. 라포 형성을 위해서는 여러 행동양식들이 필요하며, 이 행동양식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함을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긴 진료시간은 환자와 의사의 신뢰, 더 나아가 의료의 질에 매우 필수적이다. 엠트모가 실시한 “병원이용과 관련한 전반적인 인식 조사”에서도 환자 중 66.9%가 “병에 대해 길게 대화를 하는 의사가 좋다”라고 답하였을 정도로 의사와 환자 간 긴 대화는 매우 중요하다.
전에 언급했던 HAQ 지표를 통해 의료 최선진국으로 평가받았던 아이슬란드(1위), 노르웨이(2위), 네덜란드(3위), 룩셈부르크(4위), 핀란드(5위) 등도 길게 진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그레그 어빙 교수를 비롯한 국제공동연구팀이 실시한 조사에서 아이슬란드는 67개국 중 14위로 15분을 기록하였고, 노르웨이는 67개국 중 4위로 18분대를 기록하였으며, 핀란드는 5위, 룩셈부르크는 12위, 네덜란드도 10분 이상을 기록하였다.
긴 진료시간이 주어지더라도 의사는 환자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또 다른 커뮤니케이션 기술이 필요하다. 미국에서는 환자로부터 소송을 자주 당하는 의사와 유사한 의료과실에서 소송을 덜 당하는 의사를 연구한 결과, 이들이 환자를 대하는 태도에서 차이가 발생한다는 것을 알았고, 이를 토대로 어떻게 환자를 대해야 하는지를 의사들에게 교육 중이다. 이를 벤치마킹하여 한국 의료 교육계에서도 많은 조치를 취하고 있다. 예를 들어 서울대학 의과대학 교육과정 중에는 환자, 의사와 사회의 관계에 대한 교육을 의대생들에게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긴 진료시간은 의사 개인이 실현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진료시간은 여러 경제학적 원리와 사회적 원리들이 개입하여 결정되기 때문이다. 전에 언급했던 그레그 어빙 교수 및 국제공동연구팀이 실시한 조사에서도 진료시간은 인구 대비 의사 수, 방문환자 수와 의료 접근성, 당뇨 같은 외래진료에 민감한 질환의 비중, 의사의 업무 효율성, 보건 의료 제도, 의료관행 (ex 예약제) 등의 여러 요인에 의해 영향 받는다고 나와 있다. 따라서 긴 진료시간을 위한 의사 본인의 의지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이를 위한 여러 토대들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은 의료 수준이 높은 편이다. 그러나 환자들이 의사에 대해 가지는 불만은 높아 보이고 신뢰도는 낮아 보인다. 따라서 의사 본인의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노력과 그 노력을 뒷받침해 줄 긴 진료시간과 이에 따른 여러 사회적 대책들이 마련된다면, 우리나라는 진정한 의료 선진국이 될 것이다.

유현수 기자/가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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