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생들, 어떻게 살 것인가

아직 임상도 배우지 않았던 예과 1학년 시절,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이하 의대협)에서 ‘의대생들을 위한 책 밖으로 나간 국제보건’이라는 세미나를 한다는 것을 듣고 친구와 무작정 서울로 간 적이 있다. 국립중앙의료원 안과전문의이자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국제보건 연구팀인 “Project BOM (Blindness Zero Movement)”의 자문위원으로서 국제보건 활동에 참여 중이신 윤상철 교수님께서는 국제보건(Global Health)과 세계보건(International Health)의 차이 등 국제보건에 대한 전반적인 소개와 더불어 혁신기술이 국제보건에 주는 영향과 혁신기술 도입 시 유의해야 할 사항을 이야기하셨다. 이어서 가정의학과 전문의이자 녹색병원 가정의학과 과장이신 박중철 교수님은 ‘해외재난 긴급구호’라는 주제로 파키스탄, 아이티, 대만 등 지진에서의 한국파견단 긴급구호 활동에 대해 알려주셨으며, 긴급구호에서 어떠한 것이 중요한지, 체계적이지 못한 구호가 오히려 어떤 피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지 설명하셨다. 마지막으로 국경없는의사회에서 활동하신 박찬수 활동가님의 국경없는의사회의 채용 과정, 활동 내용, 보람 및 한계점 등에 대한 질의응답을 끝으로 세미나는 마무리되었다. 돌이켜보면 이 세미나는 국제보건에서 직접 일하고 계신 활동가님과 정책을 다루고 계신 교수님을 통해 ‘국제보건’이라는 생소한 분야에 대해 쉽고 재미있게 알 수 있었던 특별한 경험이었다.

(출처 : pixabay)

 

하지만 학년이 올라갈수록 ‘국제협력보건’ 에 대한 열정은 점차 옅어져갔다. 의대에 입학하고, 국가고시를 통과하고, 전문의 시험에 통과하면서 한 단계, 한 단계씩 올라갈수록 가진 것들은 더 많아지는데 그것을 선뜻 희생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예과 1학년 때는 국제보건협력에 대해 마냥 ‘멋있다’, ‘나도 해보고 싶다’라는 마음이었다면 이제는 존경심이 먼저 앞선다.

 

12월 6일, 2024년도 각 병원의 전공의 모집 결과가 나왔다. 서울대학교병원은 흉부외과, 소아청소년과, 가정의학과, 응급의학과에서 미달되었으며 서울삼성병원은 소아청소년과, 가정의학과, 흉부의학과, 방사선종양학과에서 미달되었다. 서울아산병원은 산부인과, 가정의학과, 응급의학과에서 미달되었다. 각 병원의 전공의 지원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소위 ‘인기과’라 불리는 피부과, 안과, 성형외과는 여전히 강세이고 ‘기피과’라 불리는 소아청소년과, 흉부의학과는 여전히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이러한 상황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상황일지도 모르겠다. 소아과, 흉부외과는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아주 중요한 과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하는 일에 비해 적절치 못한 수가와 대우가 따라온다면 누가 그 일을 과감히 선택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국제협력보건이든, 소아청소년과이든, 어떤 분야를 택할 때 고려해야 할 점들은 무척이나 많다. 의사도 의사이기 이전에 한 명의 인간이다. 하고 싶은 것이 있고, 하기 싫은 것이 있으며, 취미생활을 가지고, 가정을 꾸리며 산다. 현재의 상황만이 아닌, 미래의 상황을 전체적으로 생각하며 과를 선택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선택에 있어서 누구의 강요도 있으면 안 되며, 그 선택에 대해 비판할 수도 없다. 그렇기에 의대생 정원 증가는 해결책이 아닌, 오히려 현재와 같은 상황을 더 반복적으로 악화시킬 수 있는 마치 ‘화재의 불씨’와 같은 정책이 될 수 있다. 한 개의 밑 빠진 독에 물을 두 배, 세 배 더 부으면 그 밑이 두 배, 세 배로 더 커지는 것은 당연하다. 현재와 같은 선택의 불균형에 있어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은 자신이 한 선택에 대한 자부심을 잃지 않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힘든 일은 누구든지 하기 싫어하고, 편한 일은 누구든지 하고 싶어 하는 것. 인간의 당연한 심리이다. 이러한 당연한 심리를 이겨내고 누군가는 스스로를 희생해 가며 힘들고 고된 일을 택하기도 한다. 마땅히 박수받고 존경받아야 할 일을 했음에도 그 일에 자부심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 길을 택하는 사람은 머지않아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적절한 처우와 적절한 보상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일을 하면서 힘든 점이 많더라도 그에 걸맞은 처우와 보상이 조성된다면 자연스레 우리는 이 일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며 행복하게 일할 날이 올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출처 : pixabay)


 

박유진 기자/순천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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