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교육사적 관점에서 바라본 의예과의 필요성
우리나라의 의과대학은 2년의 의예과, 4년의 의학과 과정을 수료하도록 되어 있다. 의예과란 “의과대학 교육과정에 필요한 예비지식을 습득하는 과정”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의대생들에게 의예과는 예비지식을 습득하는 시기보다는 흔히 “쉬어가는 과정”, “본과 전 놀 수 있는 시기”라는 인식이 강하다. 이러한 인식으로 인해 의예과가 진정 필요한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기도 한다. 대부분의 과가 4년제 교육으로 이루어지는 종합대학에서, 의과대학을 포함한 일부 전문분야만 6년제 교육을 받는 것은 다시 생각해보면 의아한 일일 수 있다. 본 기사에서는 이 추가적인 2년의 의예과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의학교육의 역사와 문헌 속에서 그 필요성을 탐구해 보고자 한다.
플렉스너 보고서에 언급되는 의학 전 교육
미국의 의학 전 교육은 우리나라의 의과대학처럼 2년의 의예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의학전문대학원처럼 4년제 학부과정을 졸업하고 오는 것을 요건으로 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의학교육의 큰 형태가 다르며, 의료보험제도의 차이 등으로 인해 의료문화 또한 다르므로 섣불리 두 나라의 의학교육에 대해 비교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의학교육을 언급하는 것은 미국의 의학교육은 플렉스너 보고서를 필두로 오랜 시간 많은 논의가 되어 왔기 때문에 좋은 본보기이고, 또 미국 선교사나 유학한 교수들을 거쳐 우리나라의 교육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플렉스너 보고서는 20세기 초 사이먼 플렉스너(Simon Flexner)가 미국의사협회 의학교육위원회의 의뢰를 받아 미국 의과대학의 실태조사를 하고 이에 대한 그의 견해를 담은 보고서로, 미국 의학 교육에 큰 파장을 일으킨 바 있다. 이는 1915년 발표된 보고서이지만, 이 보고서에 나오는 플렉스너의 여러 가지 주장은 대부분 현재까지도 이어져 오며, 그 중 하나가 바로 과학적 의학을 위한 의학 전 교육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그는 입학기준의 문턱을 높여야 할 이유를 다른 학문과의 비교적 측면, 그리고 당시의 시대적 상황의 측면에서 설명한다.
그가 밝힌 당시의 미국 의학계의 문제점 중 하나는 의사의 과잉공급으로, 상업성을 야기하는 의학교육을 그 원인으로 보았다. 당시 학생이 3년 동안 출석만 하면 유럽여행을 보내주는 대학이 있을 정도로 의과대학들은 학생들을 들여오기 위해 갖은 광고를 했고, 그에 따라 의사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목적으로 들어온 학생들이 의사가 되어 질 낮은 의료를 행했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도제식 교육에서 강의식 교육으로 변화하면서 의학교육은 수동적인 주입식 교육이 되었다고 보았으며 이러한 의학교육의 실태에서 제대로 된 의사가 나올 수 없다고 생각했다.
또한 그는 의학은 공학 계열과는 달리 그 대상이 측정 가능하거나 확실한 것의 범주를 초월하며, 여러 가지 학문을 동시에 다루어야 하고, 인간의 생명을 다룬다는 점에서 막중한 임무이기 때문에 더 높은 수준의 교육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더 높은 수준의 교육’은 어떤 내용을 담아야 하는가?
의사는 크게 두 가지 부문을 다루는데, 한 가지는 과학적 의학 그 자체이고, 또 다른 한 가지는 통찰력과 동정심 등의 윤리적 측면이다. 즉 의사는 의료를 실천하는 사람으로서 병을 치료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와 인류에 기여해야 할 책무 또한 부여 받은 것이다. 이러한 두 가지 역할을 실천하기 위해 2년간의 학부교육에서 첫 번째로는 과학적 사고의 근간으로 화학, 물리학, 생물학 등의 기초과학이, 두 번째로는 전인적인 의사가 되기 위한 문화적 경험이 요구되는 것이다.
특히 이 두 번째 측면은 이후 발표된 루이스 토마스(Lewis Thomas)의 “의학 전 교육을 어떻게 고칠 것인가(How to fix premedical curriculum)”이라는 글에 잘 부각되어 있는데, 그는 역사, 문학, 철학, 외국어 과목 등을 통해 인간에 대한 이해와 애정을 길러야 하며 이는 자연과학만으로는 얻을 수 없는 자질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을 이해하는 사람이 의사가 되어야 궁극적으로 사회가 수혜를 받을 수 있음을 주장하며 학부교육에서 과학을 줄이고 인문학을 늘릴 것을 주장했다.
과거와 비교했을 때 대학 입학 전의 교육 역시 많이 발전하고 과학적인 사고방식이 보편화되면서, 학생들은 자연과학의 기본적인 사항을 대학 입학 전에도 숙지하게 되었다. 그러나 제 2차 세계대전 때 생체실험을 한 일부 부도덕적인 의사들의 행태가 전범재판에서 드러나고, 현대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에서도 시신 앞에서 사진을 찍은 카데바 사건, 주사기 재활용을 한 다나의원 사건 등 일부 학생들뿐만 아니라 일부 부도덕한 의사들의 지속적인 등장으로 윤리 의식은 마냥 발전해오기만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아브라함 J. 헤셸(Abraham Joshua Heschel)은 미국의학협회(AMA)에서의 연설에서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는 우선 사람이 되어야 한다.”(“To heal a person, we must first become a person.”)이라고 말했다. 이렇듯 윤리와 인문학 등 의학도를 사람으로 거듭나게 하는 모든 교육은 필수적이고 예과의 중요한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의 의학교육
우리나라의 근대 서양 의학교육은 1890년대 비정규적인 의학교육과정으로 시작되었다. 1900년대 들어 의학교로 전환되긴 했으나 의예과 과정은 존재하지 않았다. 일제강점기 때는 일제의 영향으로 여러 의학전문학교가 설립되었고 조선인들이 수학하기도 했지만 이는 사실상 일본인들에 의한, 일본인들을 위한 기관이었기 때문에 논외로 한다. 해방 이후에는 우리나라의 의과대학에 2년의 의예과 과정이 추가되긴 했으나, 6.25 전쟁 등으로 불안정한 사회 상황에서 구체적인 논의를 할 기회는 없었다. 그 와중에 90년대까지 의과대학의 수는 급격히 늘어났고, 그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의학교육 개선 방안들이 논의되기 시작하였다. 1999년 한국의과대학장 협의회(현 한국 의과대학 의학전문대학원협회)에서 발표한 <21세기 한국의학교육계획>에 등장하는 의학 전 교육에 관한 언급은 앞서 언급된 루이스 토마스의 주장과 유사하게 인문, 사회과학, 봉사 교육에 더 많은 시간을 배분하고 자연과학 지식은 기본적인 정도로만 제한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의 또 다른 필요성
21세기의 4차 산업혁명으로 인공지능과 로봇기술이라는 새로운 주인공이 등장하고 있는 지금, 우리는 플렉스너 보고서 이상으로 와 닿는 의학 전 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할 수 있다. 이미 서울 의대에서는 3D프린팅이나 빅데이터 관련 과목이 개설되어 있으며 성균관대에서도 소프트웨어 관련 과목을 이수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단순히 기술과학의 학습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주체적인 판단 능력을 기르는 것이 최근 가장 중요시되는 요소이다. 당장 닥친 인공지능의 시대뿐만 아니라 앞으로 다가올 어떠한 기술적, 사회적 변화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고 자신만의 역할을 창조하는 의사가 양성되어야 하는 것이다. 공부량이 매우 많아 암기식 학습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본과를 들어가기 전, 예과는 이러한 자질을 기르기 위해서도 필요한 시간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상황이 과거보다 여유로워지고 국내 의학교육에 대해 고민하는 전문가들도 훨씬 많아진 지금, 더 좋은 의학교육과정을 위한 논의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의예과 과정 또한 현 시류와 목표하는 의사상에 맞추어 발전할 것으로 기대되는 바이다. 한편 가장 중요한 것은 교육을 받는 주체인 의대생들이 예과 2년을 왜 더 이수해야 하는지에 대해 인지하고, 의사라는 직업의 무게감과 책임감에 대해 생각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같은 교육과정을 밟으면서도 서로 다른 의사들이 배출되는 것은 결국 같은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는 의대생들 본인의 몫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2년이라는 시간에 대해 스스로 그 의미를 되돌아 본 후 그 시간을 보낸다면 더 유익한 예과생활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남현서 기자/연세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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