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상
번쩍이는 눈으로 건너갈 수 있는 강에 관하여
신달식
(순천향대학교 본과 2학년)
왼쪽 눈에서 이따금 섬광이 인다. 시야의 위쪽에서부터 중심부로 환한 전구가 번쩍인다. 다시 내 망막이 말썽을 부리는 줄 알았다. 중학교 3학년 시절 나는 망막박리 수술을 받았다. 그 이래로 왼쪽 눈으로 보는 세상의 절반이 아지랑이 피듯 이지러져 보인다. 정기 검사에서 문제가 발견되어 레이저 치료도 몇 번 받았다. 왼쪽 눈의 시야에 예민할 수밖에 없다. 시야가 변하는 것 말고는 이상 신호를 전혀 감지할 수 없으니까. 거울을 뚫어지게 바라보아도 절반이 뭉그러진 내 얼굴만 보일 뿐 동공 너머의 망막에 대해 나는 무지하다. 수술해준 선생님을 찾아가 동공을 열고 망막 안쪽을 들여봐달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번에 나타난 불빛 앞에서는 선생님도 별수가 없다. 큰 문제는 없고, 그냥 있을 수 있는 증상이라니. 눈에서는 자꾸만 불빛이 반짝이는데 그런 무책임한 말이라니. 의학이 괜찮다고 말하면 나도 할 말이 없다. 지금도 내 눈은 성실하게 번쩍인다.
‘나는 왜 의과대학에 들어왔는가’. 의대생이라면 입시 원서를 쓰는 그 순간부터 예과, 본과를 지나면서 숱하게 들어본 말이겠지. 입시 원서를 쓸 때는 본인, 가족이나 친척의 병력, 인술을 펼치고 싶은 사명감이나 학자로서의 자세에 대해서 다들 거짓말을 조금은 늘어놓지 않는가. 나는 내 망막박리 병력에 관해서 자세히 썼다. 검은 장막이 드리워진 듯 깜깜해진 왼쪽 눈과 누워서 한 달을 회복해야만 했던 지독한 수술, 긴 투병 기간 끝에 되찾은 빛. 나를 수술해준 선생님에 대한 고마움, 의사가 되어서 나도 다른 사람들에게 빛을 되찾아주고 싶다는 말. 자기소개서를 채워나갈 때 나는 진심이었겠지. 하지만 지금 본과 2학년이 되고 돌아보면, 그 순수하고 열띤 마음이 잘 되살아나지 않는다. 거짓말쟁이가 되어버린 듯하다. 행군처럼 이어지는 본과 시험 기간, 병원을 오가면서 머리에 까치집을 짓고 부슬부슬한 피부와 병든 눈으로 살아가는 선배들을 보며 내 열정은 묽어졌으니까. 다음 시험에 성적을 잘 받는 방법이나 어떤 과를 택해야 많은 돈을 벌 수 있을지와 같은 생각들로 머릿속은 채워져 가니까. ‘나는 왜 의과대학에 들어왔는가’. 또다시 열아홉 살의 자기소개서에나 걸맞을 거짓말을 늘어놓고 싶지는 않다. 지금에 와서도 거짓말을 하면 양치기 소년처럼 누구도 나의 말을 더 들어주지 않을 테니까. ‘나는 왜 의과대학에 들어왔는가’라는 질문이 내 의사 됨의 목적을 물으려는 것에 있다면, 조금 돌려서 답해보려 한다. ‘나는 왜 의과대학에 다니고 있는가’에 대해서.
의대생이 된 이후에도 여러 이유로 나는 환자가 되었다. 처음 눈이 번쩍였을 때, 미생물학 실습실에서 불붙은 알코올이 손으로 흘러내렸을 때, 병리학 시험 전날 독감에 걸려서. 그 때마다 내 옆으로는 가슴을 두드리다가 하얀 침대보 위로 끈적이는 피떡을 토해내는 환자, 오토바이 사고로 얼굴 반쪽의 피부가 날아간 환자, 누렇게 뜬 피부에 배는 풍선처럼 부풀어서 의식을 잃은 환자, 응급실 침대에 붙어 오열하는 가족들과 같은 사람들이 늘어서 있었다. 그들은 높은 신음소리를 뱉거나 의사를 찾아 고함치고 있었고, 처치를 기다리는 모습은 초조해 보였다. 나는 그 속에서 고요했다. 내 고통은 다른 사람들의 것보다 초라했다. 2도 화상의 고통은 교통사고 앞에서 침묵해야만 했고, 병원의 생리를 잘 안다고 생각했던 나로서는 기다리는 동안에도 감정이 격해질 수 없었다. 차분히 기다리는 동안 옆으로 울고 절망하는 사람들이 수없이 지나갔다. 나와 다른 사람들 사이에는 심연이 있었다. 그렇게 형성된 고통의 층위 속에서 깊은 밤을 새웠다.
응급실을 나온 이후에도 나는 멀쩡히 집에 갔고, 밤을 새우느라 피곤한 핑계로 오전 수업 내내 학교를 쉬었고, 점심을 먹고 오후 수업을 들었다. 교수의 강의 슬라이드에서는 심근경색증의 심전도 소견과 대동맥 박리의 CT 소견 같은 것이 쉴 새 없이 넘어갔다. 텅 비어버린 머리로 멍하니 앉아 슬라이드를 보면서 나는 밤새 내 옆을 지나간 환자들을 떠올렸다. 그 중에는 다발성 골절 환자, 심근경색 환자, 대동맥 박리 환자도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내가 밤새 지켜본 고통들이 흰 화면에 얼마나 간결히 정리될 수 있는지, 얼마나 단순하게 암기될 수 있는지 생각했다. 심근경색의 심전도 소견이나 CT로 바라본 대동맥 박리의 아형에도 내가 목격한 고통은 적혀있지 않았다. 머리 속을 채우는 지식과 개인의 고통, 그 간극에 대해서 생각했다.
나는 여느 친구들과 같이 병원 근처에서 산다. 이른 새벽, 침대에서 뒤척이다 보면 한 시간에도 몇 번씩 구급차 소리가 들린다. 고요한 밤을 가르는 고주파 소음. 멀리서부터 잠을 깨우는 사이렌 소리가 다가올 때, 그 소리가 높아졌다가 다시 낮아질 때, 나는 응급실의 풍경을 떠올리게 된다. 오늘도 피곤에 젖은 선배 중 하나가 응급실 문을 열고 달려드는 환자들을 하나하나 받아내는 상상. 어쩌면 몇 년 뒤의 내가 그들을 받아내는 상상.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영원히 고통이 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오늘도, 내일도, 영원히 수많은 병으로 사람들은 죽어갈 것이라는 진실. 그들이 뱉어낼 슬픔과 절망을 합치면 아마 큰 산이 되겠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의사 앞으로 달려와서 자신들의 응당한 생명을 요구하는 사람들. 나는 평생 그 일을 하리라는 생각. 의사는 생명의 탄생부터 죽음까지 함께하지만, 탄생과 죽음은 너무 불공평하다. 사람은 한 번 태어나고 여러 번 죽을 뻔 하니까. 신이 있다면, 의사는 탄생의 신과 한 번 인사하고 죽음의 신과 여러 번 씨름하는 형편이다. 그리고 나는 사람들을 데려가는 죽음의 옷깃을 붙잡아 그 실체를 마주보고, 사람들을 죽음의 문턱에서 제자리로 돌려 내는 일을 평생 하리라는 사실.
의사 면허를 딴다고 해서 내가 당신을 이해할 수 있을까. 현대 의학의 근거와 진단기준, 알고리즘으로 가득찬 머리로 당신의 고통을 헤아릴 수 있을까. 당신은 평생 죽음을 받아내야 하는 나를 이해할 수 있을까. 당신이 나를, 내가 당신을 온전히 이해하는 일은 어쩌면 영영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나는 의과대학 원서를 쓰던 고등학생의 마음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 응급실 옆자리에서 피를 토하던 남자를 이해할 수도 없을지 모른다. 그리고 아마 의사가 된다고 해도 이 세상의 모든 고통을 이해하기란 불가능할 것이다. 우리는 다만 노력할 수 있을 뿐이다. 나는 당신을 살려내려고. 당신을 이해해보려고.
병원에서 살아난 사람들이 집이나 일터로 돌아가는 모습을 그려본다. 어제 하던 일을 마저 하고, 가족들과 얼굴을 부비고, 책을 읽고 음악을 듣는 삶을 계속 해나가는 것을. 기적 같은 일이다. 죽어가던 사람들이 병원 안에서 계속 살아난다면, 누군가는 그들을 계속 사랑할 수 있을 것이고, 그들도 누군가를 계속 사랑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러면 내가 만난 여느 사람들처럼 그들도 사랑하는 사람에게 멋진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이 하나의 거대한 이야기라면 의사는 그 이야기가 끊어지지 않도록, 더 많은 사람들이 서로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도록 돕는 사람들이니까.
나는 다시 묻게 된다. 왼쪽 눈은 도대체 왜 반짝이는 것일까? 지독한 질병이 재발한 것이 아닌가 하는 당혹감, 이 불안한 감정은 왜 이따금씩 찾아오는가? 내 눈은 나에게 무엇을 가르치려 하는 것인가? 아마도 그건 무언가를 계속 상기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눈이 번쩍이는 것보다도 훨씬 더 한 것들을. 팔이 잘리고 피를 토하고 배를 갈라야 하는 사람들이 아주 오래 전부터 있었고, 어제와 오늘을 지나 내일도, 수백 년 후에도 있으리라는 사실을. 성실하게 번쩍이는 섬광을 보며 떠올린다. 병실에서, 응급실에서, 수술실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환자들은 내 앞에 다다를 것이고 나는 묵묵히 그들을 받아내는 모습을. 내가 당신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면 병원 안에서 사람들은 계속 죽다 살아날 것이고, 우리의 고통도 구원받을 수 있지 않을까. 대개 우리의 삶은 나름대로 조금씩 불행한데, 정말로 신이 있다면 자신의 고통을 통해서 타인을 이해해보라고 눈에 빛을 불어넣고 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