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려상
나는 왜 의과대학에 와야만 했는가
오규희
(전남대학교 본과 2학년)
장 폴 사르트르가 말하길, 인생은 Birth와 Death 사이의 Choice라고 했다. 곰곰이 생각을 해보면 이런 의문이 든다. 대부분의 선택을 내리게 된 이유에 대해 합목적적이고 충분히 설명 가능한 형태로 떠오르는가. 나의 경우는, 그리고 사실은 많은 사람들의 경우, 결정은 충동적으로 그리고 상황을 안정화시키려고 하는 쪽으로 이루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서울에 있는 대학교의 철학과를 졸업하고 또 다시 의과대학에 가야겠다고 결심한 배경에는 안정 이외의 것은 없었다. 사회적, 경제적, 주변 사람들 특히 부모님의 시선으로부터의 안정. 입학자소서에는 거창한 말들을 늘어놓았지만, 사실 의과대학에 들어오기 전 나 자신은 의과대학에 왜 가야 하는지에 대해서 이 외의 말을 할 수 없었다.
불안하지만 열심히 살아가야 하는 이유였던, 그러면서 나를 애끓게 했던 ‘안정’을 찬찬히 들여다본다. 그것은 나와 주변사람들이 그렇게도 기대하는 사회적·경제적인 지위이다. 의사=부자. 사회적으로 아직까지는 이 명제가 타당하다고 여겨지는 듯하다. 히포크라테스 선서의 순수의 영역에서 이 등식의 명제를 논한다는 것은 거의 금기에 가깝지만, 어쨌든 우리는 은근히 믿는다. 저 멀리에 기다리고 있는 삶이 ‘=’까지는 아니더라도, ‘→’로 인해 성립되는 명제일 것이라고. 그리고 나는 안도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석연치 않았다. 철학과를 다닐 때 ‘그러다가 돈도 못벌면 어쩔래?’라는 말은 공포스럽게 현실로 와 닿았는데도, 경제적 안정에 대한 확신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지는 않는다. 부모님 덕택에 경제적인 풍요로움 속에서 살아왔음에도 불안했고, 부유한 청사진 속에서 2% 빠진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생각이란 이렇게 항상 바뀐다. 그 안정이란 것부터도 그렇다. 의과대학에 와서 보니 이곳이 안정한 곳이던가. 의대만 가면 편하게 뭐든지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던 수험생 시절은 이미 잊은 지 오래다. 엄청난 지식 ‘폭행’과 수많은 시험들, 게다가 공부 좀 하다 온 친구들 사이에서 살아남아 진급해야 한다는 것, 공부뿐만 아니라 사람들과의 관계도 공을 들여야 한다는 것. 의과대학 생활 초반은 매일이 전쟁과 같았다. 육체적으로도 고됐지만, 스스로 남과의 비교에 무너지지 않으려 정신적으로도 소진됐다. 하지만 나는 그러한 생활을 치열하게 버텼다. 그리고 어느 순간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비싼 옷이나 가방, 차가 좋아보이긴 하지만, 내가 가진 것에 충분히 만족하며 이 정도로도 감사하다. 아마 난 부자는 아닐지라도 내가 살아갈 만큼의 충분한 몫은 벌면서 살 것이다. 그보다는 매일 나에게 주어진 일과를 잘 해낼 때, 동료들과 소소하게 진심을 나눌 때가 행복하다. 내 안으로부터의 안정과 평화를 찾을 때 행복하다. 그러면서 왜 의과대학에 와야만 했는가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됐다. 이는 나를 알아가는 과정, 의사가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한 이해, 그리고 어떠한 삶을 살아가고 싶은가에 대한 정립 과정이다. 독립심, 자율성, 관계, 공동체, 기획, 기여, 나눔. 기나긴 고민을 통해 발견해 낸 나의 가치관이다. 그리고 나는 나의 이러한 모습을 발굴해내고 발전시켜나가기 위해 의과대학에 왔음이 틀림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마음의 안정과 행복은 공부를 제외한 여러 경험을 통해 느끼게 되었다. 특히나 2학년에 와서 부학생회장으로써 일하게 된 것이 정말로 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학우들이 학교생활에 있어 부족하다고 느끼는 점들이 무엇인지 나서서 고민하고, 또 의견을 듣고, 그것들을 개선해나가고 혹은 새롭게 도입하기 위해 일하는 과정들이 정말로 소중했다. 그 과정은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함께 일하는 동기, 후배, 선배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리고 같이 한다는 것이 정말 즐거웠다. 하지만 혼자 공부 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덜 골치 아프다는 것도, 타인과 의견을 조율해나가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부딪히면서 배웠다. 해내고자 하는 일을, 우리가 해야만 하는 일로서 설득하는 것도 과제였고, 하나의 목표를 두고 어떤 수단을 통할 것인지 정하는 것 또한 과제였다.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다는 사실이 힘들었지만, 중요한 깨달음이었다. 그 와중에 최선을 다 해서 결과물을 내놓았지만 ‘본전만 겨우 찾았다’는 느낌 또한 새로웠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들을 통해서 얼마나 내가 기획하는 것을 좋아하는지, 얼마나 사람들과 같이 작업해나가는 것을 좋아하는지를 깨달았다. 그리고 작게나마 결과가 나왔을 때, 그리고 그 결과물에 대해 좋은 피드백을 받을 때의 기쁨이란. 일로부터는 자유롭지 못했지만, 내가 행복할 수 있는 방향으로 자유롭게 일을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그니까 저 멀리 있는 안정을 구하느라 걱정 하지 말고, 남과 비교하지 말고, 좋아하는 일과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된다고 믿는다. 나는 어쨌든 행복하고 싶기 때문이다. 세상에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있는 부분은 극히 드물지만, 이것에 대해서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나에게 자유와 꿈과 이상이 있을 때, 그리고 그것들을 하나씩 실천해나갈 수 있을 때 행복하다. 돈과 명예는 중요하지만 부차적인 문제인 것이다. 부란 추구한다고 얻어지는 것은 아니며, 따라오는 것이다. (뭐 부자가 못 되면 어때, 굶지는 않을 텐데)
다음으로 나에게 중요한 두 질문이다.
1. 과연 타인의 삶에 깊이 관여할 수 있는 직업이 몇이나 될까.
2. A와 B는 모두 웃고 있다. A는 활짝 웃고 있는 사람들에 둘러싸여있으나, B는 찡그리거나 울고 있는 사람들로 둘러싸여있다. 둘 중 누가 더 행복해 보이는가.
첫 번째는 이국종 교수님이 던진 물음인데 항상 마음에 남아있다. 그에 대한 답은, 매우 드물다는 것이다. 의사란 그 드문 것 중 하나이며, 따라서 의사일 수 있다는 것은 고귀한 일일 것이다.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나의 답은 A이며, A처럼 행복하고 싶다. 웃고 있는 B는 행복해보이지 않는다. 나에게 행복은 타인과 공동체를 빼고는 생각할 수 없다. 좋은 성적을 받았을 때의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지만, 시험기간 때 만든 자료들을 동기들과 후배들이 참고해주었고, 그것이 큰 도움이 됐다고 해주었을 때의 기쁨은 참으로도 오래 남아있다. 이후에도 그 친구들이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조언을 구하고, 진지하게 고민을 이야기해줄 때, 나를 필요로 하는 것, 그리고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에서 감사함을 느꼈다. 유능한 의사가 되서 얼마나 더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 벅차다.
의사라는 전문직으로 공동체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이 여럿이라는 것에 감사하다. 유능한 명의가 되면 얼마나 환자들을 잘 도울 수 있을까. 그 뿐만이 아니다. 금요일마다 노숙인쉼터에 봉사하러 오시는 의사선생님처럼, 의지만 있다면 언제든지 봉사할 수 있다. 또, 의료 정보를 올바로 제공하는 의학전문기자, 의료인들의 공익을 대변하는 정치인, 혹은 국민에게 좋은 의료정책에 대해 고민하는 보건복지부 장관 등. 원하는 방향이 있다면, 의사로서 얼마든지 실력을 쌓아서 그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의과대학에서는 탁월한 의사가 되기 위해 노력만하면, 그 노력에 대한 대가는 온전히 내 것이다.
독에 물이 적게 들어있으면, 넘어뜨리거나 깨지 않고서는 바닥을 적실 수 없다. 그러나 독에 물이 넘실넘실거려 흘러 넘치면 자연스럽게 바닥이 적셔진다. 나는 이런 삶을 살고 싶다. 본인이 위태로우면서도 남을 돕고싶다고 하는 것은, 니체 말대로 가여운 동정심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타인을 잘 돕기 위해 실력 있는 의사가 되고 싶다. 그래서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경우가 많았으면 좋겠고, 올바르게 돕고 싶다. 그래서 함께 행복을 나눌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
그렇기 때문에 의과대학, 혹은 의사 자체는 절대 목적이 아니다. 혹은 안정을 위한 수단도 아니다. 여태까지도 그러했지만, 앞으로도 나의 의과대학 생활은 그 누구보다도 치열할 것이며 좋은 의사가 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안팎으로 노력할 것이다. 소중하게 믿는 가치를 기반으로 한 선택과 경험을 통해 나는 발전할 것이다. 내가 도대체 누구인지, 어떻게 살아나가길 바라는지는 완결되지 않을 것이며, 앞으로도 의과대학에 와야만 했던 이유를 덧붙여나갈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걸어온 길을 돌아보며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의사로 살 수 있어서 행복하고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