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게 진짜 좋은거다>
손영 건양대학교 3학년
의사가 되겠다고 마음 먹은 건 중학교 2학년 때다.
중학교에 입학하고 방학마다 복지관에서 치매 어르신들을 돌봐 드리는 봉사활동을 했는데 말이 거창해 봉사지 그분들의 4시간짜리 손주 노릇이 고작이었다. 그런데 그곳에서 나는 전혀 다른 세상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건 마치 그 분들을 위해 두만강이 어딘지도 모른 채‘눈물 젖은 두만강’이란 노래를 배운 것과 같은 낯선 경험이었다.
“두마~안 강 푸우른 무울에~”
유튜브에서 배운 어설픈 노래 솜씨로도 큰 박수를 받으니 굉장한 일이라도 한 듯 꽤나 우쭐하기도 했다. 그저 나를 사랑하고 예뻐만 해 주시는 내 할아버지, 할머니 같아 이름을 묻고 또 물어 보셔도 치매는 원래 그런 거니까…라고 꽤 아는 척도 하면서 말이다. 일년쯤 지났을 무렵 어느 날, 다소 교만했던 나를 일깨운 사건이 있었다. 날마다 마주 하는 아들의 얼굴을 몰라 보는 어떤 할머니의 돌발행동에 큰 충격을 받고 말았다. 우리 할머니에게도 어느 날 갑자기 나를 당신 아들로 착각하는 순간이 오면 어쩌나 덜컥 겁이 났다. 어린 마음에 그건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라 부정했다. 할머니를 지켜 드려야겠다는 철없지만 순수한 마음에서 의사가 되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의사가 되겠다고 결심한 뒤 이름난 의사 선생님들의 일대기가 담긴 책을 읽는 것이 예비 의사로서 준비자세라 여겼었나 보다. 꽤 많은 자서전도 읽고, 위인전도 읽었다. 물론 가끔은 지루함을 무릅쓰고 의료관련 다큐멘터리를 보기도 하고 영화도 많이 봤다. 그래서 ‘좋은 의사’란 봉사와 희생정신을 가지고 가난하고 힘든 사람을 위해 의술을 베푸는 사람이라고 나름의 정의도 내렸다. 하지만 그런 힘들고 위험한 일을 하는 의사가 될 자신은 없었기에 실력을 갖춘 유능한 의사야말로 좋은 의사야 라고 편리하게 생각을 고쳐 잡았다. 고등학교에 진학해 3년간 또래 상담 동아리 활동을 그렇게 열심히 했던 이유도 유능한 의사가 되어야겠다는 의지가 강했기 때문이다.
‘좋은 의사’가 되겠다고 당차게 입학 면접에서 교수님들께 포부를 밝히고, 결국 의대에 입학하게 되었다. 하지만, 어깨를 짓누르는 양의 공부와 끝없는 시험에 내 머리와 눈은 도서관 책상을 향해 있었지, ‘좋은 의사’를 향해 있지 않고 있었다. 바깥시간의 흐름을 알 수 없는 백화점을 나서는 것처럼 형광등 불빛 밝은 도서관을 나서면 나도 모르는 새 먼 하늘엔 불그스름한 태양빛이 물든 아침이 되어 버린 날도 있었다. 오늘도..라는 생각은 가끔 서글픈 마음과 함께 왔다. 여행을 가서 봤다면 아마 멋진 장면이었겠지만 그 순간의 내 마음엔 아쉬움만이 소용돌이처럼 맴돌았다. 도서관에서 긴 시간 집중을 했던 게 갑자기 풀려서 그런가 그럴 때 마다 여러 생각이 스쳐 갔다.
‘나는 왜 의사가 되려고 하는가?’
‘이렇게 밤을 새서 공부를 한다면 좋은 의사가 될 수 있을까?’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어 더욱 근원적인 것을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좋은 의사란 무엇인가?’
‘나는 왜 좋은 의사가 되고 싶은가?’ ‘중학생 때 꿈꾼 의사가 과연 좋은 의사가 맞을까?’
대학생이 되어 첫 선거를 경험하니 정말 어른이 된 것 같았다. 일단 공부에 충실한 한편 사회현상이나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도 부쩍 가지게 되었다. 성인의 시선으로 새롭게 보고 들어 알게 된 것들이 많아서 그런지 ‘의사’앞에 구체적인 수식어를 갖다 붙여 보기도 했다. 환자를 배려하는 의사. 인권을 수호하는 의사. 평등의 가치를 실현하는 의사. 생명을 존중하는 의사. 실력을 갖춘 의사. 불의에 맞서는 의사……
바로 그거였다!
어떤 수식어를 붙여도 우열을 가리지 못할 만큼 결국은 모두 다 ‘좋은 의사’의 모습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 모든 수식어들이 결국 ‘사람을 향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가졌기에 나에게 ‘좋은 의사’로 느껴졌던 것이다. 사람을 사랑하고, 존중하고, 가치 있게 여길 줄 아는 의사가 그 마음을 바탕으로 행하는 모든 행위는 ‘좋은 의술’이 되기 때문에 바로 ‘좋은 의사’가 된다.
“어디가 불편해서 오셨어요?” 병원에서 의사가 처음 환자를 만났을 때 가장 먼저 하는 말이다. ‘사람을 향하는’ 의사의 첫 마디이다. 모든 치료의 시작은 환자에 대한 관심과 깊은 이해부터 시작한다. 환자가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언제부터 아팠는지, 가족 중 비슷하게 아팠던 사람은 없었는지, 현재 먹고 있는 다른 약은 어떤지 물어본다. 이러한 질문에 대해 환자가 답변하는 것을 의사는 귀 기울여 듣고 그걸 적절한 용어로 바꾸어 차트에 기록한다. 그래서 차트에 기록된 ‘주소, 가족력, 기저 질환력, 과거력, 약물 복용력’ 이라는 이름으로 기록된 겉으로 보기에 무미건조한 글은 사실 환자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가득 담겨 있는 ‘살아 숨쉬는 대화’의 흔적이라고 생각한다. “어디가 불편해서 오셨어요?”라는 질문과 그에 파생되어 이어지는 깊은 대화의 결과물인 환자 차트는 의사와 환자가 만든 일종의 오케스트라라고 이해해도 좋겠다.
훌륭한 악기의 연주가 하모니를 이뤄 좋은 음악이 되는 것처럼, 평면 속에 존재하는 교과서의 지식 역시 환자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입체적인 모습으로 빛을 발해 적절한 검사, 진단과 치료의 길잡이가 된다. 결국 ‘좋은 의사’가 행하는 ‘좋은 의술’은 의학적 지식이라 불리는 악보와 환자와의 상호작용이라는 오케스트라의 좋은 결합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그렇지만, ‘배움을 게을리하는 의사’는 결코 ‘좋은 의사’가 될 수 없다. 의사가 의학적 지식이 부족하다는 것은 곧 환자를 깊게 이해하지 못한다는 말과 같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사람을 향하는’ 좋은 의사가 되려면, 학부생 시절부터 의사로 사는 매 순간까지 절대 배움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도 한다. 사람을 대할 때뿐만 아니라 자기 일에도 언제나 겸손한 자세로 새로운 의학적 지식을 배워야 하고, 잘못된 것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고쳐나가야 한다. 단지 뒤쳐지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정으로 사람을 위하고 환자에게 도움이 될 길을 고민하는 과정에 끊임없는 배움의 과정이 실천으로 파생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열다섯 중학생의 꿈이 어느 새 스물 둘 예비 의사의 길로 구체화 되었다. ‘좋은 의사’가 될 것이라며 당차게 교수님들한테 다짐한 고등학생이 임상의학을 배운 지도 벌써 두 학기가 지나가는 대학생이 되었다.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직업이 존재한다. 의대를 졸업한 많은 선배들을 봐도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일하고 있다. 사람들은 사회라는 거대한 조직 속에서 살아가고 있고, 직업이라는 이름의 테두리 안에서 스스로의 역할과 책임을 다 하고 있다.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모든 직업인의 직업의식은 사람으로 귀결될 수 밖에 없으므로 언제나 사람을 귀하게 여겨야 한다. 결국 ‘좋은 의사’가 되는 것에 대한 답은 ‘좋은 사람’이 되면 된다. 어떻게 하면 좋은 사람, 좋은 어른이 될 것인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배울 생각이다. 내가 좋은 사람이 되면 나의 의술로 인해 좋은 기운을 얻은 사람들 역시 또 다른 직업인으로서, 사회인으로서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이 될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입학 면접 시험에서 본인이 생각하는 ‘봉사’의 의미에 대한 질문에 대해 내가 했던 답변을 아직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분쟁 지역에서 총탄을 피해가며 환자를 돌보는 의사들이나 의료사각지대에 있는 환자들을 무보수로 치료하는 의사들의 희생과 봉사 정신은 정말 훌륭한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잠을 쫓아가면서 응급환자들을 돌보고 치료하는 의사들이나 개인병원에서 환자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약을 처방해주는 의사들 역시 자기 일에 최선을 다 하고 있다면 그 또한 봉사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자리에서건 도덕적 규범 안에서 자기 역할을 충실히 한다는 건 이미 사회에 기여하고 있으면서 사회발전의 원동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봉사는 언제나 거창한 말로만 정의되거나 희생을 바탕으로 해야만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누군가를 돕는다는 건 특별히 어렵거나 거창한 일이라기 보다 매 순간 내가 가진 능력으로 누군가에게 좋은 영향을 준다면 그 일의 가치는 이미 크고 작음의 단계를 초월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좋은 의술’을 펼치는 ‘좋은 의사’가 되는 것이 ‘좋은 사람’이 많은 사회를 만든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사는 게 세상을 사랑하는 내 마음가짐의 바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