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인종청소’에 갈 길 잃은 로힝야족
박해 피해 탈출하는 로힝야족 난민들. 사고와 전염병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민주화운동가로서 노벨평화상 수상자이자 평화의 상징으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아웅산 수치’ 여사가 집권한 불교의 나라 미얀마에서, 21세기에 보기 힘든 비극이 현재 벌어지고 있다. 미얀마에 거주하는 여러 소수민족 중 하나인 로힝야족과 미얀마 정부 사이에 유혈충돌이 벌어짐에 따라 로힝야족 주민들에 대해 심각한 탄압과 박해가 이루어지고 있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사태의 발화점은 지난 8월 25일 미얀마 경찰 초소를 로힝야족 무장단체인 ARSA가 공격한 것이다. 이를 계기로 미얀마 정부에서는 로힝야족에 대한 대대적인 소탕작전을 시작하였다. 로힝야족은 유혈 충돌을 피해 이웃나라 방글라데시로 탈출하고 있으며, 정확히 파악은 되지 않지만 국경을 넘은 난민이 50만을 웃도는 것으로 추측된다. 탈출 과정에서만 수 백 명이 사망했으며 9월 28일에는 로힝야족 80명이 탄 배가 뒤집혀 60여 명이 사망 및 실종되었다는 안타까운 소식도 전해졌다.
목숨의 위기를 여러 차례 겪고 다행히 방글라데시에 도착한 난민들에게도 시련은 멈추지 않는다. 로힝야족이 머물고 있는 난민캠프에서 전염병 우려도 고조되고 있기 때문이다. 난민 캠프의 물은 냄새가 나 마실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게 오염되어 있으며, 화장실도 턱없이 부족하여 난민들은 오물에 노출된 환경에서 생활하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집중 호우가 매일 계속되어 배설물이 식수로 흘러들어가고 있어 위생환경이 위태롭다. 현지 의료진은 하루에 400명이 넘는 수인성 감염 환자들을 돌보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의료 인력과 설비가 절대적으로 부족하여 상황이 개선될 여지는 희박하다.
사태의 본질은 19세기부터 시작된 뿌리 깊은 갈등
이러한 끔찍한 광경이 오늘날 펼쳐지는 뿌리를 찾아가면 종교와 역사가 있다. 미얀마는 불교국가이지만 소수민족 로힝야족은 이슬람교를 믿고 있다. ARSA에 의해 촉발된 이번 사태 이전에도 무슬림인 로힝야족과 불교도들 사이의 충돌은 끊이지 않았는데 그 시작은 19세기 후반이다.
1885년 미얀마는 영국의 식민지였다. 영국은 미얀마를 식민 지배 시설과 쌀 생산 기지로 전락시키는 과정에서 방글라데시에서 데려온 로힝야족을 이용했다. 미얀마인들의 농경지를 몰수해 농장을 만들고 로힝야족에게 경영을 지시했다. 종교, 언어, 외모가 달랐던 로힝야족에게 토지를 빼앗긴 토착민 미얀마인들은 이때부터 이들을 적으로 간주하기 시작했다. 1948년 미얀마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였지만 로힝야족은 토착인들과 융화되지 못했고 미얀마 정부에서는 이들을 자국에 불법적으로 거주하는 무국적자로 간주하며 탄압하기 시작한 것이다. 로힝야족 박해를 두고 ‘인권침해’와 ‘마땅히 받아야 할 심판’이라는 상반된 평가가 나오는 데에는 역사적으로 로힝야족에게 유린당했다고 느끼는 미얀마인들의 깊은 반감이 배경을 이룬다.
침묵하는 민주화운동의 대모. 국제적 비판과 도움의 손길
미얀마의 실권자이자 미얀마 민주화 운동의 대모인 아웅산 수치 여사는 명성에 걸맞지 않게 이 사태에 대해 침묵하고 있어 국제 사회로부터 갖은 지탄을 받고 있다. 일각에서 다수의 노벨 평화상 수상자들이 폭력 사태를 막지 못한 수치 여사의 책임론을 제기하고 있으며, 그의 노벨상 수상을 박탈해야 한다는 온라인 청원운동에는 40만 명가량이 서명하였다.
수치 여사가 강경진압을 행하는 군부를 두둔하는 점에 대해 유엔을 비롯한 국제 사회가 한목소리로 비판을 가하고 있지만 ‘정치인’으로서 수치 여사에 대한 미얀마 내부의 인기는 오히려 높아지고 있다. 대다수를 차지하는 미얀마의 불교도 국민들은 로힝야 반군이 외국에서 자금을 얻는 테러리스트라는 군부의 주장에 동의하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다행인 점은 세계 여러 단체와 국가에서 도움의 손길을 건네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 정부도 로힝야 난민을 지원할 의사를 표했으며, 한국대사관에서는 150만 달러 규모의 인도적 지원을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전쟁과 인권탄압으로 얼룩졌던 지난 세기를 마무리하고 평화에 가까워진 21세기에도 무자비한 폭력이 지구 어느 곳에서는 현재진행형이라는 점이 안타깝다. 정치적 이해관계, 종교적 갈등, 국제적 역학 등 그 어떤 것도 인간의 생명을 가벼이 여길 변명이 되지 못한다. 하루빨리 이 로힝야족 사태가 잘 해결되고, ‘인종 청소’라는 단어를 뉴스에서 볼 일이 없어질 날이 오기를 바랄 따름이다.
김경훈 기자 / 울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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