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방학 때 내 마음 속에 담아왔던 흔적들

여름방학 때 내 마음 속에 담아왔던 흔적들

“낯선 마을에서 홀로 깨어난다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기분 좋은 느낌이다.”
-프레야 스타크, 탐험가-

끔찍했던 폭염이 대한민국에 내리쬐던 8월 여름, 난 다행히도 한국을 피해 도망쳐 있었다. 몇 없는 내 행운이었다. 한국을 벗어나서 친구들과 낯선 풍경을 보면서 즐거워하기도 하고, 나와는 다른 사람들의 행동양식들을 보면서 따라해 보기도 했다. 한국에 다시 도착해 있었을 때, 난 벌써 이방인이 되어 버렸다. 처음엔 낯선 곳으로 보였지만, 단지 우리가 낯선 이였기에 낯설었을 뿐이었다.

“낯선 땅이란 없다. 단지 여행자가 낯설 뿐이다.”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이번에 다녀왔던 곳은 그리스 지역과 조지아 지역이다. 그리스 지역은 유럽 동남부 발칸반도의 끝자락에 위치하고, 조지아 지역은 남러시아와 터키와 이란 사이에 있는 캅카스 지역에 위치해 있다. 재수 중에 존 줄리어스 노리치의 <비잔티움 연대기>라는 책을 읽었다. 어느 이야기든 흥미롭겠지만, 로마 제국의 전통과 기독교 문화가 마구 뒤섞여있는 경계지에서 일어나는 여러 이야기들이 매우 흥미로웠다. 후기 로마 제국(동로마 제국)의 배경이 되었던 그리스와 터키에 관심이 가게 되었고, 모종의 이유로 그 둘 중 그리스만 가게 되었다. 조지아의 경우에는 그리스랑 비교적 가까이 있기도 했고, 동유럽의 스위스라 불릴 만큼 멋진 경관들과, 인지도와 다르게 유구한 역사가 있다고 해서 흥미있어 가 보게 되었다.

아쉬웠던 비잔틴 관련 유적

그러나 새로움이 곧 즐거움이었다
싱가포르를 경유해서 그리스 아테네에 도착하였다. 아테네에 도착하면서 나를 처음으로 마주한 것은 그리스 시대의 석상도, 여유로운 모습의 그리스 사람도 아니었다. 바로 그리스 문자였다. 수학시간에 많이 바왔던 문자 알파와 베타, 총합을 나타내는 시그마, 물리에서 진동수를 나타내는 뉴, 원주율의 파이. 이런 학문적 이유로만 내게 다가왔던 문자들이 이곳 그리스에서는 사람들의 일상생활에 녹아 있는 것들이었다. 수하물을 찾으러 가는 표지판에는 위에는 그리스어로 쓰여 있고 아래는 영어로 쓰여 있었다. 원래 알고 있었던 것들이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오자 기분이 오묘하였다. 금방 그 오묘함은 즐거움으로 바뀌었다.
아테네는 낭만적인 도시였다. 아테네 시내에서는 어느 곳이든 파르테논 신전이 보였다. 파르테논 신전은 아크로폴리스 지역에 있는데, 아크로폴리스라는 말이 그리스어로 높은 도시이기 때문에, 언덕위에 위치하여 어디서나 잘 보였다. 한편 아크로폴리스 아래에는, 19세기에 대대적으로 정비된 아테네 시내가 위치해 있었다. 아테네 시내는 전형적인 남부 유럽 도시 같으면서도 약간은 다른 느낌을 풍겼다. 터키의 전신이었던 오스만 투르크의 지배를 400년 가까이 받았기 때문인지 약간은 동양적인 느낌이 났다. 이탈리아 로마 같은 거리에서 터키의 케밥과 비슷한 고기 요리인 수블라키를 팔고, 터키 요리에서도 많이 쓰이는 향신료인 오레가노의 향기가 이곳에서도 많이 풍겼다. 서양과 동양의 경계지라는 말이 실감나는 순간이었다.
이곳은 매우 여유로웠다. 경제위기 때문에 예전보다는 많이 그리스인들의 생활이 팍팍해졌다고 들었지만, 식사시간만큼은 예외였다. 여전히 여유롭게, 주위 사람들과 웃고 떠들면서 활기차게 먹고 있었다. 먹는 것이 아니라 그저 사교의 장처럼 보였다. 우리나라의 술자리에서 안주를 먹는 정도로, 말하는 것이 주고 음식은 대화의 질을 높여주고 대화의 화룡점정을 찍어줄 최상의 안줏거리였다. 웨이터들도 이에 익숙한지 여유롭게 음식을 서빙했고, 계산서도 우리가 직접 카운터에 가서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웨이터들이 돈을 받으러 이리저리 테이블들을 지나다니고 있었다. 처음에는 너무 여유로워서 답답했다. 그러나 이는 단지 그들의 생활방식일 뿐이라고 생각하고나니 새로웠고, 이윽고 즐거워졌다. 그리고 이 답답함을 달래줄 음식들이 매우 환상적이었고, 인심도 후한지 가는 곳마다 디저트도 공짜로 나왔다. (안 나온 곳도 있었다)
아쉽게도 그리스에는 비잔틴 관련 유적이 많지는 않았다. 실제로 그리스는 비잔틴 시대에는 변방이었다. 비잔틴 시대 때의 중심지는 지금의 이스탄불, 콘스탄티노플 지역이었고, 인구가 많았던 지방은 산지가 많은 그리스 지역이 아닌, 땅이 비옥했던 터키 서부 지역이었다. 그러나 자연만큼은 아름다웠다. 아테네에서 비행기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자킨토스 섬과 케팔로니아 섬에서 강렬한 태양빛이 넘실거리는 지중해를 보았다. 단연코 가장 예쁘다고 자부할 수 있는 곳은 나바지오 해안이었다. 쉽렉(shipwreck;난파선) 비치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드라마 태양의 후예에서 송중기와 송혜교의 데이트 장면으로도 나왔던 곳이기도 하다. 절벽 위에서 난파선이 있는 노랗게 빛이 나는 모래 해안과, 그 주위를 감싸고 있는 코발트색 바다는 조화를 이루어 내 눈을 즐겁게 했다. 사진으로 담아가기에는 충분하지 않아 눈으로 충분히 즐기고 나서야 사진을 찍기 시작했을 정도로 눈에 꽉 차는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혹자는 배가 이 해안의 아름다움에 이끌려 좌초되었다고 했는데, 정말 맞는 말 같았다.

때묻지 않은 순수함
순수함과 아날로그 감성

그리스를 떠나와 조지아에 도착하였다. 조지아의 수도 트빌리시는 매우 고즈넉한 도시였다. 트빌리시는 동유럽 카프카스의 숲에 숨어있는 한 공주라고 혹자가 평했을 정도로 아름다운 도시였다. 붉은 지붕들로 이루어진 구시가지와 예전 소련 시대에 정비했던 예쁜 공원들, 춤과 예술을 사랑하는 만큼 위대한 시인과 음악가들의 동상들이 세워져 있는 모습들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쿠라 강이 도시 한가운데를 관통하고 있었다. 쿠라 강의 기슭에는 이 도시의 창건자였던 고대 조지아의 왕, 고르가살리 왕의 동상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 반대편에는 온천 지대가 자리하고 있었다. 트빌리시의 예전 이름인 티플리스라는 말의 의미가 따뜻한 곳이라는 의미로 온천을 이용한 사우나 시설들이 도시 곳곳에 있었다. 그 중에는 제정 러시아 시대의 위대한 시인인 알렉산드르 푸슈킨이 방문했던 흔적도 남아 있었다. 1829년에 남긴 푸슈킨의 서명이 목욕탕 앞에 떡하니 붙여 있었다.
트빌리시를 돌아다닐 때는 지하철을 타고 다녔다. 서울보다 앞선 1966년에 소련 시대 때 개통된 지하철이다. 오래된 지하철이라 약간 이상한 냄새도 나긴 했지만, 지하철 열차가 오래된 감성을 풍기고 있어 매우 고즈넉했다. 지하철을 타고 역 광장 역에 도착하여 조지아 최대의 재래시장에 도착하였다. 나랑 친구들만 그 곳에서 돌아다니는 유일한 동양인이었다. 재래시장에 가보니 조지아 특산품인 와인들이 진열되어 있는 곳이 있었다. 시음할 수 있냐고 물어보니 주인장이 흔쾌히 시음할 수 있다며 작은 잔에 와인을 가져다 주었다. 와인을 잘 마셔보지 않아 맛을 평가할 수는 없었겠지만 무척 달았고 이에 비해 향이 쎄했다. 조지아 와인은 서유럽의 프랑스 와인처럼 동구권에서는 대단한 입지를 가지고 있을 정도로 유명했고 이에 대해 조지아 사람들은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식품 코너쪽에 들어갔더니 오디가 한 바구니 넣어져 있는 것을 보았다. 매우 큰 바구니였다. 그 중에서 일부만 사고 싶어서 구글 번역기를 돌려가면서 주인장과 대화를 나누었다. 일부만 사고 싶었지만, 곧 오후여서 폐장할 시간인지 다 가져가라고 하셨다. 단돈 2500원 정도에 한 바구니를 샀고, 난 그들의 후한 인심을 느낄 수 있었다. 후한 인심을 느껴보니 나는 느껴보지 못했던 70년대, 80년대의 아날로그 시대에 살았던 우리 엄마 아빠 세대가 이런 느낌이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프로메테우스의 신화가
어려있는 웅장한 카즈베기 산

트빌리시를 뒤로 하고 카즈베기로 향했다. 카즈베기는 러시아와 조지아의 국경에서 가까운 한 마을이다. 이 마을에서는 멀리 5047m의 높이와 함께 만년설을 자랑하는 카즈베기 산이 보인다. 여름이었는데도 만년설이 있어 얼마나 높은 산인지 실감이 났다. 카즈베기의 게스트하우스에 우리들은 짐을 풀고, 트레킹을 할 다음날을 기다렸다.
다음날이 밝고, 우리는 트래킹을 시작했다. 우리 앞에 있는 것은 웅장한 자연이었다. 카프카스 산맥에 속해 있는 카즈베기 산은 우리에게 웅장함을 선사하고 스스로 인간은 자연 앞에 작은 존재임을 일깨워 주었다. (실제로도 유럽에서 가장 높은 산인 옐브루스 산-5642m도 카프카스 산맥에 위치해 있다) 이 카즈베기 산에 얽혀 있는 한 일화가 있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프로메테우스에 관한 이야기다.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에게 불을 선물하였고, 이는 최고의 신인 제우스의 노여움을 사 이 산의 꼭대기로 유배당하게 된다. 이곳에서 그는 독수리에게 간을 매일 쪼아먹히게 되는 형벌을 당하게 된다. 이런 일화가 서려 있을 정도로 예전부터 이 산은 인간들에게 웅장함을 선사하고, 자연의 거대함을 느끼게 해 주었다. 우리는 트레킹 도중에 양치기가 양 떼에게 풀을 먹이는 모습과, 목동이 소를 끌고 다니는 모습들을 많이 보았다. 한국에서는 많이 보지 못하였기에, 무척 새로웠다.
솔직히 이번 여행은 많이 힘들었다. 갑작스럽게 여행을 준비하였기 때문에 경유지가 많은 비행기도 있었고, 야간에 뜨고 새벽녘에 도착하는 비행기 편들도 많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새로운 곳들을 보면서 즐거움을 느끼기도 했지만, 동시에 노곤한 몸을 이끌고 피곤했던 경험도 많기는 매한가지였다. 그러나 한국에 도착해서 편한 상태로 잠을 청할 때 나는 느꼈다.

“집에 돌아와서 자신의 오래되고 익숙한 베게에 기대기 전까지 아무도 그 여행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깨닫지 못한다.”
-린 위안-

이제 비로소 몸이 편해졌고, 난 내 마음속에 담아왔던 여행의 추억이 담긴 한 조각 조각들을 음미하면서, 서로 맞춰보면서 이 여행의 진가를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유현수 기자/가천
<happymind906@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