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과 어린이 모두에게 인기를 끌었던 영화 <소울>, <인사이드 아웃>, <코코>는 각각 인간이 태어나기 전, 살아있는 순간, 죽은 후의 시점에서 삶의 의미를 반추하게 해준다. 그 중에서 영화 <인사이드 아웃>은 사춘기에 진입한 라일리의 머리 속에서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주 캐릭터인 다섯 감정들이 어떤 변화를 겪는지 안팎을 뒤집어 보여준다. 이번 기사를 통해 <인사이드 아웃>의 뇌과학적 바탕을 분석해보고자 한다. 또한 영화 <소울>을 과학적인 측면에서도 간단히 살펴보고자 한다.
감정을 담당하는 변연계
뇌는 어떻게 감정에 관여할까? 대뇌 내측에 위치한 편도체(amygdala), 띠이랑(cingulate gyrus), 해마(hippocampus) 등으로 이루어진 변연계(limbic system)가 감정과 기억에 관여한다고 알려져 있다. 편도체에서 담당하는 감정은 주로 두려움과 분노라고 볼 수 있다. 편도체를 절제할 경우 두려움과 분노가 감소하기 때문이다. 특별히 해마는 기억의 형성과 회상 시 활성화되고, 해마 손상 시, 단기 및 장기기억에 손상이 된다. 따라서 해마는 기억을 형성하는 일에 관여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감정을 드러내는 행동양식을 조절한다고 한다. 시상하부는 반응들을 통합하는 기능을 한다.
그 중에서 변연계의 ‘파페즈 회로(Papez circuit)’ 는 신경섬유가 띠이랑, 해마, 시상하부, 대뇌겉질로 뻗어나가는 회로로, 감정과 기억이 형성되는 것을 담당한다. ‘파페즈 회로’가 변형되면, 알츠하이머병, 파킨슨병, 코르사코프 증후군(기억상실), 일과성건망증 등이 일어날 수 있다. 해마와 측두엽이 손상된 원숭이가 공포와 분노를 느끼지 못하는 것을 보면, 변연계가 담당하는 감정은 대부분 공포, 분노, 식욕 등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모든 사람이 공통적으로 느낄 수 있는 다섯 가지 감정
Journal of Psychiatric Neuroscience에 실린 2009년 논문 중 하나는, 특정 감정을 가진 표정을 지었을 때의 활성화되는 뇌 부위를 fMRI로 촬영하였다. 이 논문의 목적은, 감정에 기반한 뇌 지도를 만드는 것과 기본적인 감정(행복, 슬픔, 분노, 두려움, 혐오)간의 차이를 분별하는 것이었다. 위 다섯 가지 기본적인 감정을 나타내는 표정을 지을 때 활성화되는 뇌 부위는 광범위하면서도 특징적이었다.
뇌에서 기쁨이라는 감정을 만들거나 인식하는 부위는 다양할 것이다. 기쁨을 유발하는 원인은 다양하기 때문이다. 아직까지는 감각적인 만족감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고, 음악, 미술, 성취감 등을 통한 고차원적인 만족감이 어떻게 형성되는지는 명확히 알려진 바가 없다.
사춘기 아이 라일리의 뇌가 겪는 변화
영화에서 라일리에게는 이사와 전학이라는 외부 환경 변화와 더불어 사춘기를 맞이하며 감정과 태도에서 변화가 일어난다. 본인의 감정도 격하게 표현될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태도에 더 예민하게 반응하기도 한다. 타인의 태도에 대한 반응이 더 예민해짐은 편도체와 시상의 발달과 관련이 있다. 앞서 언급했듯, 편도체는 두려움과 분노라는 감정을 느낄 때 활성화된다. 그리고 시상은 여러 감각정보를 통합하는 중개 역할을 한다. 즉, 청소년기에는 편도체와 시상이 발달하면서 타인의 감정들을 예민하게 받아들인다. 그래서 라일리는 전학 온 학교에서 자기소개를 할 때, 자기에게 쏠린 시선에 극적으로 반응했던 것이다.
사춘기 시기의 즉흥적 행동을 설명하는 이유 중 하나는 뇌의 비대칭적인 발달이다. 전전두엽은 논리적인 사고를, 피질하 영역은 감정을 담당한다. 뇌가 일생에 거쳐 변화하는 속도를 비교하면 전전두엽 피질의 발달 속도가 피질하 영역의 발달 속도보다 느리다. 사춘기는 그 차이가 가장 큰 시기로, 사춘기 때 피질하 영역은 어른과 비슷한 정도로 활성화되어 있는 반면, 전전두엽 피질은 아직 어린이와 비슷한 정도에 머물러 있다. 따라서 사춘기 청소년들의 태도는 이성적 사고보다 감정의 영향을 더 많이 받게 된다.
출처: Brain Development During Adolescence Neuroscientific Insights Into This Developmental Period. Dtsch Arztebl Int 2013; 110(25): 425-31.
라일리 머릿속 본부에서는 기쁨이의 지휘 아래 슬픔, 두려움, 분노, 혐오감이 행동하였다. 특히 기쁨이가 슬픔이를 통제하는 장면이 많았다. 예를 들어, 슬픔이가 핵심기억 구슬이나 본부 기계를 만지지 못하게 하였다. 영화 끝자락에서는 기쁨이가 슬픔이에게 핵심기억을 건네주면서, 슬픔이의 중요성이 두드러진다. 실제로 사춘기때는 기쁨과 슬픔에 대한 피질하 영역의 반응이 어린이였을 때보다 활성화된다. 발달과정에서도 어릴 때는 기쁨이란 감정을 가장 잘 인지하고, 슬픔을 가장 나중에 인지하기 시작한다. 영화에서도 초반에는 기쁨이가, 기쁨이와 슬픔이가 모험을 떠날 때는 버럭이(분노), 까칠이(혐오), 소심이(두려움)가 본부를 지휘했다. 마지막에는 슬픔이가 본부를 담당했다. 그러나 왜 사람은 슬픔이란 감정을 가장 늦게 받아들이는 것인지, 왜 사춘기 때 기쁨과 슬픔을 가장 크게 인지하는 것인지에 대한 연구는 더 필요한 실정이다.
The Great Before
<인사이드 아웃>은 라일리가 살면서 어떤 감정을 겪는지를 보여주는 반면, <소울>은 사람이 태어나기 전에 어떻게 기질이 형성되는지 보여준다. 이는 인간의 기질이나 성격이 백지장 상태로 태어나는 건 아님을 전제한다. <인사이드 아웃>에서도 역시 라일리가 처음 눈을 떴을 때부터 감정들은 이미 존재했다.
<소울>의 캐릭터인 ‘22(twenty-two)’는 지구에서 살아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캐릭터 조 가드너의 몸을 빌려 잠시 지구에서 살면서 떨어지는 은행 씨앗, 옷을 펄럭이는 바람, 맛있는 피자 등을 몸소 느낀다. 마침내 22는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즉, 22는 <인사이드 아웃>의 다섯 가지 감정이 필요했던 것이다.
감각에서 감정으로
베타 엔도르핀, 도파민 등의 신경전달물질은 음식을 맛있게 느끼고 더 먹고 싶게끔 한다. 그렇다면 감각은 어떻게 우리 기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 예를 들어, 피자는 맛있고, 맛있으면 행복하다. 미각세포(gustatory cell), 미각신경이 받아들인 감각정보는 전전두엽 피질(prefrontal cortex)을 거쳐 쾌락과 보상 중추인 편도체(amygdala)로 들어간다. 편도체는 feeding center인 가쪽 시상하부 영역으로 신호를 보내 음식을 더 먹을 것인지 말 것인지 조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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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생각처럼 감정이 안 움직이고, 내가 왜 이런 감정을 느끼는지 의아함을 품어보았을 것이다. 이런 점이 누군가를 좌절로 몰아세우기도 한다. 그러나 여기서 유념할 점은 누구나 이 다섯 가지 감정들에 공감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기에 <인사이드 아웃>의 기쁨이, 슬픔이, 버럭이, 소심이, 까칠이 모두 사랑스러운 캐릭터로 탄생할 수 있었고 소울 22도 불꽃을 찾을 수 있었다. 철학적인 고찰이 과학적인 연구로 이어질 수 있게 된 21세기에, 뇌과학이 선사할 수 있는 공감과 위로는 무궁무진해 보인다.
김현/연세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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