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하고 싶은 마음 – 제7회 한국의학도수필공모전 수상작 [은상]

은상

:: 한림대학교 예과 2학년 김신아

전하고 싶은 마음

그대는 오늘 어떤 하루를 보내고 있나요. 더운 여름 어떻게, 견디어내고 있는지요.

나는 오늘도 글 문지방이에서 기웃거리고 있었네요. 머뭇거림이 없는 성격인데 이 문만큼은 선뜻 열지 못하고 주저하던 내가 낯설기도 하지만 그만큼 글이 좋다는 나름의 표현일까요. 내가 글을 좋아하는 이유는 연필이랑 종이가 만나서 서로가 간지럽다는 듯 부끄러워하는 소리가 내 가려운 구석을 대신 긁어주는 것 같아 괜히 기분이 좋아지는 까닭이기도 하고, 어린시절 그림같은 우리말 글자의 생김새를 좋아하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지금도 그려내고 있는 글자만치 귀여운 이 이유보다도 내 안에 작은 생각들을 표현해내는 경이로움, 또 이 웅장한 경이로움이라는 단어보다도, 마음을 전하는 일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라는 이 사소한 마음 그리고 이 즐거움이 가장 큰 이유겠지요.

생명의 경계에서 일상을 살아낸다는 것은 내겐 아직 상상조차 어려운 일이지만, 그런 일상을 기꺼이 살아내고 있는 그대에게, 내가 이리도 좋아하는 글을 보내는 상상을 하는 지금, 이 순간만큼은 나도 어렴풋이 그대를 떠올립니다. 그리고 오늘도 계속되었을 그대의 씨름에서 잠시 벗어나 작은 나의 글을 읽고 있는 그대의 모습에 몇 년 후의 나를 살짝 가져다봅니다. 그대의 지금은 옛날 언젠가 이미 그려본 모습인지 궁금합니다. 그대도 당신의 그림과 현실의 괴리를 느껴본 적이 있을까하는 조심스러운 질문이 떠오릅니다. 이 소심한 질문에 그대가 용기내어 고대를 끄덕여준다면 나에겐 꽤나큰 위로가 되겠지요. 내 작은 팔을 뻗어 그대의 고개를 흔들며 스스로를 안아줍니다. 그러면서 나는 왜 다른 이들의 이야기에 위로를 받을까 질문을 던져봅니다. 나와 비슷한 이야기를 들으며 공감과 함께 다가오는 위로는 어떤 위로보다 진실되고 따뜻하지요. 우리가 서로의 이야기에, 또 결국 서로에게, 위로를 받는 존재라는 사실은 나에게 또 다른 위로가 됩니다. 그러면 나의 이야기도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가 될 수 있을까하는 기대감에 잠시 마음이 부풀면서 위로가 되지 않는다해도 내 이야기가 그대의 이야기라 생각하며 또 다시 스스로에게 포옹을 내밉니다. 끊임없이 꼬리를 무는 생각은 잠시 덮어 놓고 나의 이야기를 하자면, 고등학교 시절을 잠시 그려야 합니다. 고등학교 1학년, 나는 이 길에 대한 꿈, 바로 우리가 그렇게도 많이 물어보고 또 답하는 그 꿈을 품었습니다. 그것도 굉장히 간절한 놈이었지요. 그 꿈은 정확히 말하면 중학생 때부터 시작된 것 같아요. 열 다섯 어린 나이, 나는 가장 큰 선물을 만났어요 그 선물은 ‘나, 나, 나’하던 나로 조금씩 다른 사람을, 그리곤 그들의 기쁨을, 또 그들의 고통을 보게 해주었어요. 고등학교 1학년, 여전히 철부지같던 나는 조용한 자습실 한 가운데, 대각선에 마주앉은 한 살 많은 언니와 장난끼 가득한 눈빛을 슬쩍슬쩍 주고 받으며 물을 마시던 중이었지요. 이 언니는 뻔뻔스러울 정도로 재밌는 언니였는데, 그 날도 역시, 실망시키지 않고 입에 물을 가득 머금은 나를 분수로 만들어주었어요. 퐈아아 하고 물을 뿜어낸 민망함을 더운 여름날이었으니 주변에 시원함을 선물했을꺼에요라는 말로 덜어보려고 했지만 어째 더 부끄럽게 느껴지네요. 아 중요한 것은 그 때, 번뜩 한 생각이 지나갔다는 것이에요. 그 생각을 내가 좋아하던 보라색 코끼리 공책에 끄적였지만 집으로 돌아와 방에서, 그 생각이 지나간 자국을 팻말로 꼬옥꼬옥 박아버릴 책을 발견할줄은 누가 알았겠어요. 이런 만남을 운명이라고 부르더래요. 나는 이것을 사명이라 불렀고 이 길을 간절히 바랐어요. 그러나 열아홉의 끝에서 내 열아홉 인생 가장 커다란 문을 만난 날, 나는 이 길이 내 길이 아니라 판정 받았어요. 그런데 나를 과분할만큼 사랑하시는 분들은 이 길이 네 길이 아닌 것이 아니라 조금만 돌아가면 된다하시더군요. 나는 확신이 없었어요. 돌아갔는데도 벽이 나타나면 모든 것을 놓아버릴까 두려웠어요. 나를 그렇게나 사랑해주는 그 분들의 말이 그땐 그렇게 무겁고 밉기까지 하더래요. 다행히 두 번째로 만난 문은 새로운 벽을 보여주는 대신 힘겹게 열려주었어요. 이게 이렇게 열려도 되나 하는 얼떨떨한 마음으로 문을 들어갔어요. 그런데 그 문은, 제가 존경하는 선생님의 비유처럼, 아득히 넓은 바다의 가장 작은 물 한방울도 안되는 딱 그런 문이었어요. 선생님께서 이 비유를 말씀하실 때면 아 이것이 어떻게 물방울이랴 했었는데 역시 세월의 씨름은 언제나 결국은 동의할 수 밖에 없지요. 겨우 열린 문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나는 살며시 묵인된 채로 오히려 더 멀리 구름이 되어 둥둥 밀려가는 꿈을 그저 멍하니 바라보는 것, 그것이 그 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고 내가 한 전부였어요.

그런데 요즘 나는 그 꿈을 다시 꾸고 있어요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이 마음 나누고 있어요. 내가 가고 싶은 길은 모두가 지지하는 길도 모두가 원하는 길도 아니여서 나누지 않으면 금새 다시 또 둥둥해버려요. 그러나 다시 간절해진 마음을 놀치고 싶지 않아요. 나눌수록 점점 더 간절해지는 요즘이 나는 감사하고 기대돼요. 어쩌다보니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되려하는 이 글이 그래도 그대에게 위로가 되면 좋겠어요.

그대 또한 셀 수 없는 씨름들을 지나왔겠죠. 많은 경험이 그대에게 가져다주었을 지혜가 내게는 부담스러울만큼 부럽지만 아아 여전히 어려운 것 투성이야하고 속삭여줄 그대를 그리며 나도 앵무새처럼 아아하며 또 다시 스스로에게 작은 위로를 건네요.

나는 그대의 사명이 궁금해요. 그대의 씨름의 힘과 이유가, 그대의 이야기가 궁금해요. 그대가 살아온 생각의 가지들이 궁금해요. 그대가 심어 낳은 가지들이 부딪힐 때 그대는 어떤 가지를 쳐내고 또 어떤 가지를 북돋여주었는지 어떻게 가지들을 여기까지 건강하게 가꾸어왔는지 궁금해요 그대의 씨름의 색깔과 소리가 궁금해요.

나의 이야기는 그대에게 어떤 위로가 되었나요. 나의 글자같은 위로로 전해졌을지 알 수 없는 이야기로 끝나버렸을지 나는 알 수 없지만 오늘밤만큼은 나도 그대를 생각하며 기도할게요. 깊은 밤 그대의 꿈 속에서 가장 큰 위로를 받기를, 그리고 그렇게 내일도 이 더운 여름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힘을 내어 걸어갈 수 있기를.

 

+++소감+++

소식을 듣고 무척이나 기뻤습니다. 감정을 잘 숨기지 못하는 저는, 전화기에 대고 와 정말요? 너무 감사합니다!를 크게 외쳤습니다. 그 때 바로 생각난 분이 한 분 계셨는데, 제 고등학교 1학년 담임선생님이자 고등학교 3년의 국어선생님이십니다. 그러나 선생님께 선뜻 전화를 드리지는 못하고 노란색 메신저로 조심스럽게 이 소식을 전했습니다. 이런 제게 선생님께서는 여전한 사랑으로 따뜻한 축하를 전해주셨습니다. 누군가가 왜 전화를 드리지 못했나요 물어온다면 “부끄러워서요”라는 대답이 가장 잘 어울릴 것 같습니다. 언제나 당신의 독특한 언어로 우리에게 마음을 전해주시던 선생님 앞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글이에요라고 말하는 것은 어쩐지 너무도 부끄러운 일이었습니다. 선생님의 진심이 묵직히 담긴 글 앞에서 나의 글은 한없이 가벼워 공중에 떠다니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겠죠.

그런 제게 그 한통의 전화는 표현이 되지 않을만큼 커다란 기쁨으로 찾아왔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이 일을 계속해도 된다는 가장 큰 격려를 받았습니다. 사랑한다고는 표현할 수 없었던 나의 글에게 작은 위로를 건네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의 사랑하는 글로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글을 쓴 이유와 힘이 되어주신, 제가 만난 가장 큰 선물. 당신께 모든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