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우수상
한 번 더 주어진 기회
양정엽
(가톨릭관동대학교 본과 1학년)
‘마침내 스스로 걸을 수 있게 된 후, 나는 혼자서는 처음으로 복도를 걸었다. 이는 단순한 걸음이라기보다는 나 혼자만의 세계에 갇혀있었던 내가 주변을 둘러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는 의미가 컸다. 그리고 바로, 다른 여러 방들에서 펼쳐지는 모습들을 직접 보고 들을 수 있었던, 그 순간이었다. 진정 이때가 내가 의과대학에 들어가서 의사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한 순간이었으며, 또한 그것이 내가 그토록 궁구했던, 내게 한 번 더 주어진 기회의 ‘이유’임을 직감적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사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의사에 대한 꿈이 전혀 없었다. 그뿐만 아니라 가족을 포함한 주변의 누구도 의료계와 관련된 사람이 없었기에, 현실적으로 이쪽으로 꿈이 생길 기회도 별로 없었다. 고등학교를 다니며 생긴 꿈은 생명과학이 재미있어서 생명과학자가 되는 것이었다. 비록 공부를 잘하지는 못하지만 행복했던 나의 첫 번째 인생은 순탄하게 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고3이 되던 해 겨울방학, 나의 첫 번째 인생은 송두리째 바뀌게 된다. 나의 마지막 기억은 다음과 같다.
‘독서실에서 공부를 하다가 집에 오는 길부터 매스꺼웠지만, 잠이 부족해서 그렇다고 생각하고 빠르게 집으로 왔다. 그러나 집에 온 직후에는 말로는 도저히 형용할 수 없는 두통이 생겼고, 나는 어서 자야한다고, 자야한다고 생각하며 누웠다. 아니, 정확히는 내 방바닥에 쓰러졌다. 이 사건 후에 나는 20일 뒤에 다시 현실로 돌아오게 되며 그곳은 주변이 새하얀, 그전까지 내가 경험해보지 못했던, 병원 안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20일간의 내용이 검은색으로 아예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은 아니고, 중간 중간 약간의 기억들이 남아있다. 그러나 나는 이것이 꿈인 줄 알았다. 꿈이라기엔 너무 긴, 끝나지 않는 이상한 병원 꿈. 내용이 참 이상했다. 기억나는 것 중 하나는 부모님이 자꾸 나를 주물러주시는 것이었다. 내가 안마해드려도 모자라는 판에……. 나는 이 꿈에서 깨어나면 꼭 부모님께 시원하게 안마해드리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것은 꿈이 아닌 현실이었다. 내가 현실임을 깨닫는 날, 어머니께 오늘이 며칠일지 계속 반복해서 물었다고 한다. 내가 기억하는 날짜와 많은 괴리가 있었다. 또한 충격적인 얘기를 들었다. 바로 내가, 뇌출혈을 했다는 것이었다. 기나긴 꿈에서 깨어난 순간, 나는 현실을 부정하며 끊임없이 울었다.
비록 사춘기 이후로는 성당에 나가지 않았지만, 천주교 신자였던 나는 하느님을 원망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내가 쓰러진 후 적어도 5시간 뒤에나 병원에 갔다는 사실이다. 골든타임이 중요한 뇌혈관질환에서 최악의 상황이었다. 울음을 멈추고 내 몸을 점검해보니,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또한 말을 한 글자 이상 연속으로 하는 것이 불가능했고, 몸의 왼편 전체는 물을 잔뜩 머금은, 몸에 딱 맞는 수영복을 입은 듯 무거웠다. 이 중 다른 것보다도 당장 앞이 제대로 안 보이는 것이 가장 무서웠는데, 이 때문에 나는 ‘아! 내 인생은 이제 망했구나!’라고 한탄했다. 잔인한 말이었지만 나는 속으로 도대체 왜 나를 살리셨냐고 하느님께 계속 외쳤다.
어머니는 직장을 그만두시고 나의 간호에 전념해주셨다. 며칠의 시간이 흐르자 다행히 시력이 서서히 돌아왔고, 다시 밥을 제대로 먹으며 조금씩 움직이니 20일간 약해졌던 온 몸의 근육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때 어머니가 책 한권을 추천해주셨다. 하버드 뇌 과학자인 질 볼트 테일러 박사의 책은 절망적인 내 상황에서 희망의 한 줄기 빛으로 다가왔다. 그녀도 뇌졸중을 경험했는데, 이를 평생 연구해왔던 전문가의 입장에서 움직임, 언어, 자각 능력 등의 뇌 기능이 하나씩 멈춰가는 걸 경험하며 제 3자의 입장에서 담담하게 서술한다. 책뿐만 아니라 그녀의 TED강의도 감명 깊게 보았는데, 나에게 더욱 도움이 되었던 것은 나와 비슷한 경험뿐만 아니라 이를 대하는 그녀의 ‘긍정’의 능력이었다. 그녀는 뇌졸중임을 깨닫고 다음과 같이 생각했다고 한다.
‘맙소사! 내가 뇌졸중이야, 뇌졸중이야……. 와우! 너무 멋진걸, 너무 멋진걸. 자기 자신의 뇌를 이렇게 속속들이 연구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은 뇌 과학자가 몇이나 되겠어?’
덕분에 약간의 여유를 찾게 되었고, 그녀를 통해 나는 새로운 꿈이 생겼다. 신경과학자. 난 정확히는 오른쪽 소뇌출혈이었는데, 생각해보니 고1때 배웠던 소뇌의 기능인 균형능력과 미세수의근 조절이 정말로 안 되는 것을 보고 신기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새로운 희망과 꿈이 생기자 나는 신체적 고통보다 더 중요했던 정신적 고통을 극복해나갈 수 있었고, 처음에 말한 것과 같이 비로소 스스로의 마음속에 갇혀있었던 내가 여유를 가지고 주변을 보게 되면서, 나뿐만이 아닌 서로 각각의 다른 이야기를 가진 여러 다른 환자들과 그들의 보호자, 그리고 신경외과 의사들이 서로 소통하는 모습을 보고 들으며 최종적으로 신경외과 의사가 되기로 다짐하게 됐다.
이전까지 나는 끊임없이 되뇌고 고심했다. 나에게 한 번 더 삶의 기회를 주신 이유가 뭘까. 이렇게 탐구하던 질문의 답을 깨달은 후, 일반 사람도 힘든 외과의사의 길을 가기 위해 나는 우선 몸의 회복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정신의 병이 치유되자 몸은 천만다행으로, 예를 들어 왼손을 살리기 위해 글쓰기를 제외한 양치질, 젓가락질, 컴퓨터마우스와 같은 모든 일상생활의 활동을 이쪽으로 하는 등, 피나는 노력의 재활과정을 통해 점차 회복되었고 나중에는 정상 이상의 체력을 가질 수 있었다. 또한 확고한 목표가 있으니 공부 역시 열심히 할 수 있었고, 드디어 의과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다.
누군가가 “왜 의과대학에 들어왔나요?”라고 묻는다면, 나는 “제가 할 수 있는 최대한 많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입니다.”라고 대답하며 살아갈 것이다. 물론 “저와 같은 아픔을 겪는.” 그리고 당연히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근본적인 이유 중 하나인 부모님에 대한 무한한 감사함 또한 잊지 않고 살 것이다. 미래를 그리며 나는 항상 나의 의술로 환자들을 살리는 상상을 하곤 한다. 게다가 생명을 살리는 것 이상으로 나 역시 내가 받았던 희망처럼 그들에게 한 가지 희망이 되기를 소망한다.
마지막으로, 퇴원하고 그 이듬해에 고등학교에 복학한 후 친구가 말해주었던 말이 생각난다. 앞으로 사람들에게 나를 소개할 때에 대한 조언이다.
“저는 과거에 뇌손상으로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전 그 모든 어려움을 이겨낸 사람입니다.”
그녀는 이 두 줄의 말이 나를 가장 임팩트 있고, 멋있게 소개해주는 말이라고 해주었다. 또한 내 스스로에게도 이를 언제나 가슴에 품고 살라고 조언해주었다.
‘난 그 모든 어려움을 이겨낸 사람이다.’
앞으로도 나는 내 꿈을 실현하기 위한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에 봉착할 것이다. 그러나 어떤 고난이 오더라도 힘들 때마다 스스로에게 딱 이 한 줄을 되풀이하며 훌륭한 의사가 되어, 내게 ‘한 번 더 주어진 기회’를 완수할 수 있도록 노력해나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