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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카시오페아>, 치매 환자와 보호자들의 북극성을 찾아가는 길

[출처: pexels]

 

“서로 살면서 안 힘들게 하면 좋을텐데.” 영화 <카시오페이아>의 극 중 캐릭터 수진(서현진)이 아버지(안성기)에게 한 말이다. 수진은 딸 지나를 가진 엄마이자, 치열하게 사는 변호사다. 그런 그녀가 알츠하이머 병을 진단받으면서 아버지 인우는 다 큰 삼십 대 딸을 간병하게 된다.

 

영화는 수진이 기억을 잃어가는 과정과, 그녀를 간병하는 아버지, 그리고 다른 치매 환자들의 모습을 담아냈다. 사회적으로나 가정적으로나 번듯하게 살던 그녀는, 자기 힘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를 받아들이기까지 극심한 감정변화를 겪는다. 자살을 시도하기까지도 한다. 그리고 수진도 결국엔 여느 치매 환자들과 동일한 경과를 보인다. 그렇다면 수진이 그토록 두려워했던 ‘영혼 없는 삶’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리고 그녀의 아버지는 어떻게 딸의 곁에 있었을까?

 

수진의 아버지는 매일 오전 11시, 밤 11시가 되면 양치를 한다.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늙어 기억을 잃더라도 몸이 기억하는 습관 한가지를 만들기 위해서다. 두 번째는, 습관을 반복하다 보면 동일한 행동 속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수진은 매일 같은 루틴으로 살기 시작한다. 때가 되면 분리수거를 하고,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고, 저녁을 먹고, 손뼉을 치며 밤산책을 한다. 이런 루틴은 그녀가 홀로 있어야 하는 순간에도 작동하며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동안 자신의 정체성을 이룬 수많은 관계, 기억, 직업을 다 잃은 그녀가 살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이는 영화의 제목이 ‘카시오페아’인 것과 관련이 있다. 밤하늘에서 움직이지 않고 한결같이 그 자리에 있는 별은 북극성이다. 그러나, 하늘에서 바로 북극성을 찾을 수 있는가? 실제로는 찾기가 만만치 않다. 그래서 카시오페아라는 ‘W’모양의 별자리가 필요하다. 카시오페아는 밤하늘에서 가장 밝게 빛나는 별자리로, 누구나 금방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수진의 삶의 이유가 북극성이라면, 아버지, 딸, 주위 사람들은 그녀가 자신만의 북극성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카시오페아다.

 

우리 사회도 치매 환자들에게 카시오페아가 되어줄 수 있다. 고령 인구, 1인 가구가 많아지는 시점에서, 치매 환자에 대한 사회의 돌봄이 더욱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과연, 우리 사회는 현재 치매 환자들, 그리고 그 가족들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을까?

 

2018년, 전 문재인 대통령이 치매국가책임제를 추진함에 따라 2018년부터 2022년까지 전국에 치매안심센터가 설치되었다. 치매안심센터는 지역사회에서 치매 예방, 조기진단 그리고 관리를 담당한다. 지역사회에 거주하는 어르신들은 인지건강 상태(치매 환자 및 가족; 치매 고위험; 진단 미상; 정상)에 따라 알맞은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다.

[치매안심센터 업무 흐름도, 출처: 대한민국 정책 브리핑 홈페이지]

 

치매 환자의 가족은 돌봄부담분석 검사, 자조모임, 상담 등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한글판 우울증 선별도구(PHQ-9), 신경정신행동검사 간편형(NPI-Q) 등의 돌봄부담분석은 치매 환자 가족의 돌봄부담 요인을 파악하여 적절한 돌봄 서비스를 연계해주는 데 사용된다. 또한, 전국에는 총 1,820개의 자조모임이 있다. 중앙치매센터 홈페이지에서 우리동네가족모임을 클릭하면 우리 동네에서 진행 중인 자조모임 목록이 뜬다. 이외에도 홈페이지를 통해 간편하게 본인에 상황에 따라 무슨 지원을 어디서 받을 수 있는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전국 자조모임, 출처: 중앙치매센터 홈페이지]

 

만일 치매 환자가 의사결정 능력이 저하되어 본인의 후견인을 선임하기 어려운 경우에 성년후견제도를 이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치매 공공후견사업’이란 것도 있다. 성년후견인이란 질병, 노령 등으로 정신적 제약을 가진 인물을 대신하는 법정대리인이다(한경 경제용어사전). 예를 들어, 가족이 없는 노인이 치매나 기타 질병에 걸려 정상적인 의사결정을 하지 못하는 경우에, 공공후견인이 사회복지서비스, 의료서비스, 재산관리 등 각종 후견 업무를 피후견인에게 제공한다.

 

치매 환자와 가족들이 겪는 어려움 중 하나는 치매 환자가 보이는 정신적인 증상이다. 즉 무기력, 우울, 분노 등이 치매에 동반되어 나타나는 증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영화에서도 나왔듯이, 수진이는 감정적으로 격해지면서 자살을 시도하고, 주위 사람들에게 시비를 걸고, 종이를 먹는 행동을 반복했다. 이런 행동들이 치매 환자를 요양시설로 보내게 되는 이유가 되곤 한다.

 

이런 증상은 정신행동증상(Behavioral and Psychological Symptoms of Dementia; BPSD)이라고 임상적으로 명시되어 있다. 중요한 점은 경우에 따라 치료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보호자들이 BPSD에 대해 알고 병원에 도움을 요청한다면 BPSD로 인해 겪는 어려움들을 조금이나마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치매에 대한 사회적 돌봄체계에 대해 알아봤다. 국가 차원에서 다양한 지원책을 마련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다. 그러나, 이러한 시스템도, 치매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이 모든 지원은 치매 환자가 자신의 삶을 살아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기 때문이다. 제철웅 한양대 법대 교수의 칼럼을 인용하자면 “자기결정권의 존중과 의사결정지원은 치매환자만이 아니라 노인 세대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문화를 다시 일깨우는 것이기도 하다. (중략) 치매환자가 가족, 이웃과 더불어 살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면 가족의 부담은 저절로 덜어질 것이다.”

 

어쩌면, 기억을 잃는다는 것은, 매일매일 새로운 북극성을 찾아가는 길이 아닐까. 그리고 가족과 사회가 해줄 수 있는 일은, 매 순간 그들이 북극성을 찾도록 옆에 있어주는 것이 아닐까. 기억이 사라진다고 해서 내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듯이, 북극성이 안 보여도 카시오페아만 보이면 북극성을 찾을 수 있듯이 말이다. 다만 그 여정이 너무 힘들지 않도록 우리 모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김현 기자/연세원주

<lisa051223@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