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국가고시 행정소송, 의대생의 숙원을 풀다

의사 국가고시 행정소송, 의대생의 숙원을 풀다

법원, 의사 국가고시 실기시험 취득 점수 및 항목별 합격여부 공개 판결

지난 10월 12일, 서울행정법원은 의대생 및 의사 6명이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이하 국시원)을 상대로 제기한 의사 국가고시 실기시험 정보공개청구 및 행정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판결을 내렸다. 최근 몇 년간 의대생들 사이에서 이어져 오던 의사 실기시험과 관련된 논란이 종지부를 찍는 순간이었다.
2009년 의사 국가고시에서 실기시험이 처음 시행된 이래로 지금까지 의사 국가고시 출제를 주관하는 국시원은 단순히 실습시험의 하위항목인 임상진료능력평가시험(이하 CPX)와 객관구조화진료시험(이하 OSCE)에 대해 합격/불합격만 통지해왔다. 이에 의사 국가고시 실기시험에서 떨어진 응시자들은 자신이 어떤 문제에서 어떤 부분을 잘못했는지도 모른 채 불합격의 고배를 마셔야만 했다. 또한 OSCE 시험의 경우, 국시원에서 제대로 된 항목별 체크리스트를 공개하지 않아 응시자들이 표준화된 기준이 없는 채로 시험을 준비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2017년 당시 류환 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이하 의대협) 회장은 본지 117호의 기사를 통하여 실기시험의 경우 높은 가격임에도 불구하고 명확한 채점기준과 점수 공개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라며 이에 대한 개선 의지를 보여주기도 하였다.

‘1인 시위’로 논란의 중심에 선 실기시험

그동안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실기시험은 2018년 1월 제 82회 의사국가고시 합격자가 발표된 다음날 벌어진 류환 전 의대협 회장의 1인 시위로 화제를 모은다. 류환 전 회장은 당시 ‘합격자도 왜 붙었는지 모르고 불합격자도 왜 떨어졌는지 모르는 깜깜이 시험’이라는 문구가 적힌 피켓을 통하여 실기시험이 성적표 없이 합격과 불합격 여부만 공개되는 것이 불합리하다고 의견을 피력했다. 류환 전 회장은 시위 자리에서 실기시험의 경우 단순히 합격한 문항의 개수만 발표되고 개별항목별로 합격 여부 및 불합격 이유는 발표되지 않는데다 이의제기할 만한 제도적인 시스템 역시 제대로 구성돼 있지 않아 불합격자들이 결과에 승복하기 어렵기 때문에 위와 같이 시험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후로도 실기시험은 종종 ‘깜깜이 시험’으로도 불리게 되었으며 당사자인 의대생들이 실기시험의 불합리성에 대해 좀 더 많은 관심을 가지도록 하였다.

계속된 실기시험 정보공개 거부, 결국 법원까지…

최근 몇 년간 지속적으로 실기시험에 대한 정보공개를 국시원측에 요구했다가 거부당했던 전례는 올해에도 여지없이 이어졌다. 올해 3월 23일, 의대협 집행부에서 재차 의사 국가시험 실기시험 중 CPX, OSCE 각각 6개의 정확한 항목과 각 항목별 합격/불합격 여부, 항목별 응시자의 점수 및 OSCE 항목별 체크리스트에 대한 정보공개를 요구하였으나 6일 만인 3월 29일 국시원은 다시 한 번 ‘내부 지침으로 인한 공개 불가’ 답변을 통해 이를 거절했다. 국시원은 정확한 항목에 대한 공개를 거부하는 거에 대해선, 개별 응시자들에게 응시한 항목을 공개할 경우 조합별 항목을 복원할 우려가 있어서 공개하기 어려우며, 점수 공개와 관련해서는 합격선이 매번 달라지는 시험의 특성에 비추어 볼 때, 단순 점수를 성적표에 통지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으며, 오히려 시험 관리에 지장을 준다는 입장을 밝혀 왔다.
결국 이 문제는 해결점을 찾지 못한 채 5월 9일, 의대생 4명과 의사 2명이 국시원의 정보공개거부처분취소(서울행정법원 사건번호 2018구합641139)로 행정소송 소장을 제출하게 되며, 이 소장은 국시원에 6월 29일 접수된다.

국시원이 내놓은 절충안, 그러나 의대생은 그 이상을 바라고 있었다.

국시원은 그로부터 5일 뒤인 7월 4일, 혼란을 야기할 우려가 적은 항목별 합격 여부에 대해서는 응시자에 대한 정보공개 확대 차원에서 금년 하반기 시험부터 공개하기로 결정하였다며 돌연 실기시험 각 항목에 대한 합격/불합격 여부를 공개하겠다는 입장을 밝힌다. 국시원 입장에선 양보에 가까운 결정이었을지는 모르겠지만, 행정소송의 내용을 보면 의대생들은 그 이상을 바라고 있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원고 6인이 소장을 통해 제기한 정보 공개는 아래와 같이 총 5가지이다.

·CPX(표준화 환자 진료) 6문항의 각 항목
·OSCE(단순 수기 문제) 6문항의 각 항목
·각 항목별 합격/불합격 여부
·항목별 응시자의 점수
·OSCE 문항의 항목별 체크리스트 공개

소송을 제기한 원고들은 실기시험의 공정하고 객관적인 수행을 담보하기 위해 OSCE 각 항목별 체크리스트가 공개돼야 하며, OSCE 각 항목별 체크리스트를 공개함으로써 일차 진료의사가 갖춰야 할 최소한의 핵심 역량을 평가하여 의료서비스의 질을 향상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기본 교육 가이드라인조차 없이 저마다의 기준으로 학생들을 교육해야 했던 의과대학과 스스로 학습할 수밖에 없었던 의대생들은 바로 이런 점들을 원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원고일부승소로 끝난 행정소송, 무엇을 남겼나?

소장 제출로부터 약 5개월 뒤인 10월 12일, 서울행정법원은 이미 국시원이 받아들인 3개 요청 사항을 제외한 나머지 항목별 응시자 점수 및 OSCE 체크리스트 공개에 대한 부분에 대해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원고의 주장을 일부 받아들여, 국시원에 항목별 응시자 점수는 공개해야 한다고 밝혔지만, OSCE 각 항목별 체크리스트 공개에 대해서는 이유 없다고 판결했다. 서울행정법원의 판결이 난 이후인 10월 17일, 국시원은 2018년 하반기에 시행되는 83회 의사실기시험부터 응시 문항의 각 항목명, 항목별 합격 여부와 취득 점수를 공개하겠다는 발표를 했다. 국시원은 이 자리에서 의사실기시험의 시험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는 정보 공개를 확대한다는 방침을 가지고 시험을 시행할 것이며 이번 서울행정법원의 판결을 수용하고 향후에도 응시자의 편의증진을 위해서 더욱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OSCE 문항의 항목별 체크리스트의 경우에는 공개 시 응시자들이 항목의 내용만을 집중적으로 학습해 시험 취지가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로 인해 비공개하기로 하였다. 비록 완전한 공개를 얻어내진 못했지만, 실기시험 시행 이후로 장장 9년 만에 처음으로 응시자의 점수를 성적표로 받아볼 수 있는 기회가 열린 것이다.
그 동안 보수적이고 위계질서가 비교적 엄중하게 지켜지던 의료계에서 나온 이번 판결은 불합리한 부분도 요구와 행동을 통해 변화해 나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이정표가 될 전망이다. 특히 의대생들이 의대생을 평가하는 기관에 직접적인 변화를 가져오도록 했다는 점에서 이번 사건은 의료계에서 가장 젊은 층인 의대생들도 변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류환 전 회장은 “의과대학에 진학하여 의료계의 일원이 된 후, 수많은 부조리와 불합리함을 겪게 된다. 개개인이 모든 부조리와 불합리함에 대해서 싸워 이겨내는 건 사실 상 불가능에 가깝다”며, “점점 더 의대생사회가 무비판적이 되어 가며 더 나아가 의료계가 시대에 뒤쳐져가고 있는 시기에 이번 승소 판결은 우리에게 희망이 되어준다”라고 이번 사건을 평가했다. 또한 “혼자라면 절대 하지 못했을 일이며, 수많은 사람들이 이번 일을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다해주었다”면서, “작년에 뜻을 모아 노력한 의대협 임원들과 소송에 참여해 준 분들, 그리고 소송비용 전체를 지원해주신 대전협 안치현, 이승우 회장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영민 기자/한림
<medschooledito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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