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의 자격

의사의 자격

일부 의대생에 의한 불미스러운 성범죄와 폭행 사건을 돌아보며

  사건 개요 법적 처분 학교의 처분 가해자 현황
고려대 의대생
성추행 사건
(2011)
본과 4학년 남학생 3명이
술에 취해 잠든 동기
여학생을 집단 성추행하고
이를 카메라로 찍음
성추행 장면 촬영한 혐의가
인정된 박씨는 징역 2년 6개월,
한씨와 배씨는 각
징역 1년 6개월 확정
 전원 출교
(재입학 불가)
가해자 중 한명 성대의대 재입학,
한명 지방 의대 재입학 
조선대 의전원생
데이트 폭력 사건
(2015)
의전원생 여자친구
4시간 넘게 감금, 폭행
벌금형 선고,
항소심에서 감형 
제적  대학 상대로 제적처분
무효 확인 소송 제기(2017. 3) 
차의과대학 의전원생
지하철역 몰카 사건
(2015)
여자친구와 친동생을 포함한
여성 183명의 치마 속 몰카 촬영
기소유예  제적   부산 지역 치전원 재입학

▲  의대생 성범죄/폭행 사건 정리(공론화된 것 기준, 정리: 의대생신문)

 

모든 의대생들은 졸업식 날 의사로서 새로운 첫걸음을 떼면서 제네바 선언의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낭독하게 된다. 예로부터 오랜 관례로 내려오는 이 선서식은 의대생들에게 의사로서의 기본적인 마음가짐과 의사가 갖추어야 할 자격을 새로이 되새겨주는 과거로부터의 가르침이다. 졸업생들이 새로운 시작을 하듯 우리 또한 의사의 자격과 의미를 선서에서부터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성범죄나 폭력 등으로 타인의 신체를 해한 의대생은 의사가 될 자격이 있는가?

왜 하필 의사인가?

의료법 제8조에 따른 의료인의 결격사유는 ▲정신질환자 ▲마약·대마·향정신성의약품 중독자 ▲금치산자·한정치산자 ▲의료 관련 법령을 위반해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 받은 자 등이며 제 10조에 따른 국가시험 응시자격의 제한은 ▲부정행위를 한 자에게만 해당된다. 이 사항 중 성범죄자에 대한 제한 사항은 없다.
다른 많은 직업들 중에서 왜 하필 의사라는 직업이 성범죄 등에 있어서 직업제한의 대상으로 언급이 되는 것인가? 이는 의사의 직업 특수성과 관련이 있다. 의사-환자 관계의 여러 가지 모델 중 하나인 파슨스의 구조기능주의 모형은 이를 잘 나타낸다. 우선, 의사와 환자의 관계는 상호의존적인 관계이다. 또 이 관계는 자발적인 관계가 아니라 사회에 의해 주어진 관계인데, 의사는 면허를 통해 그 역할을 부여 받고, 환자는 진단서에 의해 그 역할이 결정된다. 그런데 의사와 환자간의 이 상호의존성은 사회적 합의에 의한 불평등한 관계이다. 이러한 관계가 비롯되는 권위적 상황에는 의사면허증을 통해 사회로부터 인정받은 전문인이라는 전문적 권위와, 의학정보가 의사에게 독점되어 있는 상황에서 의사에게 주어진 상황적 종속 등이 있다.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환자는 처음 의사를 접했을 때, 전혀 모르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합의의 기저에 깔린 신뢰와 믿음을 전제로 의사와의 관계를 시작하게 된다. 물론 최근에는 환자의 권리 상승으로 인해 이러한 불평등한 관계가 어느 정도 완화되었을 것이나, 그렇다고 해도 사회적으로 정형화된 이 관계의 틀은 아직 남아 있다. 이에 더불어 의사는 환자의 신체를 다루는 직업이다. 즉, 환자는 의사가 자신의 신체를 다룸에 있어서, 적어도 의사-환자 관계 형성의 시작 단계에서는 의사를 믿을 수 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일부 의사들이 이를 악용하고, 성범죄 등 사건사고로 이어지면서 신뢰를 깨는 일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는 비단 의사뿐만이 아니라 위와 맥락을 같이 하는 사회적 합의에 의한 신뢰를 바탕으로 신체를 다루는 다른 직업에도 해당될 수 있을 것이다.

직업 선택의 자유 VS 안전한 진료를 보장받을 권리

혹자는 사람은 변할 수 있으므로 과거의 일만으로 낙인을 찍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또 독일의 성범죄자 면허 취득 제한에 대해 다른 문화이기 때문에 법과 윤리의 잣대가 다를 수 밖에 없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해보아야 할 것은 우리에게 필요한 의료계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이다. 유연한 법에 의해 성범죄에 대한 인식이 답습되고, 지속적으로 의대생의 성범죄 사건이 일어나는 모습인가, 아니면 엄격한 규제 덕에 이 문제가 근절된 모습인가? 어떠한 모습이 이 의대생들이 진정한 의사로서 사회에서 제 역할을 할 때 환자들을 위한 것인가? 애초에 ‘처분이 너무 강경한 것이 아닌가’하는 의문이 드는 것은 우리가 속해 있는 사회가 만들어낸 인식의 영향 하에 있다. 조선대 데이트 폭력 사건에 대해 1심 법원에서 벌금형 1200만원을 선고하면서 내린 판결인 ‘피의자는 의학전문대학원생으로 집행유예 이상의 형을 선고 받을 경우 학교에서 제적될 위험이 있다’는 우리가 속해 있는 사회의 법의 현재를 나타내는 단적인 사례이다. 그러한 인식 자체가 문화의 틀 안에 갇혀 있는 것일 수도 있다는 점을 인지하고, 틀 밖으로 나와 어떤 것이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차의과대학 의전원생 몰카 사건에서 가해자가 재입학한 치전원의 관계자는 “해당 학생이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고, 의료법상 의사가 될 자격이 박탈된 것은 아니기에 재학에 문제가 없다”면서 “학생이 다시 인생을 살아갈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는 판단을 내렸고, 학교에서 관심을 기울일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필자가 주장하고자 하는 것은 가해자의 인생에서 모든 기회를 박탈하자는 것이 아니다. 단, 직업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적어도 의사, 혹은 사람의 신체를 다루는 직업 등에 한해서는 직업 선택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일련의 불미스러운 사건들에 대해 가해자의 인권에 대해서는 말이 많지만, 정작 가해자들이 이후 의사가 되었을 때 진료를 받을 환자들의 권리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다. 그러나 함께 일하게 될 동료를 형제처럼 여기기는커녕, 폭력으로 전치 3주의 부상과 씻을 수 없는 정신적 상처로 PTSD까지 이르게 한 사람이 과연 의사로서 인간의 생명을 존중할 수 있다고 볼 수 있는가? 또, 성범죄를 저지른 학생들이 산부인과나 소아과를 돌게 될지도 모른다는 환자들의 불안감은 누가 대변해주는가?

우리에게 필요한 것

성범죄를 저지른 의대생들도 국가고시를 보고 의사가 될 수 있는 현재, 당장 필요한 것은 가해자에 대한 엄중한 처벌, 그리고 특히 빈번한 같은 학교 의대생 상대의 성범죄의 경우 피해자를 위한 보호 장치이다. 올해 일어난 인하대 의대 성희롱 사건에 대해서도, 피해자와 가해자가 모든 수업을 같은 공간에서 들어야 하는 상황에서 학교 측에서 피해 학생들을 한 분단에 모여 앉히게 하여 신상노출 등의 문제로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솜방망이 처벌로 지속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성범죄 문제에 대해 강경한 대응이 필요하며, 가해자의 인권은 보호하면서 정작 피해자의 정신적 고통은 보지 못하는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성균관대 의대/의전원 학생회의 성명서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려있다. “의대생의 선발에 고려되어야 할 가치가, 비단 성적만이 아님을 주장한다.” 고대 의대생의 성대 의대 재입학에서 드러났듯, 입학 과정에서 성적만이 아닌 기본적인 인성에 대한 검증이 필요하다. 가해자들이 재입학한 대학들은 그들이 입학할 당시 과거 행적을 몰랐으나 뒤늦게 알게 되었고, 이미 입학 절차를 거쳤기 때문에 학교를 재학 중인 이상 그들을 방출하는 것은 오히려 인권 침해라고 말한다. 범죄의 행적이 있는 사람들을 선발하는 것은 학교의 권리이지만, 학교 측에서는 적어도 입학 과정에서 이러한 행적이 있었던 사람임을 인지하고, 고려사항에 포함시켜야 할 필요가 있다. 범죄 경력에도 불구하고 각 학교의 교육 목표나 인재상에 부합할 수 있는 사람인지 생각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독일의 경우에는 국가고시를 응시할 때 범죄사실확인서를 제출해야 한다. 이러한 방법이 아니더라도 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들 간에 성범죄 등 중한 사유로 출교 혹은 제적 처분 받은 학생들의 재입학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윤리 교육과 성범죄 교육이 더욱 강화되어야 하는 것은 덤이다.
현재 화두가 되고 있는 것은 의사의 면허 취소와 관련된 법안이지만 의대생의 면허 취득에 대해서는 특별한 언급이 나오고 있지 않은 실정이다. 앞서 언급된 대안들은 결국에는 범죄가 일어난 후이거나 문제를 뿌리뽑기에는 어려운 미봉책이다.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 최종적으로 필요한 것은 의료인 면허 취득에 대한 규정의 수정이다. 결격 사유나 국가 고시 응시 자격의 제한의 항목에 성범죄나 폭력 등 타인의 신체를 해한 경우를 포함한 후, 범죄의 경중이나 재발 가능성 등 사건에 따라 여러 요인을 고려하고 면밀히 검증하여 결격자를 골라내는 성범죄/폭력 사건 담당 위원회까지 마련되는 것이 필자가 생각하는 현재로서 최선의 대안이다.
성균관대 의대 학생회에서는 고려대 의대 성추행 사건의 피의자가 학교를 다니고 있음을 알게 된 후 이에 대한 성명서를 낸 바 있다. 또한 조선대 의전원 데이트 폭력 사건에 대해서도 대한 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 학생협회(의대협)에서 의학전문대학원생이라는 이유가 폭력에 있어 선처 대상이 될 수 없음을 말하며, 피해 학생 보호 등에 학교 측이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내기도 했다. 이렇듯 성명서 등을 통한 의대생들 사이에서의 문제인식에 대한 공유뿐만 아니라 여론으로의 공론화 또한 중요한 후속 조치 중 하나이다. 특히 여론의 반응은 선례에서 그랬듯이 학교의 조치를 더 엄중한 쪽으로 바꾸어 놓기도 할 만큼 영향력이 크다. 이로써 의료계와 사회 전반에 의료인이 되기 위한 자격 요건이나 일부 의대생의 성범죄나 폭력에 대한 문제인식이 널리 퍼지게 되면 이것이 또 다른 변화의 바람을 불러 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의대생들이 의사가 되는 과정에서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아무 거리낌 없이 읊으며 언행 일치할 수 있는 사회가 오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