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와 사회적 참여

의사와 사회적 참여

대한민국에서 의사라는 직업은 많은 사람들에게 선망의 대상이며, 이중적으로 또한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다. 그 이유는 바로 안정적인 직업이 보장된다는 점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취업이 잘 되는 과를 전공하여 공과대학을 졸업해도, 좋은 학교의 경영학과를 나와도 더욱 많은 것들을 요구하는 사회 속에서 대부분의 대한민국 20대 청춘들은 자신의 삶을 누구보다 주동적으로 가꾸고 남과의 다양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하지만, 지금까지 내가 살아 온 의대생의 삶은 지금까지 능동적으로 이렇게 살아온 같은 또래의 친구들과는 많은 부분이 다르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필자는 현재 의과대학 본과 1학년에 재학중이고, 다른 학교를 다녀본 적도 없이 현역으로 지금의 학교에 들어왔다. 그래서 다른 과에 재학중인 친구들의 삶은 경험을 해 본 적도 없고, 옆에서 지켜 보기만 했다. 3년의 시간 동안 필자의 삶과 비교해 보면서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우리 의과대학의 교육은 우리에게 세상에 대한 넓은 시각을 제공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지금 대부분의 내 또래 의대생들과 의사가 되신 선배님들께서는 우리가 속해 있는 의사 사회 말고, 오히려 의사들이 속해 있는 이 대한민국 사회에 대한 관심과 참여도가 현저히 낮아 보인다. 주변 동기들과 대화를 해 봐도, 정치적인 문제나 사회적 이슈에 대한 주제에 대해서는 거의 얘기를 하지 않는다. 대한민국 수능을 전국 1% 안으로 성적을 받고 대학교에 입학한 우수한 인재들이, 우리나라를 이끌어야 할 리더들이 어째서 우리 사회에 대한 무관심이 일상이 되어 버린 것일까. 필자가 이에 대하여 여러 동기들의 의견과 개인적인 견해를 종합해 본 결과, 이에 대한 가장 큰 원인은 바로 의과대학의 교육 시스템과, 의사들의 여유 없는 삶, 그리고 폐쇄적인 의사 사회라는 결론이 나왔다.
일단 첫 번째 원인인 의과대학의 교육 시스템에 대하여 생각을 해 보자. 모두 알다시피, 의과대학은 예과 2년, 본과 4년을 포함하여 총 6년간의 교육 시스템을 기본 방침으로 하고 있다. 그렇다면 의대생들에게 예과와 본과는 각각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까. 우선, 예과는 거의 모든 의대생들이 동일하게 말하는, 일명 ‘합법적으로 놀 수 있는 마지막 시기’ 이다. 실제로, 일반 임상 의사가 되는 과정의 경우 예과를 지나면 본과 4년이, 졸업을 하고 나면 인턴과 레지던트라는 수련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일과 공부에 쫓기지 않고 여유로운 시간을 가질 수 있는 때는 예과가 사실상 마지막이다. 예과 때 선배님들이나 의사 선생님들을 만났을 때 가장 많이 듣는 소리가 ‘예과 때 많이 놀아 둬라’ 일 정도로, 의대생에게 예과는 자신을 성장시키고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시기이다. 그에 반해서 본과는, 한마디로 톱니바퀴 그 자체이다. 물론 본과 때도 자신이 하고 싶은 것들을 하고 살 수는 있지만,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빡센 수업과 2~3주에 한 번씩 있는 시험 스케줄 때문에 공부에 치여서 사는 의대생들이 대부분이다. 이러한 교육 시스템 속에서, 예과 때 사회의 여러 이슈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학생도 본과에 오면 그러한 관심들이 우선순위에 밀리는 일이 태반이고, 원래 관심도 없던 학생들이 본과 진입식 후 그러한 생각을 갑자기 하는 일도 거의 없다. 항상 유급을 걱정해야 하고 폐쇄적인 사회 속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 공부하는 이러한 환경 아래에서, 의사와 관련 없는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는 것이 어쩌면 불가능 해 보인다. 또한, 이러한 힘든 과정을 거쳐 의사가 되었다면 그 때는 과연 사회에 대한 관심을 가질까. 물론 학생 때에 비해서 그러기에는 좀 더 나은 환경에 있는 것은 분명하다. 특히 개인 병원을 차리는 경우에는 학생 때에 비해 자신에게 주어지는 시간도 많고, 수입도 어느 정도 있기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기 위한 매우 좋은 요건이 주어진다. 하지만, 굳이 그 의사가 그 때가 되어서 사회에 관심을 갑자기 가지게 될까? 환자만 잘 받고 병원 경영만 잘 하면 어느 정도의 충분한 수익이 들어오는 상황에서, 굳이 다른 직종의 사람들을 많이 만나지도 않는 의사가 사회적 이슈에 대해 갑자기 큰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흔한 일은 아닐 것이다.
마지막으로, 폐쇄적이고 수직적인 의사 사회도 의사의 사회적 참여를 줄이는 하나의 큰 요인 이다. 보통의 일반적인 사회에서는, 각 사회의 구성원들이 자신들, 자기가 속해 있는 단체의 익을 위해서, 손해를 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사회에 참여한다. 하지만, 지금 의대생들, 의사들이 속해 있는 사회는 그러한 일반적인 사회와는 많이 다르다. 어느 사회보다 폐쇄적이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를 다 알고, 구성원들끼리 묵과하고 지나가는 것은 상식에 벗어나는 일일지라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구성원들이 자신의 의견을 강력하게 피력할수록 자신만 손해를 보게 된다는 사회적 분위기이다. 의견을 아무리 피력하고 싶어도, 잘못된 일에 대하여 반대 입장을 밝히고 싶어도 주변 구성원들의 눈치를 보느라 그러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6년 가량을 지내온 의사들이, 사회에 나가서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개진할 수 있을까.
의사들의 사회적 영향력을 증대시키고, 사회적인 참여도를 증가시키기 위해서는, 필자는 두 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우선 첫 번째는, 폐쇄적인 의사 사회를 좀 더 개방적이고, 민주적인 사회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물론 이는 하루아침에 바뀌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자신들의 의견이 같은 사회의 구성원들에게 피력되고, 이에 따라 사회 전체가 한 구성원의 말을 경청하는 사회가 만들어 져야 의대생, 의사들이 사회에 참여하려는 환경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닐까. 이를 위해서는 의과대학 선배, 후배 간의 많은 대화와 소통이 필요하고,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 가고자 하는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두 번째로는, 의대생들의 학업적인 스트레스를 줄여 주는 것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본과 학생들이 현재 직면해 있는 공부량과 스트레스는 일반적인 학생들이 생각하는 것 그 이상이다. 학업적인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서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로, 절대평가 제도를 도입하는 것을 필자는 제시한다. 사실 하나의 의사가 만들어지기 위해서 필요한 공부량은 정해져 있고, 이를 줄이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 그래서 필자가 제시하는 것은, 필수적인 공부량은 그대로 두더라도 남들과 끊임없이 경쟁해야 하는 의대생들의 학업 스트레스라도 줄여 주자는 것이다. 실제로 현재 두 개 정도의 의과대학에서 절대평가를 시행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 제도를 도입을 했을 때 학업 성취도에서 절대평가를 시행하지 않는 학교들에 비해 전혀 떨어지지 않는 성취도를 보였고, 국가고시 합격률도 오히려 매우 높은 경향을 보여 주었다. 학업량을 줄일 수 없다면, 제도적인 변화를 통해 의대생들의 부담을 덜고, 그 시간에 다양한 다른 방면의 사람들과 만나고 시야를 넓힐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김동규 기자/가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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