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실태를 고하다

박근혜 씨가 대통령직에서 탄핵 된 지 1년여간의 시간이 흘렀다. 이는 OECD국가 중 국가원수가 첫번째로 국민의 손에 의해 파면된 사례로,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임을 알 수 있게 하는 강력한 사건이었다. 이렇게 대한민국은 민주주의가 잘 정착된 나라이다. 실제로 대한민국은 아시아 권역에서 민주주의 지수가 제일 높으며, 2000년대 후반부터 전통적인 민주주의 강국이던 프랑스, 벨기에를 제치고 계속 격차를 넓혀가고 있다.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점점 성숙해져 가고 있으며, “내가 바로 내 나라의 주인”이라는 의식을 통해 선진 문화를 다 함께 만들어 나가고 있다.

그러나 아직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성숙하지 않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에서는 각 국가별 민주주의 지수를 ‘선거의 과정과 다양성 (electoral process and pluralism), 정부의 기능 (functioning of government), 정치 참여 (political participation), 정치 문화 (democratic political culture), 시민 자유 (civil liberties) 의 5가지의 지표로 평가한 후 산출한다. 산출된 민주주의 지수를 토대로 국가들을 크게 4가지로 나누는데, 완전 민주주의 (full democracy), 결함 있는 민주주의 (flawed democracy), 혼합형 체제 (hybrid regime), 권위주의 체제(authoritarian regime)로 나눈다. 대한민국은 결함 있는 민주주의로 분류되었다. 성숙한 민주주의와는 약간 거리가 있다는 뜻이다. 어떤 점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의 발목을 잡고 있을까?

 

#엘리트주의와 대중주의의 부조화

사회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살아간다. 부유한 자와 가난한 자, 고학력자와 저학력자 등 다양한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다. 현대에는 이러한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민주주의 사회를 이루고 있다. 엘리트주의 (Elitism)는 철학상으로 엘리트들이 국가를 주도적으로 통치해야 한다는 주의이다. 플라톤이 국가론에서 언급했던 철인정치 (rule of philosophers)와 맥이 닿아 있다. 고학력자 혹은 식견이 넓은 자들이 통치를 잘 한다면 효율적이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그 사회는 발전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대표적인 예는 동남아의 강소국 싱가포르로 경제적 관점에서 본다면 싱가포르는 엘리트주의를 통해 큰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그러나 엘리트주의의 폐해는 만만치 않다. 이는 일반 대중의 잠재력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또한 인간의 이성이 완벽하지 않은 만큼 그 엘리트들도 최선의 결정을 도출해내지 못 할 수 있다. 심지어 편협한 이익을 좇아 비합리적 선택을 할 위험도 존재한다. 따라서 생길 수 있는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는 가능성이 존재한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바로 대중주의 (Populism)이 있다. 이는 정치적 주권이 일부 엘리트들에게 집중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 대중에게 평등하게 부여되어야 한다는 사상이다. 이는 엘리트 주의의 폐해를 막아 줄 수 있으며, 더욱 다양한 민주주의의 방식을 제시해 준다. 그러나 대중이 단기적 이익에 집착한 나머지 장기적 안목이 부족한 정책을 만들 수 있다. 예를 들어 그리스의 계속된 무상복지로 인한 국가부도 사태, 아랍의 봄 이후로 이슬람 근본주의의 창궐한 사례 등이 있다. 또한 대중주의의 큰 맹점은 여론과 부합되지 않는 의견들은 무시된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대중주의 사회에서 어떤 역기능이 나타나더라도, 이를 고치기가 매우 어려워진다. 즉, 스스로 정화할 수 있는 능력이 떨어진다. 이번 문재인 케어에 대해서도 일반 대중들과 의학계 간의 의견의 간격이 크지만, 의학계의 의견은 대다수의 여론에 의해 경시되는 상황도 대중주의의 극단적인 사례로 볼 수 있다. 또한 탄기국과 박사모가 다른 의견들에 대해 아예 귀닫고 정치 극단주의로 나타나는 현상도 하나의 예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엘리트주의가 마찬가지로 스스로 정화능력이 떨어진다.

극단적인 엘리트주의나 대중주의는 스스로 정화할 수 있는 능력이 떨어진다. 따라서 성숙한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엘리트주의와 대중주의가 대립하는 양상으로 보았을 때, 이 둘이 잘 조화로운 상태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각각의 극단주의는 좋지 않다. 그러나 현재 대한민국은 대중주의와 엘리트주의가 조화롭지 못하다. 왜 이런 상황이 벌어졌을까?

우선 엘리트주의가 지금 괴멸적인 상태이기 때문이다. 관료들로 대표되는 엘리트주의는 이미 국민들의 신뢰를 잃어버린 지 오래다. 9년간의 보수정권이 그들의 원칙을 지킨다는 ‘보수’라는 기치를 저버리고 행한 여러 부패 사건들, 국가의 근간을 뒤흔들었던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 때문에 국민들이 관료들에 대한 불신감은 팽배하다. 엘리트주의의 약점이라고 지적 받던 스스로 부패할 수 있는 현상이 심해진 것이다. 따라서 이런 관료주의에 대한 불신감을 통해 이에 비하여 대중주의의 영향력은 커지게 되었고, 전문성은 많이 퇴색되고 여론 동원성이 더욱 중시되는 직접 민주주의의 단점만을 모은 현상이 지속되고 말았다.

우리나라의 민주주의 제도는 1987년 6월 항쟁 이후 성공적으로 자리잡았다. 우리나라의 민주주의 지수가 아직은 결함 있는 민주주의에 해당하지만, 그것 중에서는 상위권에 가깝다. 또한 국민이 국가원수를 투표로 뽑고, 이를 국민의 주권으로 헌법에 의거하여 다시 국가원수를 끌어내린 살아있는 민주주의 국가이다. 그러나, 더욱 우리나라가 민주시민국가로서 성숙해지려면 전에 말한 많은 문제들을 고쳐 나가야 한다. 우선 대중주의의 약점 중 하나인 상대방의 의견이나 생각들을 묵살하는 그런 행태를 고쳐야 한다. 현대 민주주의의 근간인 상대방의 의견, 생각을 인정하는 태도 즉, 다원주의(pluralism)적 태도가 절실히 요구된다.

 

유현수 기자/가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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