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이야기, 해부학의 역사
최초의 해부학
기원전 2800년 전, 미라 제작 시 시행된 내장 해부가 기록된 이집트 상형문자에서 우리는 해부학의 초보적인 시작을 목격할 수 있다. 역사상 최초의 해부학자인 고대 그리스의 알크마이온은 최초의 해부학 서적을 써냈으며 살아있는 동물을 대상으로 한 해부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암암리에 교수형을 당한 죄수의 시체를 가지고 해부를 진행하기도 했는데, 때로는 산 채로 해부를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해부 기술의 개선과 용어의 정리가 이루어져 해부학의 첫 발걸음이 시작되었다. 한편 중국에서도 해부 지식을 담은 <편작난경> 과 <내경> 이 등장했다.
쉬지않고 밀려오는 파도, 갈레노스
‘쉬지않고 밀려오는 파도’라는 이름의 의미처럼 그는 전 세계 의학의 성지를 돌아다니며 높은 수준의 의학적 지식을 쌓았으며 동물 해부를 통해 수많은 해부학적 발견을 이뤄냈다. 그가 남긴 300편의 작품 중 100편이 넘는 작품이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으며 고대부터 제기된 다양한 이론들을 일목요연하게 다루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당시 인체 해부는 금기시되었기 때문에 사실 그는 시신 해부 실습을 단 한 번 밖에 해보지 못했다. 따라서 동물 해부를 진행한 후 인체에 이를 적용하는 방법을 취했다. 갈레노스는 히포크라테스의 의학 이론을 이끌었으며 최초로 심혈관계통과 신경계통의 작용을 연구했다. 법에 가깝게 여겨졌던 갈레노스 학설은 해부학의 금지로 수 세기 동안 쉽게 수정되지 못했다.
괴짜 천재 베살리우스
베살리우스는 벨기에 출신의 의학도로 해부학에 남다른 열정을 가진 학생이었다. 우연히 발견하게 된 뼈만 남은 시체를 가져다 삶은 후 표백한 뒤 다시 맞추어 세계 최초의 인체 골격 표본을 탄생시켰다. 그러나 학교에서 유별난 괴짜로 낙인 찍혀 퇴학을 당해 파리를 떠나고 만다. 이후 당대 최고의 의과대학 중 한 곳인 파도바 의과대학의 교수로 발탁되며 다시 자신만의 이론을 만들어 나갔다. 그는 1543년 해부학 명작으로 손꼽히는 <인체의 구조> 7권을 출판하며 명성을 떨쳤다. 이 책은 6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과 더불어 세밀한 목판화로 구성되어 있다. 베살리우스는 갈레노스의 학설에서 오류를 지적하며 해부학 이론을 폭넓게 발전시켰지만 교회의 거센 반발과 당대 학계의 배척으로 임상의사로 활동하며 생을 마감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해부학의 독립
예술가이자 과학도, 시인, 건축가, 해부학자 등 인류역사상 최고의 천재로 손꼽히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또한 해부학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다. 그는 밀라노의 해부학 교수였던 토레와 함께 생리적 기능과 비교 해부학을 총체적으로 다룬 인체 해부학 백과전서 제작에 뛰어든다. 둘은 시체 안치소에서 30구가 넘는 시체를 해부하며 투시, 기하, 비례 등 치밀한 연구 기법을 사용해 얻은 결과로 1000여 장의 해부도를 그려냈다. 이는 베살리우스보다 40년이나 앞서 얻은 성과이다.
또한 그는 최초로 대뇌 해부를 시도 했고, 장기의 정면, 측면, 후면 관찰 기법과 장기 안에 파라핀을 넣어 해부시신을 보존하는 현대적인 방법을 사용하며 해부학이 외과학으로부터 독립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해부학에 임하는 의대생의 자세
해부학은 이미 인류가 밝혀낸 인체의 기능과 생리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직접 메스를 잡고 인체의 구조를 직접 살펴보고 이해하는 데 그 목표가 있다. 해부학 수업을 앞둔 의대생들은 새로운 지식에 대한 기대감, 그리고 한편으로는 해부 실습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감을 마주하게 된다. 잊지 말아야 할 한 가지는 바로 우리가 가져야 하는 ‘책임감’ 이다. 즉, 우리가 배우고 다루는 지식과 실습 시간에 행하는 모든 것들에 대한 책임감을 잊지 말아야 한다. 히포크라테스 선서의 ‘나는 인간의 생명을 수태된 때로부터 지상의 것으로 존중히 여기겠노라’ 와 같이 우리는 눈 앞에 놓인 시신의 존엄성을 무시해서는 안될 것이다. 또한 지난 해 해부 시신을 앞에 두고 인증샷을 찍어 SNS에 올려 논란이 된 사건과 같이 실습의 목적과 의학도의 본분을 잊는 잘못을 범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또 다른 히포크라테스 선서의 구절인 ‘나는 동업자를 형제처럼 생각하겠노라’ 에 담겨 있듯이, 동기들과 함께 뭉쳐 해부학이라는 어려운 관문을 잘 통과하기를 응원한다.
이 기사는 책 <한 권으로 읽는 의학 콘서트 (빅북, 이문필·강선주 외)> 와 함께 합니다.
오윤서 기자 / 순천향
justinechooh@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