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환경의학 의사들이 밝히는
일하다 죽는
사회에 대한 고발
‘굴뚝 속으로 들어간 의사들’ 굴뚝과 의사는 한 문장에 들어있기 어색한 조합이다. 굴뚝으로 대표되는 공장 및 작업장이 의료현장인 의사들이 바로 직업환경의학 의사다. 그들은 노동재해와 직업병 같은,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 문제에 발 벗고 나선다. ‘굴뚝 속으로 들어간 의사들’이란 책은 산업이 지나간 자리에 남겨진 아픈 노동자들과 이를 그냥 지나치지 않는 의사들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의대생임에도 ‘직업환경의학’ 분야가 생소하게 다가와 이 책 저자 김형렬 서울성모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와 이혜은 경희대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의 강연을 다녀왔다.
강연 내용 중에는 중간 중간 우리 현실에 안타까운 순간이 많았다. ‘노동자의 특정 유해물질 노출 유무’와 ‘유해물질 노출에 의한 관련 질환 유무’로 산재 인정을 내릴 수 있지만 국가에서는 ‘문서에 날인이 없다’, ‘진단 병원이 산재 신청 미지정 기관이다’ 라는 이유로 인정해주지 않았다. 그리고 직업병을 치료하기 위한 방법으로 유해물질에 더 이상 노출되지 않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지만 노동자는 자신의 삶이 걸린 일터에서 벗어나기가 어려워 지속적으로 유해물질에 노출되는 악순환이 반복될 뿐이었다. 강연자는 직업병을 찾아내고 해결하기 위해서 정석적으로 보상보다 예방이 우선되어야 하지만, 우리나라와 같이 예방에 대한 제도적인 기반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예방보다 보상이 먼저 이루어져야 직업병에 대한 여러 사례들을 많이 찾아낼 수 있고 사회적 인식과 투자의 증가로 이어져 궁극적으로는 예방에도 주력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수 있다고 전했다.
강연은 단순 산업재해뿐만 아니라 과로사와 우울증도 다루었는데 과로사는 과로가 촉발원인이 되어 소위 ‘방아쇠 효과’를 일으켜 노동자가 심근경색, 뇌출혈, 뇌경색 등 심혈관계 질환에 걸리고 사망까지 이르는 것이다. 과로는 노동시간(길이), 노동밀도(강도), 노동배치(교대)와 같이 정량적인 측면도 있지만 신입, 성과주의, 스트레스, 고용불안, 감정노동, 주말근무 등의 질적 특성도 있다. 운수업, 의료, 영화산업 등에 적용되는 노동시간 특례제도(법정노동시간 주40시간 이상 장시간 노동이 가능한 업종)가 ‘공익’이라는 명목하에 해당 업종 노동자들에게 ‘특례’가 아닌 ‘과로’를 주고 있었다.
현대사회에 들어와서 우울증을 가볍게 보는 인식이 있지만 우울증도 직업병이 될 수 있고 직업상의 우울증 또한 자살이라는 무시무시한 합병증을 낳기도 한다. 우울증은 유전적 소인이라는 씨앗이 가혹한 직업환경이라는 비와 태풍을 맞고 흙 밖으로 우울증 형태로 드러나는 것이다. 직업환경의학 의사는 ‘비와 태풍’에 주목하여 이를 원인으로 파악하고, 우산 같은 보호 장치를 지원하고 개인적인 노력을 북돋아 대처능력과 자존감을 높일 수 있게 한다. 그 밖에도 사고 경험이 높은 직종에서 종종 발생하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에 대한 이야기도 들으면서, 직업병의 사회 심리적 원인이 굉장히 무겁게 느껴졌다.
강연은 ‘가족과 함께 사는 흡연자와 혼자 사는 비흡연자 중 누가 더 오래 살까’라는 흥미로운 질문으로 마무리되었다. 정답은 가족과 함께 사는 흡연자였다. 이는 보상 및 치료보다 지지체계, 사회자본, 그리고 원인 예방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직업환경의학 의사는 환자의 병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에게 병을 남긴 산업과 우리 사회를 파헤친다. 굴뚝 속에서 일하는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함께 그 현장으로, 굴뚝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서예진 기자/성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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