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을 고이 간직한 의사

<아픔을 고이 간직한 의사>
여복동 경북대학교 본과 3학년

“어르신, 간식 많이 드시지 말구요, 혈당조절 꼭 열심히 하셔야 해요!”
본과 3학년, 실습을 시작한 이후로 이토록 진심이 담긴 말을 한 적이 없었다. 내분비 내과에 입원을 하여 눈이 점점 어두워져 가는 어르신에게 학생 신분인 내가 실습을 마무리 하며 마지막으로 해드릴 수 있는 것은 이 미약한 당부가 전부였다. 사실 지금까지의 10달 여 간의 실습이 이렇게 애처롭지는 않았다. 매주 밀려드는 환자 케이스와 과제들, 그리고 모의고사 공부에 허덕이며 밀려오는 과제들을 동기와 선배들의 도움으로 버텨내기 일쑤였다. 그러다 처음으로 10달 만에 발표를 위한 환자가 아니라, 내가 가보고싶어서 찾아가는 환자를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의과대학에 입학하기 전부터 내가 상상으로만 해오던, 의학적 지식을 실제 환자에게 적용해 봄과 동시에 환자의 아픔에 공감하고 라포를 쌓는, 그런 영화에서나 볼 법한 이상적인 실습을 하게 되었다. 이상하게도, 이 환자분께는 설명할 수 없는 안타까움을 넘어선 애정이 생겼다. 그 이유를 잘 설명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그 이유들 중 하나는 약 3년 전 여기 동일한 병원에서 같은 옷을 입고 병마와 싸우다 하늘나라로 가신 아버지의 모습이 일부 투영된 것이 아닐까. 비록 전혀 관계가 없는 두 질병이지만 단순히 질병으로 인한 아픔을 넘어선, 환갑 언저리의 아저씨들이 겪어야 하는 고통과 주변 사람들의 아픔이 공감이 되었다. 평소 같았다면 혼나지 않기 위해 가기 싫은 몸을 이끌고 억지로 physical exam을 하고 보고서를 작성하였겠지만, 이번만큼은 나의 이런 미약한 의료행위가 이 환자분께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나의 발표를 통해 환자분을 담당하고 계신 선생님들이 환자의 불편함을 더욱 잘 알게 되기를 바라며 열심히 환자분의 몸을 살피고 찾아뵈었다. 그리고 발표나 성적과 전혀 관계없는 환자의 가족에 대해서, 의학이라는 테두리 바깥에 있는 환자의 아픔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비록 아직 내가 환자분의 불편함을 덜어드릴 순 없었지만, 앞으로 의사가 되었을 때, 이 어르신을 대하는 것과 같이 병원에서 일을 하게 된다면 힘든 일상 가운데서도 행복과 보람을 가지고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란 아주 작은 희망의 싹이 마음속에 싹트게 되었다.
‘좋은 의사란?’ 이라는 주제를 본 직후부터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 까지, ‘좋은 의사’에 대하여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직관적이고 쉬운 속성은 ‘아파 본 적이 있는 의사’이다. 흔히들 말하는 ‘좋은 의사’의 속성에 가장 흔히 등장하는 3가지를 꼽자면 아마 실력, 인성, 열정일 것이다. 이들 중 어느 한 가지라도 없으면, 좋은 의사의 모습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도 가지기 어려운 이 속성들을 모두 가지게 하는, 좋은 의사가 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일까? 그것은 본인이, 혹은 본인보다 더 사랑하는 누군가가 아픈, 아팠던 경험이 있는 것이다. 본인이 어떠한 질병으로 아프다면, 혹은 가슴깊이 사랑하는 누군가가 어떤 질병으로 인해 아팠던 경험이 있다면, 그 의사는 그 질병에 대해서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할 것이며 존재하는 모든 치료법과 권위자의 논문들을 찾아보며 그 질병에 관한 정보를 얻을 것이다. 그 의사에겐 그 질병에 대한 정보가 단순한 지식이나 시험점수가 아닌, 생존에 관한 문제이기에 그 질병에 관하여서 만큼은 누구보다 뛰어난 실력을 갖게 된다. 또한 생존의 문제에 있어서 미지근한 열정으로 달려드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살고자 절박하게 1분 1초를 아껴서 당면한 문제에 대해서 고민하고 해결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 환자의 아픔과 주변 사람들의 고충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알기에, 환자를 자신의 가족처럼, 본인처럼 대할 수 있는 자질을 갖추게 된다. 이는 누군가가 가르쳐 준다고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닌, 오직 본인의 쓰라린 아픔을 통해서 체득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얻은 경험은 결코 평생 잊을 수 없다. ‘좋은 의사’의 속성을 가장 쉽고 확실하게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아픈 경험을 통해 아픔을 아는 것’이다.
나는 나 자신은 아니지만, 사랑했던 사람이 아팠던 경험이 있다. 그리고 그 경험을 겪은 지 얼마 되지 않아 현재 사랑하는 사람이 아픔을 겪고 있다. 지독히 아팠던 경험을 통해서 말기 암 환자의 증상에 대해서 깊게 고민하고 주변 사람들의 아픔을 누구보다 뼈져리게 느끼고 이해하게 되었다. 또한 루푸스의 진단 기준과 치료, 그리고 환자의 관리에 대해서는 누군가가 시켜서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머리에 새겨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과 비슷한 사람들을 볼 때 마다, 설명할 수 없는 동질감과 같은 감정이 어디선가 샘솟아 그들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아닌, 함께 하고픈 내 모습을 볼 때가 때때로 있다. 의과대학에 입학을 하면서 이러한 나의 아픔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한 의사가 되기로 했다. 적절한 의료 행위를 위해서는 강건함과 건강한 정신도 중요하지만, 아픔이 있는 사람이 진정으로 아픔을 치료해 줄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어서다. 3년이 지난 지금, 아팠던 경험도, 아픔을 간직하려는 의지도 희미해져 가는 이 시점에서 ‘좋은 의사란?’이라는 주제를 맞닥뜨리게 되어 얼마나 감사한지.
원고 마감 1시간 30분이 남은 이 시각, 다급히 노트북을 열어 글을 쓰기 시작했다. 몇 달 전 친한 동기가 글쓰기 공모전 포스터를 보내주면서 ‘좋은 의사란?’이라는 주제를 던져 주었을 때에는 이번 공모전에는 지원을 하지 않기로 작정을 했었다. 시간 없음과 실습 준비 등으로 인한 정신없음, 그리고 지난 공모전에서 나의 날 것 그대로의 속마음을 쏟아 넣은 작품이 수상 목록에 없었을 때의 서운함보다도 가장 이번 글쓰기를 주저하게 만들었던 것은 현재의 내 모습이 이 주제를 보자마자 뇌리에 떠오른, 내가 정의내린 ‘좋은 의사’ 와는 거리가 있기 때문이었다. 비록 아직 학생 신분이지만 내가 되기 원했던, 그리고 만나기 원했던 의사와는 아주 거리가 먼, 그저 주어진 상황에 헉헉대며 간단한 환자 사례 보고서 하나 조차 스스로 고민해보지 않고 다른 동기의 생각으로 채워내었던 내 모습을 애써 모른 척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원고 마감 날 저녁 10시에 우연히 집을 함께 가게 된 동기의 공모 소식에 갑작스럽게 내가 생각한 좋은 의사에 대해서 글로 남기고자 하는 당혹스런 의욕이 생겼다. 그 기저에는, 비록 지금 내 모습이 부끄럽고 미약할지라도, 나의 생각을 글로 옮겨 놓는다면 ‘좋은 의사’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며, 내가 생각한 이상향에 한 발짝이라도 더 가까이 갈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아픔을 고이 간직한 의사가 되고 싶다. 또 평생을 살아가며 나와 같은 많은 의사들을 만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