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정신의학②: ‘동성애’라는 오진

영화 <캐롤>은 2015년에 개봉한 토드 헤인스 감독의 퀴어 로맨스 영화로, 1952년 출간된 <소금의 값(The Price of Salt)>이라는 소설을 기반으로 한다. 주연인 케이트 블란쳇과 루니 마라의 열연과 당시의 분위기를 느낌 있게 살려낸 아름다운 영상미, 그리고 사랑의 감정선을 강렬히 드러내는 사운드트랙이 어우러져 호평받았다. 본 기사에서는 영화 속 정신의학, 그 두 번째 이야기로 영화 <캐롤>과 함께 ‘동성애’라는 과거의 그릇된 진단명에 관해 다루고자 한다. s

 

<캐롤>: 서로를 차마 놓을 수 없었던 두 여성의 사랑

주인공인 테레즈 벨리벳(루니 마라 분)은 백화점에서 크리스마스 시즌 장난감을 판매하는 점원이다. 딸의 선물을 사기 위해 들른 캐롤 에어드(케이트 블란쳇 분)가 놓고 간 장갑을 테레즈가 우편으로 보내주면서 두 사람의 인연이 시작된다. 캐롤이 테레즈에게 점심을 대접하고 집에 초대하면서 시작된 관계는 연인으로 발전하고, 여러 시련을 거쳐 결국 캐롤은 테레즈를, 테레즈는 캐롤을 선택하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두 사람의 사랑에서 가장 큰 시련은 캐롤의 가정이었다. 캐롤은 하지 에어드(카일 챈들러 분)라는 남자와 이미 결혼하여 딸이 있는 상태였으나, 남편의 집착과 시댁과의 불화로 이혼을 준비 중이었다. 하지만 하지는 여전히 캐롤을 사랑했기에 캐롤과 테레즈가 떠난 여행에 사람을 붙였고, 결국 두 사람의 대화를 녹취하여 법적 증거로 제출하기에 이른다. 영화의 배경인 1950년대에는 동성애가 정신 질환으로 분류되었기 때문에 캐롤은 딸 린다에 대한 양육권을 빼앗기게 된다.

 

1950년대: 동성애는 정신질환이다

그렇다면 동성애는 언제부터 정신질환으로 분류되었던 걸까? 정신질환에 대한 체계적인 정립이 이루어지기 전, 1800년대 후반부터 동성애는 뇌의 신경성 질환 또는 퇴행이라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였다. 이후 정신의학계에서 진단과 치료의 기준이 되는 DSM (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 정신장애 진단통계편람)의 제1판이 1952년 발표되었다. 이때 미국정신의학회는 동성애를 인격장애의 일종으로 분류하였고, 1968년에 발간된 제2판에서는 성도착증의 하위 분류로 개정하였다. 이처럼 당시에는 동성애를 질병으로 진단하였기에 영화 속 캐롤이 받은 정신과 상담이나 전환 치료 등을 행하는 것이 표준이었다.

 

1970년대: 진료실에서 해방되다

이러한 추세가 뒤집힌 것은 1970년대에 이르면서였다. 사회단체와 동성애 사회활동가들이 동성애를 정신질환으로 진단하는 것에 반발하면서 미국 정신의학 학회장에서 시위를 벌였고, 동성애자인 정신과 의사들도 힘을 보태었다. 또한 여성, 흑인, 노동자 등의 인권운동이 활발히 일어나면서 다양한 사회적 약자의 권리에 주목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결국 미국정신의학회에서는 동성애를 DSM에서 제외하는 안건에 대해 전 회원 투표를 실시하였고, 58%의 찬성으로 1973년 DSM 제3판에서 동성애가 제외되었다.

 

오진을 넘어 오해를 풀려면

이제 동성애는 질병으로 분류되지 않는다. 개인의 성적 지향은 더 이상 의학의 영역이 아닌, 삶과 사랑이라는 일상의 영역이다. 그러나 이러한 판결이 내려진 지 반세기가 지난 현재에도 편견 어린 시선은 사라지지 않았으며, 소위 ‘동성애 치료’라는 명목으로 시행되는 프로그램이 곳곳에 존재한다. 2023년 우리나라에서 시행된 조사에 의하면 ’동성애를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응답이 전체의 43%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응답보다 11%포인트 더 높았다(한국리서치, 2023). 영화 속 테레즈와 캐롤의 이야기는 둘만의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렸지만, 현실에서는 사회적인 해피엔딩을 만들기 위해서 가야 할 길이 남은 것이다.

우리 사회의 수많은 사랑이 영화만큼 아름답지 않더라도 평범한 일상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이은수 기자/울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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