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정신의학 ①: 와 조현병

“The worst part of having a mental illness is people expect you to behave as if you don’t.”

최근 재개봉한 영화 <조커> 속 주인공 아서 플렉이 일기에 적은 문장이다. <조커>는 주인공 호아킨 피닉스의 열연에 힘입어 큰 호평을 받은 영화로, 2019년 개봉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필자는 관람 후 한동안 깊은 여운을 느꼈다. 그 몰입감을 다시 경험하고 싶어 재개봉 소식이 들리자마자 영화관으로 달려갔는데, 4년 전과는 다른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주인공 아서의 정확한 진단명은 무엇이었을까? 영화에서 표현된 여러 증상은 실제 환자들과 일치할까? 아서의 질환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조커>, 깊은 절망과 처절한 분노의 끝

영화 속 정신 질환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기 전, <조커>에 대해 간략히 소개하고자 한다. ‘조커’는 DC코믹스 세계관의 등장인물로, 우리에게 익숙한 히어로 배트맨에 대적하는 악역이다. 이 영화는 평범한 사람이던 주인공 아서 플렉이 어떻게 악역 조커가 되어가는지, 그 과정을 다룬다.

토드 필립스 감독은 영화 초반부터 아서가 받는 폭력과 무례를 관객들에게 그대로 노출한다. 관객은 아서와 함께 시달리며 고통스러워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그를 향한 동정심이 싹튼다. 이 연민이 흔들리게 되는 것은 첫 살인 후 춤 장면. 일반인이라면 자신이 무얼 한 건지 당황하며 죄책감을 느껴야 할 상황에서 아서는 기묘한 당당함과 우아한 희열을 느끼고, 아서의 광기와 처절한 음악이 얽힌 춤은 관객과의 심리적 거리를 한순간에 벌려놓는다. 이때부터 관객은 조커의 등장을 무의식적으로 감지하여 괴리를 느끼기 시작한다.

직장에서의 해고, 동경하던 머레이의 비웃음, 어머니의 건강 악화, 그리고 드디어 밝혀진 절망적인 과거. 연달아 벌어지는 세상의 ‘무례’에 고스란히 짓눌리던 아서는 결국 광기를 억제하지 않기로 한다. 마침내 완전히 날개를 펼친 광기에 열광한 고담 시민들을 내려다보며 조커의 트레이드마크, 웃는 얼굴을 피로 그리는 아서. 영화는 이렇게 조커의 진정한 각성으로 막을 내린다.

영화 속 아서는 주기적으로 상담 치료를 받으며 약을 먹는다. 하지만 그의 지병 중 하나인 감정실금 (감정표현이 자기 의사나 주변 분위기와 상관없이 터져 나오는 신경증) 외에 정확한 진단명은 언급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영화 개봉 이후 아서의 정신 질환에 대한 분석이 활발히 이루어졌는데, 조울증, 자기애성 인격장애, 조현병 등 여러 질환의 가능성이 제시되었다. 본 기사에서는 그 중 조현병에 대하여 다루고자 한다.

<조커> 속 정신질환 – 조현병이란?

조현병의 진단 기준은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는 망상, 환각, 와해된 언어, 와해된 행동, 음성 증상 중 2개 이상이 6개월 이상 지속되는 것이다. 이때 2개 증상 중 망상, 환각, 와해된 언어가 하나 이상 포함되어야 한다. 둘째는 이러한 증상으로 인해 직장, 학교 또는 사회적 기능이 크게 악화되는 것으로, 대부분의 정신질환에서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진단 기준이다. 그렇다면 과연 아서는 이 기준에 부합할까?

-진단

첫 번째 증상인 망상부터 살펴보자. 필자가 첫 관람 때 가장 충격을 받았던 장면이 바로 아서와 이웃집 여성 소피의 연애가 전부 망상이었음이 드러나는 부분이었다. 아서는 엘리베이터에서의 첫 만남 이후로 소피의 뒤를 몰래 쫓는다. 이를 눈치챈 소피가 아서를 찾아오자 아서는 농담으로 응수하고, 소피가 웃으면서 둘은 친해진다. 소피는 아서의 스탠드업 코미디를 보러 오기도 하고, 아서의 어머니가 쓰러졌을 때도 가장 먼저 달려와 곁을 지키고 위로해 주는 든든한 연인이 된다. 그러나 어머니의 비밀을 알게 된 아서가 소피를 찾아갔을 때 소피는 평소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아서에게 나가달라고 부탁하고, 심지어 아서가 자신의 딸을 해칠까 봐 불안해한다. 즉, 지금까지 둘의 관계는 전부 아서 혼자만의 망상이었던 것이다.

망상은 실제 사실과 다르고 논리적인 설명으로 시정되지 않으며 교육 정도나 문화적인 환경에 걸맞지 않은 잘못된 믿음이나 생각이다. 이는 조현병 환자들의 대표적인 증상으로, 일반적으로는 아서처럼 비교적 현실적인 망상보다는 “누군가가 나를 도청하고 있다.” ‘사람들이 나를 죽이려고 한다.”와 같이 현실과 더욱 동떨어진 것이 대부분이다. 아서의 망상은 소피의 반응을 통해 바로 깨졌고, 문화적인 환경에 걸맞지 않을 정도는 아니기 때문에 진단 기준에는 모호하다.

조현병의 두 번째 주요 증상은 환각이다. 아서는 소피와 연인 관계라는 망상 속에서 소피의 모습과 목소리를 전부 상상해 냈다. 어머니가 쓰러지셨을 때 망상 속 소피는 아서를 안아주었고, 그전에 아서는 소피와 키스하기까지 했으니, 아서에게는 환각 증세도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세 번째 증상인 와해된 언어는 생각이나 질문과 답변 간에 예상되는 논리적 연관성이 없는 것을 뜻한다. 주로 생각의 주제가 계속 바뀌거나 단순한 질문에 연관성이 없는 세부 내용을 이야기하며 장황한 답변을 하는 것이다. 아서에게는 이런 증상이 나타나지는 않는다.

네 번째 증상인 와해된 행동은 일반적이지 않은 매우 특이한 행동, 즉 옷을 입지 않거나 특별한 이유 없이 소리를 지르는 것 등을 뜻한다. 아서가 후반부부터 얼굴에 짙은 화장을 한 채로 활동하는 것 또한 낮은 정도의 와해된 행동이라고 볼 수 있다.

다섯 번째 증상인 음성 증상은 정상적으로 나타나야 할 기능이 감소하는 것으로, 주변에 대한 무관심이나 무감동 등이다. 이는 보통 발병 후기에 두드러지는 증상으로, 아서는 분노, 좌절, 실망, 절망 등 여러 감정이 뚜렷이 나타나기 때문에 이에 해당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아서는 5가지 중 2가지 증상이 지속해서 나타나므로 조현병으로 진단할 수 있다.

-치료 및 예후

조현병의 원인은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뇌에서 분비되는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의 불균형으로 추정된다. 아서처럼 어린 시절 학대를 당했거나 뇌 손상을 입은 경우 또한 원인이 될 수 있다.

치료는 주로 도파민 불균형을 타깃으로 하는 항정신약물을 복용하게 되는데, 이때 중요한 것은 환자들의 치료에 대한 순응도이다. 조현병 환자들은 자신이 병에 걸렸다는 인식 자체가 없는 경우가 많다. 망상과 환각을 실제와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 특징이기 때문에 환자를 설득하여 치료를 시작하고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조현병 환자의 예후는 좋지 않다. 20~30%의 환자는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하지만, 약 절반은 장애가 지속된다고 한다. 특히 극 중 아서처럼 증상 발생 후 치료를 받기까지의 기간이 길거나 환경적인 스트레스가 지속되는 경우, 그리고 알코올 등 약물을 남용하거나 젊은 나이에 발병하는 경우에 예후가 더욱 나쁘다. 약물 복용으로 증상이 많이 나아지더라도 재발률이 높으며, 재발한 경우 약물 치료를 5년 이상 유지해야 한다. 아서처럼 자살을 시도하거나 폭력을 저지르는 경우 평생 약을 복용해야 한다.

지금까지 영화 <조커>의 주인공 아서 플렉의 정신 질환에 대해 조현병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가상의 인물인 만큼 정확한 진단을 내리기는 힘들지만, 영화 속에 녹아 있는 정신질환 묘사를 찾아내다 보면 한층 더 깊게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조현병에 대해 더 자세히 알게 된 지금, 영화 <조커> 속으로 다시 한번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이은수/울산

gracelee1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