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에서 빛나는 본질

어둠 속에서 빛나는 본질

곤충부터 보잉777까지…
X-ray Man 닉 베세이를 통해
내면의 아름다움으로 나타나다

1962년 영국 런던에서 출생한 닉 베세이는 세계 최고의 엑스레이 아티스트이자 필름메이커이다. 사진작가로서 고군분투하던 그는 우연히 엑스레이로 유명 브랜드의 콜라캔을 촬영할 기회를 갖게 되었고, 이후 20여년에 걸쳐 아주 작은 곤충부터 식물 그리고 거대한 보잉(BOEING 777)에 이르는 다양한 오브제들을 촬영해왔다. 현재 그는 과거 군사기지였던 지역을 개조해 스튜디오로 사용하고 있으며 방사선으로부터 자신과 조수들을 보호하기 위해 스튜디오 벽을 납으로 돌렸다. 그가 작품을 창조하는 과정은 병원이나 공항에서의 엑스레이 촬영 과정과 매우 비슷하지만, 그의 작품에서는 내면의 아름다운 본질만이 오롯이 남는다.
지난 8월 27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X-Ray Man 닉 베세이’ 전시회가 열렸다. 엑스레이 미술의 거장 닉 베세이의 작품세계를 국내 최초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고, 전시장을 찾은 의사가 엑스레이에 나타난 해골 골반의 형태를 보고 여자라고 했다는 일화가 인상적이어서 전시회를 다녀오게 되었다. 국내 엑스레이 미술가로 유명하신 정태섭 연세대 의대 영상의학과 교수님을 인터뷰했던 경험이 있는데, 닉 베세이의 작품들은 어떠할까 궁금했다.
이번 전시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의 사물들, 그 내면의 미학을 드러내는 ‘에브리데이 오브젝트 앤 머신(Everyday Object & Machine)’, 자연에 대한 경외심을 일깨우는 ‘네이처(Nature)’, 우리 자신의 본질에 대해 질문하는 ‘휴먼 앤 이모션(Human & Emotion)’, 피상적인 소비에 집착하는 현대인에게 경종을 울리는 ‘패션(Fashion)’, 그리고 마지막으로 영국 런던의 대표 미술관 ‘빅토리아 앤 앨버트(The V&A Museum)’와 협업한 ‘발렌시아가 프로젝트(Balenciaga Project)’를 포함한 2017년 신작을 아울러 총 다섯 개의 섹션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첫 번째 섹션은 그가 자신의 인생을 바꾼 첫 엑스레이 사진을 찍었을 때 신고 있었던 운동화작품으로 시작했다. 운동화 외에도 달리, 뒤샹, 마그리트의 작품을 오마주한 것, 수십 가지 차량 부품을 서로 다른 노출시간으로 촬영한 자동차, 휴대폰, 전구, 로봇, 향수 등의 엑스레이 사진들이 있었다. 닉 베세이는 우리 주변의 사물들이 왜 그러한 형태를 갖는지, 어떻게 작동하는지,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등에 호기심을 갖고,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잘 모르는 실재를 정직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첫 번째 섹션 마지막에 놓여있던 ‘보잉 777’은 실제 크기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지 않아서 아쉬웠지만, 500여장의 엑스레이 사진을 수개월에 걸쳐 조합하여 완성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대단함을 입증하는 듯했다.
두 번째 섹션은 다양한 종류 꽃들의 엑스레이 사진으로 가득한 하나의 방이었다. 닉 베세이는 엑스레이로 자세히 들여다본 생명체 내부의 거대한 세계와 우주의 유사성을 보여주고자 했다.
세 번째 섹션은 Human & Emo-tion이라는 제목 그대로 실생활에 쓰이는 엑스레이처럼 사람을 찍은 작품들이라서 더 친근하고 재미있고 볼거리가 많았다. “엑스레이 작업에서 인물을 도입한 주된 동기는 외형에 집착하는 우리 사회에 도전하기 위함이다.”는 닉 베세이의 말과 동일한 맥락에서, 그의 작품들은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자신의 내적 만족을 찾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지팡이를 짚는 할머니, 좋다고 치켜든 엄지손가락, 정형외과 병원 광고를 위해 쓰였다는, 해골들로 가득 찬 버스, 각종 유명인사들, 셀카를 찍는 해골. 엑스레이 사진이 대상으로 한 사람들은 성별, 나이, 사회적 지위 등이 모두 달랐지만 결국 사진으로 나타난 것은 하나 같이 해골이었다. 닉 베세이가 저마다 다른 사람들을 표현하기 위해 매만지고 끼워 맞춘 것은 똑같은 뼈였던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엑스레이 사진에서는 우리 모두가 다 똑같이 보인다는 점이, 겉을 치장하기보다 속을 채우는 삶의 중요성을 시사하고 있었다.
네 번째 섹션 ‘Fasion’ 또한 구두, 에르메스 버킨백, 웨딩드레스 등을 통해 몸에 걸친 옷과 장신구가 사람에게 권력을 부여하고 지위를 대변하는 시대를 비판하고, 옷의 본질적인 역할을 다시 생각해보게 했다.
닉 베세이가 엑스레이를 통해 말하려고 하는 것은 전시 책자에 적혀있던 이 한 문장으로 정리된다. ‘우리가 대수롭지 않게 당연시 여기는 것들, 지극히 평범한 일상적 사물은 모두 각자의 아름다움을 숨기고 있다.’ 엑스레이 사진에서는 드러난 아름다움은 사라지고 숨겨진 아름다움이 살아나고 있었다.

서예진 기자/성균관
<jasminalex@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