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들이 내리는 의학적 소견은 한 사람의 생명을 살리기도 하고, 때로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의사는 소견을 내리기까지 책임감 있는 태도와, 소견을 전달하는 과정에 있어서 치료적 의사소통을 위한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이러한 의사의 책무를 잘 수행한 의사상을 나타낸 영화가 있어, 방학을 맞은 의과대학생 독자들에게 환기와 여가 생활을 위해 추천하고자 한다.
<게임 체인저>(2015, 원제 <Concussion>)는 미식축구 경기에서 필연적으로 반복되는 두부외상에 의한 후유증으로 뇌진탕, 정신장애를 겪는 선수들을 부검한 오말루 박사의 실화 기반 영화이다. 오말루 박사가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 미식축구연맹이라는 거대세력에 맞서 미식축구의 위험성을 세상에 알렸기 때문에, 이후 미식축구 선수들은 적절한 치료와 보상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가 뇌 조직 슬라이드를 관찰, 연구함으로써 그 존재를 증명해낸 만성 외상성 뇌병증(Chronic traumatic encephalopathy, CTE)은 복싱선수나 재향군인, 미식축구 선수들에서 주로 나타나는 진행성 뇌질환이다. 두부에 지속적으로 가해진 충격은 신경 다발을 손상시키고, 신경증적 장애, 인지적 손실, 우울장애, 정신장애 등을 야기한다. 병기는 1-4기로 진행되는데, 1기에서는 두통과 주의집중력의 결손이 나타나고 2기는 1기 증상에 우울증, 단기기억상실이 추가된다. 3기부터는 수행기능의 장애, 인지기능 장애가 나타나며 4기에서는 공격적인 태도와 치매 증상을 나타내기도 한다. CTE는 중추신경계에서 과인산화된 기형 tau 단백질에 의해 매개되며, 대뇌 피질 전두엽에서 TAR DNA-binding protein 43, amyloid beta protein과 alpha-synuclein이 비정상적으로 응집, 축적됨이 특징적으로 관찰된다. 전형적인 증상이나 잦은 두부 손상 등의 임상적 증상으로 의심해 볼 수는 있으나, 부검 결과로만 진단이 가능하다.
영화에서 부검은 일반인에게는 매혹적인 주제이지만 부검의에게는 일상적인 업무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표현된다. 생명을 살리고자 하는 꿈을 안고 의학에 뛰어들었지만 공부량에 지쳐 하루하루 시험을 위한 공부를 하고 있을 본과 학생들, 흥미롭고 유익한 임상 현장에서의 배움에도 불구하고 체력적으로 힘에 부칠 때면 무심코 휴일이 아쉬워질 실습생들에게, 일상의 업무가 주는 고됨은 비슷한 맥락으로 다가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타성에 젖어 느슨해질 수 있는 상황에서조차, 이 영화의 주인공은 시신에게 말을 걸고 대화를 통해 함께 사인을 규명해 나가겠다는 열의에 찬 태도로 부검에 임한다.
또한 그는 소견을 유가족에게 전달함에 있어 존중을 표현하고 세심하게 배려한다. 오말루 박사와 유가족의 신뢰적 관계 형성은 감정적으로 환자의 입장을 최대한 이해하고 공감하고자 하는 그의 사려 깊은 자세에서 기인한다. 그는 CTE를 입증하기 위한 충분한 case를 확보하고자 유가족에게 부검을 설득한다. 사인을 규명하는 일은 정의 원칙에 입각하여 죽은 이가 피해를 입었음을 알리고 보상 가능성을 제시하지만, 유가족에게 있어서는 사랑하는 이가 평생을 바친 꿈이 그를 병들게 했음을 직면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주인공은 이러한 양면성을 인식하고, 반복되는 내용을 전하면서도 어김없이 서글픈 눈빛으로 공감과 유감을 표현하고, 한 명의 유가족에게도 진정성 있게 설명하기 위해 노력한다.
누구든 지칠 만한 무더울 여름이다. 쉬어가는 방학, 내가 어떤 직업윤리와 업무태도를 가진 의사가 되고 싶은지 한번쯤 되돌아보고 싶다면, 앞서 이 길을 걸어나간 사람의 발자취를 들여다보는 경험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박수연/연세원주
lhktndus1@yonsei.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