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4월 11일 헌법재판소에서 임신중지 당사자와 의사를 처벌하는 ‘낙태죄’에 대한 헌법불합치 결정이 내려졌다. 그후 국회는 보완입법을 하지 않았고, 2021년부터 임신중지는 비범죄화되었다. 그러나 임신중지를 둘러싼 논쟁은 끝나지 않았다. 비범죄화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임신중지에 더 안전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국가가 ‘안전한 임신중지’를 권리로서 보장해야 한다는 의견이 끊이지 않는다. 안전한 임신중지에 대한 논의는 충분한 의료정보의 공유, 의료인 교육, 건강보험 적용 등 건강권으로서 기존에 논의되어 왔던 주제들을 광범위하게 연결한다. 이 기사에서는 낙태죄 폐지 3년차를 맞아 안전한 임신중지와 관련해서 공론장에서 제기되고 있는 안전한 임신중지에 대한 논의의 몇 가지 쟁점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많이 논의되곤 하는 주제들 중 하나는 임신중지를 제공할 수 있는 체계적 의료체계의 부재이다. 임신중지를 제공하는 의료기관들은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것이 중론이며, 그 또한 광범위하게 공개된 것이 아니어서 임신중지를 원하는 당사자는 이용할 의료기관의 부족 문제와 함께 정보격차를 경험하게 된다. 물론 임신중지가 완전히 비범죄화된지 얼마 안 되었지만, 의료인들은 트레이닝 과정에서 안전한 임신중지에 대한 체계적 교육을 받는 경우가 매우 드물다고 한다. 여성의 건강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산부인과 전문의 양성 과정에서도 이는 예외가 아니다. 많은 이들이 의사 양성 과정에서부터 안전한 임신중지를 제공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내는 것을 중요한 과제로 본다. 임신중지를 요구하는 사람은 생물학적·사회문화적으로 다양한 특성을 갖게 되는데, 그래서 임신중지에 대한 의료기관 연계 시스템을 확립하여 임신중지와 관련된 보건의료 서비스를 공식화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정확한 정보가 공유되고, 의료진들이 안심하고 임신중지에 대한 상담과 시술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것 또한 현행 의료체계 내에서 평등한 건강권의 보장을 위해 논의할 수 있는 사항들이다. 임신중지에 대한 정확한 의료정보를 시민들이 언제나 접근할 수 있는 매체를 통해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도 공공기관의 역할이다. 임신중지를 현장에서 실시하는 의사들 같은 경우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검증된 가이드라인의 부재를 지적하는 경우도 있다.
또 하나의 큰 쟁점은 임신중지의 건강보험 적용 여부이다. 임신중지 시술은 현재 건강보험이 보장하는 범위가 아닌데, 그 때문에 많은 임신중지 시술은 지금도 현장에서 비급여로 시행되고 있다. 임신중지를 건강보험에서 보장하지 않으면 이는 경제적 부담을 가중시켜 임신중지 당사자를 경제적으로 취약하게 만든다는 것이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해 목소리를 내는 사회운동가들의 주장이다. 건강보험 적용은 단순히 개인의 경제적 부담이 줄어든다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건강보험에서 임신중지를 급여화하게 되면 임신중지의 전 과정을 공공기관이 표준화해 급여를 지급할 근거가 생기게 된다. 공공기관에서 의료의 질을 모니터링하여 궁극적으로는 환자의 안전성을 보장하는 데 큰 영향을 끼치게 되는 것이다.
임신중지에 대한 입법의 공백과 행정의 공백은 시민의 삶과 관련된 문제에 대해 공공 영역이 얼마나 책임성을 가지고 있는지 잘 보여주는 기간이었다. 시민이 선출한 의회와 정부는 시민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을 최우선에 두어야 하는 기관이고, 이를 보호할 책임이 마땅한 기관들이 건강권을 위협받는 사람들을 외면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입법부와 행정부는 지금이라도 학계, 시민사회 등과 협력해 어떻게 하면 안전한 임신중지를 보장해 평등한 건강권을 지켜내는, 대표자로서의 소임을 다할 수 있을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한다.
오준서 기자/순천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