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선수들의 진정한 적 : 부상
운동선수들을 위협하는 가장 큰 적은, 어쩌면 자신과 경쟁하는 다른 운동선수가 아닐지도 모른다. 부상 (injury)은 신체 능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려야 하는 운동선수들이 벗어날 수 없는 굴레와도 같다. 해마다 수없이 많은 운동선수들이 부상으로 경기에서 빠지고, 불운한 몇몇 선수들은 심한 부상을 입고 회복하지 못해서 결국 선수생활을 마감하기도 한다. 스포츠를 좋아하거나 학과 수업을 열심히 들은 의대생이라면 ‘전방 십자인대 파열 (ACL tear)’, ‘어깨 충돌 증후군 (Impingement syndrome)’, ‘테니스 팔꿈치 (Lateral epicondylitis)’, 혹은 ‘토미 존 수술 (Tommy John surgery)’ 등의 이름을 한 번 쯤 들어봤을 것이다. 이번 기사에서는 축구, 야구, 농구 등의 유명한 종목들을 제외하고, 독자들이 익숙하지 않은 종목들을 중심으로 각 종목 선수들이 잘 당하는 부상에 대해서 소개할 것이다.
육상 : 햄스트링 파열
햄스트링은 넙다리뼈의 뒤에 붙어있는 세 근육, 즉 넙다리두갈래근 (biceps femoris), 반막근 (semimembranosus), 반힘줄근 (semitendinosus)을 묶어서 이르는 말이다. 세 근육은 모두 무릎관절의 굽힘과 엉덩관절의 폄 (넙다리두갈래근의 짧은갈래 제외)에 관여한다. 하지만 햄스트링이 하는 또 다른 중요한 역할이 있다. 햄스트링은 넙다리네갈래근의 길항근으로 작용하여, 걷거나 뛰는 상황에서 발이 땅에 닿기 직전에 무릎 관절의 펴는 동작을 멈추게 한다. 이 과정에서 세 근육들의 닿는 곳, 특히 넙다리두갈래근의 닿는 부분에 강한 힘이 가해지게 된다. 따라서 단거리 육상선수나 축구선수 등 달리면서 폭발적인 힘을 내는 운동선수들이 햄스트링 부상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 2008년에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단거리 육상선수들이 당하는 부상의 약 29%가 햄스트링 파열이라고 한다. 치료법으로는 연조직 부상의 네 가지 치료방법인 RICE(rest, ice, compression, elevation) protocol을 주로 사용하는데, 근육이나 힘줄이 2mm이상 파열된 경우에는 수술적으로 치료하는 것이 권장된다. 치료기간은 근육의 파열 정도에 따라 달라진다. 낮은 수준의 부상 (Grade 1 strain)이면 2주 정도의 재활기간만 거치면 회복되지만, 심하게 다쳤을 경우에는 (Grade 3 strain)수술 후에 근육과 힘줄이 완전히 붙고 제 기능을 할 때까지 6개월에서 1년 정도가 걸리기도 한다.
미식축구 : 만성 외상성 뇌병(CTE)
미식축구는 가장 접촉이 많고 격렬한 구기종목 중 하나이다. 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전미미식축구리그(NFL) 필라델피아 이글스 소속인 하로티 나타(Haloti Ngata)가 다른 선수에게 부딪힐 때 순간적으로 가해지는 힘이 무려 8.4 톤에 달한다고 한다 (하로티 나타의 키는 193cm, 몸무게는 150kg, 40야드 달리기 기록은 5.13초이다). 이는 50km로 달리는 자동차를 타고 안전벨트를 맨 채로 교통사고를 당할 때 받는 힘보다 약 3배 이상 큰 힘이다. 미식축구 선수들은 이렇게 큰 힘을 경기를 치를 때 마다 받는데, 충격들이 점차 쌓이면서 결국은 뇌에 문제가 생기게 된다. 만성 외상성 뇌병증은 알츠하이머병, 이마관자엽 치매 (FTD)와 같이 뇌 내에 타우 단백질 (Tau protein) 이 쌓이는 신경퇴행성질환 중의 하나인데, 미식축구 선수나 권투 선수처럼 두개골에 외상을 많이 받는 사람들이 잘 걸리는 질병이다. 대부분의 미식축구선수들이 30대 중반에 이르기 전에 은퇴하는데, 사람에 따라서 다르지만 보통 은퇴 후 10년 이내에 주의력 결핍 장애나 어지럼증을 호소하기 시작한다. 병이 점점 진행하면서 환자는 편집증이나 우울감, 공격성, 성격변화, 충동적 성향, 판단력 결핍 등을 보이고, 말기에 이르러서는 치매로 진행하게 된다. 지금으로써는 다른 많은 신경퇴행성질환들처럼 치료법은 없고 치매에 준해서 보존적 치료를 하는 것이 최선이다. 전도유망한 미식축구 선수였던 애런 에르난데스 (Aaron Hernandez)는, 약혼녀의 여동생의 남자친구를 살인한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하던 중 27세의 나이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의 부검 결과가 상당히 충격적이었는데, 그 나이의 건강한 남성의 뇌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뇌피질과 해마, 뇌활의 크기가 심각하게 줄어들어 있었으며, 3단계의 만성 외상성 뇌병증에 걸려있었던 것으로 사후진단 되었다. 이런 병세가 그의 공격성과 감정기복 (그는 평소에도 대마초를 흡연하고 싸움에 휘말리는 등 자제력이 부족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살인을 하는 데에 영향을 주었으리라는 의심이 가능하다. 이런 단적인 사례 외에도 미식축구선수들에게 만성 외상성 뇌병증의 문제는 꽤나 심각해서, 2017년 미국의학회(AMA)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사망한 미식축구선수 111명을 부검한 결과 무려 110명(!)에게서 CTE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E-sports : 손목터널증후군
E-sports는 격렬한 신체활동이 없는 종목이라 자칫 부상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생각보다 많은 선수들이 부상에 시달린다. 프로게이머는 보통 하루에 10~12시간 이상 연습을 하는데, 컴퓨터를 이렇게 오래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손목부위에 무리가 가게 된다. 손목부위에 가해진 압박 때문에 손목굴 (carpal tunnel)이 좁아지고, 그 안으로 지나가는 정중신경이 압박받으면 손목터널증후군이 발생하게 된다. 증상으로는 정중신경이 지배하는 엄지, 검지, 중지 쪽의 욱씬거리는 통증이나 감각 저하, 손목 저림 등이 있다. 간혹 어깨나 자뼈(ulna) 부위의 통증을 호소하는 경우도 있다. 치료법으로는 수술적 방법과 비수술적 방법이 모두 있지만, 증상이 심하게 악화된 경우를 제외하고는 초기에는 수술적 방법을 권하지는 않고 보통 물리치료나 스테로이드 투여, 부목대기 등의 비수술적 방법을 우선적으로 고려한다. 수술적 방법으로 치료할 경우에는 절개수술(open surgery)이나 내시경 수술 (endoscopic carpal tunnel release)을 하는데, 어떤 방법이든 손목굴의 위쪽을 형성하는 가로손목인대 (trans-verse carpal ligament)를 잘라서 정중신경에 가해지는 압박을 덜어주게 된다. 병이 많이 진행되지 않은 경우에는 수개월 동안 적절한 휴식과 보존적 치료를 병행하면 완치될 수 있다. 하지만 선수생명이 짧고 (프로게이머 평균 연령 20.3세, 평균 선수생활 기간 5년 이하) 경쟁이 심한 종목 특성상 몇 개월을 선수생활을 하지 않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전직 스타크래프트 1 선수였던 최연성과 김준영은 손목터널증후군에 걸린 후 연습 부족을 극복하지 못하고 각각 2008년과 2009년에 은퇴했다.
이현석 기자/울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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