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함께 떠나는 의학 오디세이

로마의 라오콘 군상

로마(Rome) 하면 무엇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가? 힘, 세력을 뜻하는 국가명에서부터 거대한 로마 문명을 증명하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원형 경기장 콜로세움, 무려 콘크리트로 돔 천장을 만들어 완성한 판테온,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을 납득하게 만드는 고대 도로들이 떠오른다. 지난 의학 오디세이 기사에서 해부학의 역사에 대해 살펴보았다면 이번에는 로마의 예술에 숨겨진, 사소하지만 재미있는 의학 지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고통 그 자체를 담은 라오콘 군상
로마의 바티칸 박물관에서 만날 수 있는 라오콘(laocoon) 군상은 2.4미터의 대리석 조각상으로 트로이전쟁 중 그리스군의 목마를 성에 들이는 것을 반대한 라오콘이 포세이돈의 분노를 사 그의 뱀들에게 죽임을 당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라오콘 뿐만 아니라 그의 두 아들까지 두 마리 뱀에게 감긴 채로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뱀에게 물리는 찰나 인간이 느끼는 고통과 인간의 생존 본능을 생생히 담은 이 작품은 인간이 신에게 저지른 죄에서 오는 고통을 주로 다뤘던 당시의 다른 작품들과 큰 차별점을 갖는 것으로 평가된다. 작자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세 명의 그리스 예술가들로 추정되며, 미켈란젤로 등 많은 예술가들에게 큰 자극과 영감을 준 작품으로 유명해졌다. 극한의 고통을 느끼는 순간을 묘사한 이 작품에서 의학적 원리를 찾아볼 수 있다.

상반신에 남은 고통의 단서들
작품의 위쪽부터 자세히 살펴보면, 구부리고 있는 오른 팔 부분이 자연스럽지 못하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다. 네로 황제의 궁전이 위치한 언덕에서 발굴되었을 당시 이 조각상은 한쪽 팔이 손상된 상태였다. 이후 많은 예술가들이 팔 동작을 추측해보았는데, 미켈란젤로만 위로 굽힌 팔의 동작을 정확히 추측했다고 한다. 가장 큰 단서는 바로 위로 올라간 유두의 모양이었다. 또한 가슴 근육인 pectoralis major muscle(큰가슴근)과 어깨 근육인 deltoid muscle(삼각근)이 팔의 벌림을 수행한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다. 한편 뱀의 목을 잡고 있는 왼쪽 팔의 윗부분을 보면 큰 혈관이 도드라져 보이는데, 팔의 큰 정맥인 cephalic vein이 뱀 독에 의해 부풀어 오른 것으로 보인다.
목의 sternocleidomastoid muscle (목빗근)의 모습과 가슴 아래에 선명히 드러난 serratus anterior muscle(앞톱니근), external abdominal oblique muscle (배바깥빗근)이 올라간 모습을 통해 숨을 최대한 들이마시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정보는 곧 왜 라오콘이 느끼는 고통에 비해 입을 작게 벌리고 있는지 설명해준다. 한쪽 팔의 근육으로 뱀의 머리를 밀어내고 있으며 숨을 들이마시고 있기 때문에 소리를 크게 지르는 것이 아마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대신 온몸을 움직여 필사적으로 뱀으로부터 벗어나려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발 끝에서 느껴지는 고통의 감각
라오콘과 두 아들의 발을 살펴보자. 모두 발 끝을 웅크리며 바닥을 밀어내고 있는 모습을 포착할 수 있다. 발 끝까지 힘이 들어가 있는 상태로 추측되는데 살짝 벌어진 엄지발가락이 눈에 띌 뿐만 아니라 팔에서 보였던 정맥과 마찬가지로 다리에도 정맥이 도드라져 보인다. 근육의 움직임에 의해 혈관이 튀어나와 보일 가능성도 있지만 뱀 독이 무섭게 퍼지고 있는 상황으로도 추측이 가능하다.

순수한 고통이 만들어 낸 아름다움
라오콘 군상은 극한의 고통이 가득한 표정, 뱀의 사나운 눈과 공격적으로 벌어진 입, 날카로운 이에서 느껴지는 공포감, 살짝 뒤틀린 상체의 모습, 슬프고도 애처로워 보이는 두 아들의 모습까지 다양한 요소들이 한번에 담겨있는, 많은 예술가들의 찬사를 받은 작품이다. 어쩌면 실제로 인간에게 뱀을 던진 후 관찰하고 조각했을 수도 있다는 주장도 존재할 정도로 사실적인 표현이 탁월한 조각상으로 크기 또한 실제 인간의 체구와 비슷하게 제작되었다.
작품에서 의학적인 단서들을 찾아가며 감상하면 그 속에 담긴 이야기 또한 살아 숨쉬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미래 의학도들과 예술의 만남을 기대하며 ‘의학 오디세이’ 시리즈는 계속 될 것이다.

오윤서 기자 / 순천향
justinechooh@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