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멘 내전 – 왜 그들은 서로 총구를 겨누나

예멘 내전 – 왜 그들은 서로 총구를 겨누나

‘제주 난민 사태’ 야기한 예멘 내전의 역사적 원인과 중동의 냉전

전쟁을 피해 제주로 온 예멘 난민

제주도로 무비자 입국해 난민 지위를 신청한 예멘인이 올해에만 500여 명에 이른다. 유럽의 난민 문제를 우리와는 상관없는 일로 여겼던 우리나라 국민들은 바다 건너 예멘이라는 생소한 나라에서 온 낯선 손님에 적잖이 당황했다. 이 예멘인들의 처우를 놓고 온 나라는 지금 난민 문제에 대해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다. 난민 수용을 거부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고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수십만 명이 반대 의사를 표시하고 있다. 한편 인권단체에서는 예멘인들을 인도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난민 문제는 더 이상 남의 나라 일이 아니라 우리의 삶과 직접적으로 얽힌 이야기가 되었다. 이들을 수용할지에 관한 논쟁과는 별도로, 이들이 왜 고국 예멘을 떠나야만 했는지 이해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본 기사에서는 예멘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하는 의대생들을 대상으로 예멘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간단하게 설명해보려 한다.

전 대통령과 현 대통령의 싸움

예멘 사태의 중심에는 ‘알리 압둘라 살레(이하 살레)’, ‘압드라부 만수르 하디(이하 하디)’라는 두 사람이 있다. 살레는 예멘의 전 대통령이고, 하디는 예멘의 전 부통령이자 현 대통령이다. 예멘 사태는 이 각각의 지도자를 지지하는 이슬람 종파 및 주변국 사이의 싸움으로 볼 수 있다.
예멘도 이전에는 우리나라처럼 남과 북으로 나누어진 분단국가였다. 1994년에 두 예멘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는데, 북예멘의 승리를 이끌며 통일 예멘을 탄생시킨 지도자가 바로 살레 대통령이다. 살레 대통령은 강력한 독재 정치를 시작했다. 누구도 내전의 승리를 가져온 영웅 살레의 독재를 막을 수 없었다. 하지만 2011년에 튀니지에서 시작된 ‘아랍의 봄’이 중동을 휩쓸며 예멘 주민들은 민주화를 외치며 살레의 퇴진을 요구했다. 살레를 이어 다음으로 정권을 잡은 사람이 바로 하디 대통령이다.
새로운 하디 대통령은 수니파의 지지를 받고 있었다. 이슬람교는 수니파와 시아파라는 두 종파로 나뉘는데, 예멘 국민은 절반씩 각각 수니파와 시아파를 믿고 있다. 반면에 쫓겨난 대통령 살레는 시아파의 지지를 받는 사람이었다. 한편 북예멘에서는 시아파를 믿는 ‘후티’라는 무장 단체가 부상하며 쿠데타를 일으켰다. 자리를 되찾고 싶었던 살레는 후티 반군과 손을 잡는다. 요약하면 살레 전 대통령과 후티 반군, 하디 현 대통령과 정부군의 싸움이 지금 벌어지고 있는 것이 예멘 내전이다.

예멘 내전은 사우디 – 이란의 대리전

이렇게만 보면 간단하지만, 예멘 내전을 제대로 바라보려면 주변 국가들의 복잡한 사정을 함께 살펴보아야 한다. 중동에서 벌어져 온 수많은 갈등, 전쟁, 내전에 항상 빠지지 않고 관여하는 두 국가가 있다. 바로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이다. 이 두 거대한 나라는 언제나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종교적으로도 뿌리 깊은 갈등을 간직하고 있다. 이슬람교는 그 옛날 예언자 무함마드의 후계자 문제에서 비롯된 분열이 1400년이 넘도록 유지되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오늘날에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이 각각 수니파, 시아파의 핵심 국가라고 볼 수 있다.
당장이라도 싸울 것 같은 두 나라이지만,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은 지금까지 한 번도 서로 직접적인 전쟁을 선포한 적이 없다. 대신 중동의 여러 지역에서 자신들의 종교와 맞는 단체를 지원하는 형태로 간접적으로 싸우고 있다. 즉 과거 미국과 소련이 벌인 대리전과 비슷한 ‘중동판 냉전’이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은 중동의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주변국들에 영향력을 넓히려 하고 있고 그것이 수많은 지역을 황폐하게 만들며 난민을 만들어내고 있다. 대표적으로 시리아에서 이란은 시아파 정부 편에 서서 싸우고 있고 사우디아라비아는 수니파 저항군을 지원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예멘에서도 하디 대통령의 뒤에 사우디아라비아가 있고, 후티 반군은 이란의 군사적인 도움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예멘 내전을 둘러싼 국제적 상황이다.

내전 끝낼 물꼬 트인다

실제로는 미국을 포함한 강대국들과 예멘에서 세력 확장을 꾀하는 알 카에다 등 더 다양한 문제가 얽혀있지만, 핵심적인 갈등 관계는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다. 다만 최근 몇 년간 상황을 크게 바꿀 사건들이 벌어지고 있다. 살레 전 대통령은 사우디와 휴전을 시도했는데, 이를 반역 행위로 생각한 후티 반군은 2017년 살레를 총살해버렸다. 그리고 2018년 12월 13일에는 예멘 정부와 반군이 내전 개시 이후 처음으로 악수를 나누는 장면이 보도되었다. 유엔이 중재하여 일주일간의 평화회담 끝에 휴전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양측은 내년 1월 말 2차 협상을 벌일 예정이다. 예멘 내전으로 그동안 어린이를 포함해 1만 명 넘게 숨지고 예멘 국민 2천 200만 명가량이 굶주림에 시달려왔는데, 이번 합의 이후 내전이 완전히 종식될 수 있을지 기대를 모으고 있다.

20세기 냉전의 한복판에 있었던 우리나라도 내전을 겪었다. 그리고 현재 그 상처를 치유하려는 중이다. 예멘의 역사는 우리나라의 현대사와 은근히 닮은 구석이 많다. 하루빨리 예멘에 평화가 찾아와 비극이 끝을 맺고, 우리나라도 난민 수용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루어나가기를 기대한다.

김경훈 기자/울산
<gutdoktor@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