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중원과 보구여관으로 알아본 우리나라 서양 의학의 역사

대한민국에는 35,467개의 병/의원-대한의사협회에 등록된 병/의원 개수이다-과 40개의 의과대학이 있다. 그러나, 1880년대까지만 해도 한반도에는 병원은 물론이거니와 서양 의학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대한민국의 병원과 의료진을 오늘날의 수준까지 이르게 한 시작점은 어디서 누구에 의해 시발되었을까? 한국 최초의 서양식 국립병원인 제중원, 한국 최초의 여성전용병원인 보구여관을 통해 한반도의 서양 의학 역사를 알아보자.

최초의 서양식 국립병원, 제중원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국립병원은 제중원이다. 제중원을 세운 사람은 의료선교사 알렌(Horace N. Allen)이다. 알렌은 갑신정변 때 부상을 당한 민영익-그는 명성황후의 친정조카로 고위관료였다-을 치료하며 능력을 인정받고 왕실의 의료를 전담했다. 알렌은 1885년, 고종에게 병원 설립을 건의했고, 허락을 받아 광혜원이라는 이름으로 병원을 세웠다. 13일이 지나고 대중을 구제한다는 의미의 ‘제중원’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제중원에서는 계층을 막론하고 환자들을 진료했다. 당시 국민의 90%가 극심한 빈곤층이었고, 말라리아, 피부병, 매독 등의 질병이 창궐했다고 한다. 제중원은 민간을 치료할 뿐만 아니라 의료 교육기관의 기능도 담당했다. 우리 민족으로 만들어진 의료인은 나라의 운영을 독립적으로 만드는 데 중요하기 때문에 국가는 서양 의학을 실현할 인력을 필요로 했다. 실제로 의학교 졸업생들은 우리나라에 서양 의학이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했다. 예를 들어, 군 의료기관에서 조선인들의 징용을 막는 일도 하였고, 1940년대에는 개원의들이 생기기도 했다. 박에스더 의사는 우리나라 최초의 여의사로서 지역 곳곳을 다니며 병원의 손길이 닿지 않는 환자들, 특히 부녀자들을 치료하기도 했다.

제중원의 운영이 일본 간섭, 관리들의 부패로 어려움을 겪자, 고종은 병원의 모든 권리를 에비슨에게 넘겨주었다. 당시 알렌은 제중원을 떠난 상황이었고, 에비슨은 제중원의 의사로 활동하고 있었다. 에비슨은 미국에서 후원을 구하는 연설을 했고, 세브란스라는 미국인 사업가가 재정을 지원했다. 세브란스의 지원금으로 1904년에 세브란스 병원이 세워졌다. 그곳이 바로 현재 서울역 건너편에 있는 세브란스 빌딩 자리다. 세브란스 병원은 오로지 조선인만을 치료했고, 조선인 의학생을 교육했다. 이는 의료로 한국을 통제하고자 했던 일제의 의료기관과는 달리 오로지 치료와 교육을 목적으로 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1920년, 세브란스 병원에 관한 재미있는 일화가 하나 있다. 최영택이란 사람이 전염병의 보균자로 의심을 받았다고 한다. 당시에 일제는 질병을 관리한다는 명분으로 보균자를 강제로 시설에 수용하였다. 그러나 이면에는 지배의 편의와 강화를 위한 목적이 숨어있었다. 일제 경관들이 최영택의 손을 묶어 강제로 순화원이란 시설에 끌고 가려고 했지만, 이에 반감을 느끼고 화가 난 군중들이 ‘병 없는 사람을 가지로 데려간다’, ‘경관부터 때려 죽여라’라고 외치며 경관들을 쫓아냈다고 한다. 그러고서는 최영택이 정말 병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세브란스 병원으로 데려갔다고 한다. 세브란스 병원이 민중들의 신뢰를 받는 의료기관이었음을 알 수 있는 일화다.

최초의 여성전용병원, 보구여관

보구여관은 의료선교사 윌리엄 스크랜튼(William B. Scranton)이 1887년에 세운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전용병원이다. 윌리엄 스크랜튼은 이화학당을 설립한 메리 스크랜턴의 아들로, 어머니와 함께 1885년에 한국에 왔다. 한국에서 의료활동을 하며 여성전용병원의 필요성을 느꼈다. 유교적인 문화로 인해 남자 의사들이 여자 환자들을 진료하기가 굉장히 까다롭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는 여성해외선교회에 여의사를 파견할 것을 청원했고 여의사 메타 하워드(Miss Meta Howard)가 파견되었다. 그 결과 이화학당 자리에 보구여관이 생기고 하워드 의사가 부녀자들과 아이들을 진료했다. 의료혜택을 받기 어려웠던 여성들을 위한 전용 병원이었다는 점이 보구여관의 의의 중 하나다.

보구여관은 최초로 정규 간호 교육을 실시한 곳이기도 하다. 미국 북감리교는 한국인 간호부를 양성하기 위해 1902년 마가렛 에드먼드(Margaret Edmunds)를 파견했다. 1903년에 보구여관 내에 ‘간호원양성학교’가 설립된다. 여자들은 누구든지 이곳에 와서 간호 공부가 적성이나 의향에 맞는지 확인해볼 수 있었다고 한다. 다만, 보구여관은 그 규모가 작아, 학생들이 민간병원에서 견학을 하거나 세브란스 간호부양성소에서도 강의를 듣고 실습을 할 수 있도록 했다고 한다. 1906년 9월 25일자에 발해된 <가정잡지>의 간호원양성학교 입학 장려 글을 통해 간호원양성학교가 어떤 곳인지 짐작할 수 있다.

‘서울 대정동에 보구녀관이라는 여(女)병원이 있는데 각색 병든 여인들을 지성껏 잘 보아주며 또 그 병원 안에 합설(合設)한 간호원양성학교가 있으니 이 학교에서는 다른 학교와 같이 지리, 역사 같은 것을 가르치는 학교가 아니라 총민한 여자를 뽑아 각색 병 치료하는 법을 눈으로 보며 귀로 듣고 손으로 행하여 시시로 배우게 하며 병 종류를 나누고 일등분을 분별하여 열심히 가르치며 그외에도 여러 고명한 의원과 선생을 청하여 좋은 공부를 많이 시키더라. (중략) 우리 나라에서 이런 공부를 하면 다른 나라에서보다 더 귀하고 좋겠으니 장성한 여자들과 젊으신 여인들은 좋은 때를 허송치 말고 이런 학교에 많이 가서 시험하여 보고 공부를 부지런히 하여 우리 나라 여인들도 같이 좋은 일들을 많이 하기 바라나이다.’

1893년 동대문에 보구여관 분원이 설립되었고, 1912년 이 자리에 릴리안 해리스기념병원을 준공했다. 이 시기에 보구여관이 릴리안 해리스기념병원에 합설된 것으로 추청된다. 이렇게 보구여관은 릴리안 해리스기념병원으로, 릴리안 해리스기념병원은 이화여대부속 동대문병원으로 역사를 이어가게 되었다.

전국 곳곳에 세워진 근대 병원(선교병원)

선교사님들을 통해 세워진 근대 병원은 전국에 약 35개 이상 있다. 그 중에 몇 군데를 간단히 소개해보고자 한다. 1899년, 선교사 존슨(Woodbridge O. Johnson)이 대구 동성로에서 운영한 제중원은 대구∙경북 지역 최초 서양 근대 병원으로서 오늘날 계명대학교 동산의료원의 모태이다. 대구의 계명대학교 동산의료원은 계명기독대학과 대구동산기독병원의 의과대학이 합병하면서 생겨났다.

전주의 예수 병원은, 선교사 마티 잉골드가 1898년에 여성 외래 진료를 본 것을 시초로 한다. 이곳에서 의사와 간호사도 양성하였고 1971년에 예수병원 유지재단이 설립되었다. 이 재단을 바탕으로 의료 취약지역에서 여러 의료사업이 진행되고 의료 기관들이 생겼다.

평양의 기홀병원(The Hall Memorial Hospital)은 의료선교사 윌리엄 홀(William J. Hall)을 기념하여 그의 부인 로제타 셔우드 홀(Rosetta Sherwood Hall)이 추진하여 세운 병원이다. 윌리엄 홀은 전투 부상자, 한국인들을 치료했으나, 안타깝게도 말라리아와 발진티푸스에 걸려 사망했다. 그의 부인 로제타 셔우드 홀은 보구여관에서 에드먼드의 공백 기간에 활동했던 의료선교사다.

값진 역사, 밝은 미래

한국의 초기 근대 병원 특징은 선교사들에 의해 설립되었다는 점이다. 서양과 동양의 우열을 가릴 수 없지만, 의료선교사들이 민중에게 베푼 의술과 교육은 오늘날 대한민국 의학의 발판이 되었다. 전국 곳곳에 세워진 근대 병원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현재까지 지역 사회의 보건을 담당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 최초의 여의사 박에스더, 길정희 의사, 아프리카 수단에서 병원과 학교를 설립하신 이태석 신부, 장기려 박사 등 멋진 의료인들이 세워졌다. 현재는 전국의 의료진들이 코로나19의 전파를 막고 확진자를 치료하기 위해 그 누구보다 치열하게 일하고 있다.

콩고에는, 내전 중 성폭행을 당한 여성들을 위해 판지 병원을 설립하고 그들을 치료해준 의사, 드니 무퀘게가 있다. 그는 2018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고, 이대 명예 의학박사 학위를 받으며 “보구여관의 정신과 우리 병원(판지 병원)이 바라는 방향은 정확하게 일치한다”고 말한 바 있다. 선교사들을 시초로 우리가 일구어낸 의료 사회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미래의 대한민국 의료를 책임질 의대생들이, 역사를 되돌아보면서 대한민국을 위해서, 그리고 또 다른 국가의 발전을 위해서 선(善)한 의술을 베푸는 의료인으로 성장하길 바란다.

김현 기자 / 연세 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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