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상
::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본과 3학년 최주연
<떨림의 미학>
누구에게나 가슴이 떨리는 순간은 예기치 않게 찾아오곤 한다. 갑자기 찾아온 떨림은 때론 우리를 정신 못 차리게 만들기도 한다. 그 근원지는 아주 사소한 말 한마디에서부터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까지 다양하다. 어떻게 시작되었든, 한차례의 떨림이 휘몰아치고 나면 떨렸던 그만큼, 어쩌면 그보다 많이, 성장해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게 된다. 이를 테면, 경기가 시작되기 직전의 긴장과 떨림, 수능시험에서의 떨림, 소개팅에서의 떨림 등등. 나에게 있어서는 의대생활에서의 떨림도 그렇다.
빳빳하게 다림질 된 새하얀 가운을 걸쳐 입고 임상실습을 시작했던 게 2월이었는데, 어느 덧 무더운 여름을 훌쩍 지나보내고 있다. 그동안 나에게 찾아왔던 크고 작은 떨림의 순간은 참 많았다. 이제 막 실습을 시작한데다가, 짧게는 1, 2주 사이에 새로운 과로 바뀌니 떨리는 순간들이야 오죽 많았으랴. 잔잔한 파도 위에 몸을 맡긴 것처럼 본과 3학년 학생의사가 으레 경험할 수 있는 여러 떨림들에 익숙해져서 웬만한 일에는 미동도 않을 때였다. 선선하게 바람이 불던 어느 날, 이전과는 다른 거대한 파도와 같은 떨림이 내게로 왔다.
“학생 선생님, 여기를 이렇게. 살과 (스킨스테플러)심 사이에 정확히 꽂아 넣고 눌러주면 돼요. 끝이 날카로우니까 다른 곳 찌르지 않게 조심하세요.” 이토록 간결한 설명이 또 어디 있을까. 전공의 선생님의 설명을 들은 나는 할 수 있다고 세차게 고개를 끄덕여 보이며 모든 술기의 첫 단계인 무균 장갑끼기 단계로 넘어가고 있었다. 내 인생을 통틀어서 ‘처음으로’, ‘진짜 환자분에게’, ‘직접’, 외과술기(스킨스테플러 제거)를 시행하게 된 순간이라 생각하니 왠지 모를 뿌듯함에 취해 있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나에게 주어진 과제를 바라보았다. 대장암 수술을 받고 회복 중에 계신 할아버지와 옆에 딱 붙어서 손잡아 주시는 할머니의 시선도 나와 같은 곳으로 향했다. 저만치 치켜 올려진 상의 아래로 족히 스무 개는 되어 보이는 스킨스테플러 심들이 줄지어 박혀있었다. 시작도 하기 전에 내 머릿속에선 이미 순식간에 술기를 끝내고 여유 있는 미소를 짓고 있는 모습이 펼쳐지고 있었다. 도구를 집어 들고 첫 번째 타겟을 향해 손을 뻗었다. 설마 지금은 아니겠지 하고 방심한 찰나. 예기치 않고, 원치 않는, 하필이면 정말 잘해 보이고 싶은 이 순간에 ‘떨림’이 찾아왔다.
나의 정확한 목표지점 ‘살과 심 사이’에 다다른 내 손은 거침없이 부들부들 떨렸다. 내가 들고 있는 이 도구는 끝이 뾰족해서 흔들리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니, 그러면 그럴수록 더 떨려왔다. 심장은 주체할 수 없이 날뛰고 있었고, 선선하던 병실이 서서히 사우나로 변해가고 있었다. ‘침착해, 침착하자. 하나씩 하면 되는 거야. 배운 대로 쉽게.’ 나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면서 마침내 첫 번째 심을 뽑아냈다. 지켜보는 모든 눈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쉰 건 나만의 착각이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고작 하나를 무사히 뽑았다고 여유부릴 시간이 없었다. 아직도 사방에는 나의 손길을 기다리는 심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세 번째 계속 하면서도 자칫 잘못하다가 이제 막 아문 살들에 다시 상처를 내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에 한 동작 한 동작 힘을 뺄 수가 없었다.
이러한 과정이 거듭되고 할아버지의 배 위에 박힌 절반의 심을 제거했을 무렵이었다. 한 두 방울 송골송골 맺혀있던 땀방울들이 일을 내고 말았다. 내 둥근 얼굴의 능선을 타고 따라 흐르는 것이었다. 다음 제거할 심에만 온전히 집중할 수가 없었다. 턱 끝에 매달린 땀방울이 떨어질 그곳은 무균적 술기를 하고 있는 할아버지의 배 위였기 때문이다. 무균 장갑을 끼고 있는 내 손은 묶여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고, 마땅한 방법을 찾지 못한 나는 고개를 이리저리로 움직이며 땀방울이 떨어지지만은 않게 해달라고 발버둥치고 있었다. 그때였다. 내 간절한 마음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 구세주가 나타난 것이. 정체불명의 하얀 손수건이 턱 끝에 매달린 땀방울과 그들이 지나온 길을 따라 올라가기 시작한 것이다. 고개를 들어 올려다본 그곳엔 더없이 인자한 할머니의 얼굴이 있었다. “아니, 뭘 그렇게 떨어. 괜찮아. 떨지 말고 해.”
이어지는 할아버지의 목소리도 할머니와 뜻을 같이 했다.
“난 괜찮으니, 아프지만 않게 해줘. 여기도 아직 있으니까 다 해봐. 그래서 좋은 의사되어줘. 그나저나 우리 손녀딸 같구만 허허.”
할아버지는 아직 심이 박혀 있는 곳을 들이 밀며 천천히 해도 괜찮다는 말과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미소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를 스쳐간 하얀 손수건과 할아버지, 할머니의 배려 섞인 말씀들로 인해 나는 그제야 다시 선선한 병실로 돌아올 수 있었다.
남은 스킨스테플러 심들을 모두 제거하고 심이 박혀 있던 수술부위를 다시 깨끗하게 소독하고 나서야 모든 과정이 끝이 났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따위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장갑을 벗어서 내 손을 자유롭게 풀어주고, 제거한 심과 도구들, 소독솜 등을 모두 정리하고 굳어 있는 입을 열었다. “다 됐어요. 고생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돌아오는 말은 도리어 끝까지 나를 다독였다.
“아이고, 고생했어요. 덕분에 하나도 안 아팠어. 우리 손녀딸 같으니까, 진짜 이담에 좋은 의사가 되면 좋겠네. 조심히 가요.”
병실 밖으로 나와서야 늘 입고 있던 빳빳한 가운이 축축한 가운으로 바뀌어 있는 게 느껴졌다. 그렇게 ‘떨림’이 나를 휩쓸고 지나갔다.
외과 실습을 시작한 첫 날, 내게 찾아왔던 그 떨림을 다시 똑같이 경험할 수 없음을 안다. 지나고 나서 하는 얘기지만, 왜 그토록 간단한 술기에 덜덜 떨었는지. 지금 생각하면 혼자서도 피식 하고 웃음이 난다. 그래서일까, 땀방울이 흥건했던 내 생애 첫 술기는 떨렸던 만큼이나 값지고 소중해서 쉽게 잊을 수가 없다.
그날을 시작으로 나는 본과 3학년 학생의사로서 필수적으로 익혀야하는 외과 술기들을 헤쳐 나갔다. 매번 똑같이 떨었느냐고? 신기하게도 첫날의 떨림 덕분인지 그 이후로는 어떤 상황에서건 좀처럼 떨지 않았다. 심리적으로 한결 안정된 상태에서, 내게 주어진 과제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6주간의 외과 실습을 무슨 정신으로 어떻게 지나보냈는지 같은 건 생각이 잘 나지 않는다. 성적을 잘 받았는지, 과제나 발표를 잘 했는지 같은 것도 모르겠다. 다만 실습 중에 들었던 말 한 마디는 처음 그날처럼 아주 또렷하다. 수술방 참관이 계속되던 어느 날, 역시나 술기를 하고 있을 때였다.
“학생 선생님치고는, 제법이네. 떨지도 않고.”
교수님과 전공의 선생님들의 스쳐지나가는 그 한 마디는, 다른 어떤 말을 들은 것보다 나를 더 떨리게 만들었다. 좋은 의미로다가.
누구에게나 가슴이 떨리는 순간은 예기치 않게 찾아오곤 한다. 하나의 떨림은 일회성으로 끝나기도 하지만 때로는 다음 떨림을 데려 오기도 한다. 그렇게 떨리는 순간들이 쌓이고 쌓여서 지금의 우리가 된다. 그 순간을 지나 보냈을 때의 생각과 경험들은 우리가 한층 성숙해질 계기를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본과 3학년의 나는 떨렸던 순간만큼 성숙해져 있을까. 그래서 좋은 의사에 한 발짝 더 가까워져 가고 있을까. 2주간의 방학이 끝나가는 지금 다시 실습을 시작하면 또 어떤 떨림들이 나에게 올지 은근히 기대가 된다. ‘떨림’을 소중히 해줄, 그리하여 오래도록 기억해줄 준비가,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