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의인류학의 세계

법의인류학의 세계

미국 드라마 ‘Bones’는 뼈를 분석하여 범죄현장을 복원하여 사건을 해결하는 법의인류학자, FBI인 주인공들을 중심으로 ‘뼈로 푸는 살인사건’을 다뤄 큰 인기를 끌었다. ‘CSI: 라스베이거스’에서도 뼈의 해부학적 구조를 바탕으로 범죄 현장을 재구성하고, 부패된 시신의 곤충 지표를 이용해 과학 수사를 펼치는 CSI 요원들의 모습이 매력적으로 그려진다. 실제 우리나라의 경우 의사 혹은 치과의사들이 이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며, 대한체질인류학회 등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다. 해부학과 생물학, 법학과 과학 수사 등에 관심이 있는 의대생들이라면 법의인류학의 매력을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법의인류학’이란

법의인류학(forensic anthro-pology)은 주로 인류학과 뼈대생물학을 적용하여 법의학적 과제 및 사건을 해결하는 학문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또한 신장, 체중 등의 계측적 방법과 형태학적 변이, 뼈의 모양 등 비계측적 방법을 아우르는 형태학적 특징을 통해 사람을 유추한다. 신원을 알 수 없는 희생자의 정보와 이미 연구된 체질인류학 연구결과를 비교하여 유추하는 일을 예로 들 수 있다. 이때, 희생자의 개인식별항목을 추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며 사망당시 나이, 성별, 키 등으로 추정치에 따라 possibility 의 범위를 줄여 나가는 ‘배제의 방법’을 적용한다.
다소 생소할 수 있는 ‘법의인류학’은 흔히 ‘법인류학’, ‘법의학’과 혼동된다. 법인류학은 ‘anthropology of laws’로 법의 체계를 연구하여 인간의 사회를 탐구하는 학문이고, ‘forensic medicine’ 즉 법의학은 의학과 법을 담당하는 의학의 특수한 하위 분야로, 의학과 관련 과학을 이용해 사망의 원인과 장애, 질병을 조사하는데 목적이 있다. 따라서 법의인류학과는 다른 방향과 목적을 가진 학문임을 알 수 있다.

법의인류학자의 역할

법의인류학자는 성별, 사망당시의 나이, 살아생전의 키, 인구집단, 사후경과시간 추정, 뼈 손상, 병리소견 분석 등 개인 식별항목을 추정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사람과 동물의 뼈를 구분하고, 뼈 손상을 검사하여 원인이 되는 기전과 물체를 규명하며, 사후 경과시간을 추정한다. 위 과정을 통해 향후 신원확인을 위한 정보를 제공하게 된다.

법의인류학의 도구

법의인류학에서 주로 사용하는 식별 도구들을 간단히 살펴보면, 성별 추정은 Nuchal crest (superior and inferior nuchal line), Mastoid process, Supra-orbital margin, Supra-orbital ridge, glabella, Mental eminence, 골반뼈의 모양 등을 이용한다. 나이의 추정은 Sternum의 body와 manubrium의 결합 정도, 갈비뼈, sacrum, hip bone을 통해 파악한다. 이와 관련해 더 자세한 내용은 Steven N. Byers의 <Introduction to forensic anthropology> 제4판을 통해 공부할 수 있다.

우리나라와 미국 법의인류학의 차이

유럽의 경우 뼈에 대한 기록이 많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해부학에 대한 깊은 역사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법의인류학적 연구를 진행하기 어려운 반면, 미국의 경우 해부학자들이 Hamann- Todd collection, Terry collection 등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하여 부검이 끝난 시신의 정보를 기록해 두었다. 또한 하와이에 미국 신원확인 센터를 설립하여 2차 세계대전 등 여러 전쟁에서 전사한 병사들의 유골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법의인류학적 연구를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시신의 부패여부를 기준으로 법의학자와 법의인류학자의 역할이 뚜렷이 구분되는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그 경계가 미약하다.

지난 여름, 본 기자는 미국 테네시대학 법의인류학 워크샵을 통해 다양한 기법들을 탐구하고 이를 적용해보는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법의인류학과 그 체계를 이끄는 미국 테네시대학의 연구환경과 방법에 대해 간단히 소개하고 공유하고자 한다.

미국 Tennessee 대학, 법의인류학 연구소

미국 테네시주 테네시대학(University of Tennessee)은 법의인류학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는 곳이다. 자연에서 시신의 사후변성학(taphonomy)을 연구하는 특수한 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부패 이후 뼈대를 보관하여 방대한 데이터를 축적하고 있다. 또한 뼈의 정보를 입력하면 개인식별추정 결과를 제공해주는 FORDISC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연구하고 있다. 세계 각국의 의사들과 법의인류학자들, 미국내 FBI 및 과학수사팀들이 방문하여 시설에서 연구를 진행하고, 다양한 기법들을 익힌다. 국내에서도 개인식별 추정을 위한 데이터의 기반화에 대한 연구가 진행중이다.
테네시대학 법의인류학 연구소는 대학 옆 야산에 자연적인 환경이 조성된 대규모의 연구시설인 Anthropology Researching Faciility 를 갖추어 시신의 부패, 화석화를 연구하고 있다. 이 특별한 시설은 의사 및 법의인류학자이자 연구소 설립자인 William. M Bass와 소설가 Jon Jefferson이 펴낸 추리소설 시리즈 중 특히 ‘Beyond the Body Farm’의 인기와 함께 유명해졌다. 이 소설에서 시설이 ‘Body farm’ 즉 시체 농장이라는 자극적인 제목으로 다뤄져 연구소에 대한 많은 괴담을 낳았다. 그러나 연구소에 시신을 기증하는 프로그램인 ‘Body donation Program’은 현재 4000명이 넘는 기증자들이 대기할 정도로 테네시주 뿐만 아니라 미국 내에서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연구소는 시신 관리 및 보존 등에 대한 철저한 원칙을 바탕으로 시설을 운영하고 있으며, 다양한 협업과 연구가 주로 이 시설을 통해 진행되고 있다.

우리나라 법의인류학자들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에는 아직 법의인류학이 대학교 및 대학원의 전공분야로 포함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 현장, 세월호 감식, 범죄 수사 등 다양한 사건들에 의해 그 필요성이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우리나라 법의인류학자들은 국립 과학 수사연구원의 연구원으로 연구를 진행하거나 발생한 사건을 담당한다. 앞으로 법의인류학자들의 다양한 활동을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오윤서 기자/순천향
<justinechooh@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