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수준에서 시작하는 연구와 논문 작성

의과대학 졸업 전에 이루고 싶은 목표들은 개인마다 아주 다를 것이다. 학업적인 부분부터 악기를 능숙하게 다루기, 다양한 여행을 떠나기, 알콩달콩한 연애 등 학생 때 누릴 수 있는 것들은 아주 많다. 그리고 누군가는 졸업 전에 자기 이름이 적힌 논문을 써 보는 것을 목표로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기자는 올 한해 “경제 위기가 질병의 사망률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연구하고 논문을 작성하였는데, 학생 수준에서 어떻게 연구를 시작하고 진행하는지, 어떻게 논문을 실제적으로 작성하는지를 간단히 소개해보려고 한다.

1. 당장 연구 시작해보기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마음을 먹고 바로 행동에 옮기는 것! 그러나 첫 단계인 연구 주제 설정부터 어려울 수 있다. 그렇다면 추상적으로라도 궁금했던 것을 여러 가지로 구체화해보고 관련 논문을 검색하는 등 자료를 찾아본 후에 지도교수님을 찾아가도록 하자. 연구주제라는 것은 연구 과정에서 나타나는 새로운 발견에 따라 조금씩 바뀌어나가기도 하지만 첫 시작 단계에서 연구주제를 정하고 연구 방향을 정확히 설정하려면 학생의 수준에서 꽤 어려울지도 모르니 말이다.
기자의 경우 최근 경제 불황을 보며, 예전 IMF나 2008-2009년 경제 위기를 의학적인 요소와 연관지어본 연구가 있을까 생각하여 교수님께 찾아가 문의하였고 꽤 연구해볼만한 주제라고 생각되어 시작하게 되었다.

2. 논문 및 기존의 연구 리뷰하기
기존의 연구를 리뷰하는 과정은 아주 중요하다. 연구 주제와 관련해 어떤 견해가 있는지는 아주 중요하다. 1년에 연구 하나를 진행한다고 하면 최소 3개월 정도는 논문 리뷰에 시간을 쓸 만큼 아주 중요하다.
처음 논문을 읽으면 정말 읽는 속도가 느리고 영어에 능숙하지 못하다면 읽는 시간은 더 길어진다. 그러나 계속 읽다 보면 초록 부분만 빠르게 읽고도 대략적인 내용을 정리할 수 있게 되고, 실제적으로 아이디어를 얻는 데에 중요한 부분은 초록 부분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와 디스커션 부분에서 저자가 제시하는 여러 주장들 정도이고, 그런 부분은 읽기 편하도록 글이 쓰여진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점점 속도가 붙게 된다. 의과대학 본과 3, 4학년 실습을 하고 있다면 몇몇 교수님들께서 논문을 읽고 정리하여 발표하라는 과제를 주시기도 하는데, 연구를 진행하며 평소에 논문 읽는 것에 익숙해지면 저런 과제쯤은 아무렇지 않게 되어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읽은 논문을 잘 정리해두는 것이 중요하다. Endnote 프로그램을 이용해도 좋고, 그렇지 않다면 최소한 논문을 모아놓은 후에 이 논문에서 어떤 문장에서 어떤 아이디어를 얻었는지와 해당 논문의 연구 주제와 주장하는 것은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모아두는 것이 좋다. 본인의 연구 과정에서 아이디어를 새로 얻기 위해 기존의 논문들의 주장으로 브레인스토밍을 할 수도 있고, 이후에 실제적인 논문 작성 단계에서 여러 논문들의 주장을 비교하며 자신의 주장을 이야기할 때도 인용을 반드시 밝혀야 하기 때문이다.
기자는 처음 연구주제를 2008-09년 경제 위기와 질병 간의 연관 관계 정도로 생각했지만 많은 논문을 읽을수록 주제에 대해 보이는 것이 달라졌다. 질병의 발생률에 대한 논문은 많았지만 의외로 사망률에 대한 것은 적었다는 것을 발견하였고, 경제 위기를 정의하는 방법부터 기간을 설정하는 방법들에 대해서도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었다. 또한 다양한 질병들을 포괄한 역학연구는 많지 않았고 특정 질병에 대해서만 초점을 맞춘 연구들이 많았으며 대부분 눈에 쉽게 드러나는 자살이나 허혈성 심질환에 논문이 집중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 것들을 토대로 우리나라에서 다양한 질병을, 그리고 특히 사망률을 경제 지표들과 연관지어보면 어떨까 하고 연구 주제를 구체화할 수 있었다.

3. 자료 얻기와 자료 분석하기
자료 얻기와 분석 방법은 연구마다 아주 달라서 한 번에 이야기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어떤 자료를 이용하더라도 그 자료의 기본적인 특성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자의 경우 KOSIS에서 제공하는 실업률이나 경제심리지수 등을 포함한 경제지표들과 사망코드에 따른 성별/연령별 사망률 자료 등을 사용하였는데 각각의 자료마다 월별로 나온 것들이 있고 절대적인 수치와 상대적인 수치가 있다. 심지어 사망률의 경우 표준화사망률로 다시 계산하는 보정작업이 필요하며, 사망원인이 확실하지 않아 사망코드에 따른 분류를 정확하게 믿을 수 없는 경우도 있었다.
자료 분석 또한 마찬가지다. 연구 결과를 제시할 때는 통계적 결과가 대부분 필요한데, 통상적으로 인정되는 통계 프로그램은 흔히 배우는 SPSS 이외에 R, SAS 정도이다. 학교에서 흔히 배우는 SPSS의 경우 버튼식으로 클릭하여 실행하는 점이 처음에 사용하기 편리할지도 모르지만, ITS 분석(일종의 시계열 분석으로 해당 시점이나 기간 전후로 추세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확인하는 데 이용된다)의 경우 적당한 프로그램을 짜서 Rstudio를 이용하는 것이 단순 반복 작업에 더욱 편리했다. 또한 ARIMA 모형을 이용할 경우에는 똑같이 프로그램을 짜서 분석하는 R과 SAS 프로그램이지만 R에서 제공하는 효율적인 ARIMA 분석 모형을 찾기 힘들어서 SAS가 유용할 때도 있다. 각각의 프로그램의 장단점을 이해하고, 분석에 따라서 적합한 모형을 설정하여 적절한 분석을 이용하는 것이 좋겠다. 프로그래밍에 재능이 있다면 많은 통계 프로그램을 이용해보는 것도 연구 과정에서 경험해볼 수 있는 좋은 경험일 것이다.
이외에 실제적인 연구 방법과 모델을 설정하는 것은 더더욱 연구마다 다를 것이므로 여기에서는 언급하지 않겠다.

4. 논문 작성하기
사실 논문 작성 이전에 자료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발견을 통해 주제를 다시 수정하고, 다시 연구 방법과 모델을 설정하고, 다시 통계를 돌리는 과정이 몇 번이고 반복된다. 그러나 결국에 실제적인 논문을 작성하려고 하면, 또 다시 새로운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논문을 쓸 때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빨리 초고를 작성하는 것이다. 처음에 쓸 때 너무 꼼꼼하고 완벽하게 쓰려고 하지 말고, 큰 내용 위주로 먼저 작성한 후에 수정해 나가는 것이 좋은 글쓰기의 방법이라는 것은 세계적인 작가들에게서도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이다.
논문은 표준화된 규격을 따르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IMRAD format으로 흔히 이야기하는데, Introduction, Materials & Methods, Results. Discussion and Conclusions, 그리고 Abstracts와 논문의 제목인 Title까지. 거기에 인용된 참고문헌도 빼먹을 수 없다.
Introduction은 비전공자에게도 전달할 수 있도록 명확하고 흥미롭게 작성되어야 한다. 보통 세 개의 세부 내용을 담으면 되는데, 먼저 주제에 대한 일반적인 설명이나 이미 알려진 사실, 그리고 다른 연구자들의 연구동향과 의문점과 확장점을 설명하고 그에 따른 나의 주장, 마지막으로 어떤 점이 새롭고 중요한지 결론을 간단하게 요약하는 느낌으로 설명해주면 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이 Introduction을 읽으면 논문에서 다루고자 하는 의문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어야 한다고 늘 생각하면서 작성하는 것이다.
Materials와 Methods는 말 그대로 어떤 자료를 어떻게 분석했는지를 설명하면 되는데, 기본적으로는 아무라도 이 부분을 읽는다면 내 연구를 그대로 따라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통계방법과 같이 널리 알려진 방법은 이름이나 참고문헌으로 제시할 수 있지만 그것을 변형하였다면 변형한 방법을 설명하면 된다. 이외에 자료들을 수집한 방법을 제시하고, 빠뜨리기 쉽지만 IRB 등의 법적/윤리적 요건도 이 부분에 있어야 한다. 어떤 목적으로 어떻게 연구가 진행되었는지 시간 순서대로 작성하면 된다.
Results 부분은 정말 담백하게, 나온 결과만을 제시하는 공간이다. 자칫 이 부분에 결과에 대한 해석을 담기 쉽지만 결과에 대한 해석은 들어가서는 안 된다. 표나 그래프, 그림 또한 여기에 들어가지만 또 너무 과하게 많으면 좋지 않고, 데이터가 많을 경우에는 보조 자료로 데이터를 논문과 별도로 제시하고 중요한 것만 요약해서 보여줄 수 있도록 해야한다.
Discussion은 논문에서 정말 중요한 부분인데, 결과가 주는 의미와 그것이 중요한 이유, 그리고 기존의 연구들과 비교한 강점과 한계를 돌아보고 필요하다면 새로운 가설이나 권고사항을 쓸 수 있다. 보통 첫 문장으로는 이 연구의 목적은 어떤 것이었고 그 결과가 어떠했다 정도로 시작하는 것이 좋다.
마지막으로 Reference의 경우에는 글이나 그림, 표 등에 포함된 참고문헌을 모두 제시하면 되는데 name-and-year로 작성되는 하버드 방식과 연속된 숫자로 표시하는 밴쿠버 방식이 있다. 각 저널마다 양식이 있으니 확인 후에 작성하면 된다.
이외에 세부적으로는 문법적 시제의 확인이 꽤나 까다로운데, 초록과 결과, 이용된 자료와 연구방법을 소개할 때는 과거형, 서론 부분은 현재형, Discussion은 현재와 과거의 혼용으로 생각하면 된다. 이미 공인되거나 논문으로 출판된 사실은 현재형을 사용하고 일반화되지 않은 사실은 단순 과거형으로 쓴다. 또 표나 그림을 설명할 때는 꼭 현재형을 사용해야 하며 반복되는 사항에 대해서는 현재완료형으로도 쓸 수 있다.
논문 작성을 어려워하는 사람이 많고, 더욱이나 처음 작성한다면 막막할 수 있다. 그래서 최소한, 목표만은 제대로 설정하고 쓰다가 생각이 잘 나지 않으면 한국어로라도 대충 표시하고 계속 초록을 작성해나가서 수정을 거듭하는 것이 좋다. 영어로 작성하는 것이 자신이 없으면 영문 교정을 해 주는 곳이 많으니 교정을 받으면 되고 내용이 정리되지 않았다면 개요라도 먼저 써 둘수도 있다. 초고는 초고일 뿐이니까.

연구와 논문이라는 것은 처음 시작하는 것이 굉장히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논문도 많이 읽을수록 쉽게 읽히고 많이 써보고 고쳐볼수록 능숙하게 쓰지게 되며 연구 또한 계속 같은 주제에 대해 탐구해볼수록 보이는 것이 넓어져 새로운 발견을 할 수 있게 된다. 시작이 반이라는 옛 말은 언제나 옳다.

정진형 기자 / 고려
<jh941019@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