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과대학 학제, 1.5+4.5 체제로의 전환

일반적으로 대한민국 의과대학 교육은 예과 2년과 본과 4년 과정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이 구조를 조금 수정하여 예과 1.5년과 본과 4.5년으로 의과대학 6년을 보내게 하는 ‘1.5+4.5 체제’를 택한 의과대학들이 늘어나고 있다. 1.5+4.5 체제에서는 예과 기간이 줄어들고 학생들은 본과 과목들을 한 학기 일찍 접하게 된다.

이렇게 된 배경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우선, 예과 때는 의학 과목을 공부하지 않고 기초적인 교양 과목들을 배운다. 또한 본과 진학 이후에는 예과 성적이 크게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예과 기간을 휴식기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많은 학생들이 예과 때 학습 습관을 잘 형성하지 못하고, 결국 본과 때 공부를 버거워하기도 한다. 또한, 의학이 발전함에 따라 본과 과목과 학습량이 점점 늘어나는 실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과 과정을 줄이고, 본과 과정을 길게 하는 것이 본과생들의 학업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의과대학 학생들이 더 일찍 임상 현장을 접하도록 하기 위해서 1.5+4.5 체제를 택하기도 한다. 기존에는 본과 3학년부터 임상 실습을 돌며 병원 현장을 접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최근에는 병원 현장을 접하는 시기를 앞당기려는 움직임이 계속되고 있다. 예를 들어, 부산대학교에서 2017학년도에 본과 2학년을 대상으로 쉐도잉(shadowing) 실습을 실시한 적이 있다. 쉐도잉 실습이란 의사들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면서 임상 현장을 지켜보는 것을 일컫는다. 실질적으로 참여는 하지 않더라도 배운 내용이 실제로 적용되는 모습을 병원 현장에서 직접 확인하면서 의사의 역할, 학습 동기, 의료 환경 및 연구 환경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이렇게 본과 시기를 앞당겨 학생들을 조기에 병원 현장에 노출시키면 추후에 의대생들이 인턴·레지던트 생활을 시작할 때 병원 환경에 보다 수월하게 적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학생들은 현재까지 큰 잡음 없이 운영되던 예과 2년+본과 4년 체제를 굳이 바꾸는 것이 필요한지 의문을 제기하는 경우도 있다. 예과 과정이 줄어든다는 것은, 학생들이 관심있는 여러 주제의 교양을 배울 수 있는 기간이 줄어든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바쁜 의대 생활의 특성 상 예과 이후에는 인문사회 분야나 공학 분야의 과목을 배울 기회가 극히 적다. 의사에게 의학 지식 외에 인문학적 소양도 필수 요소로 여겨지는 만큼 인문학적 소양을 쌓을 수 있는 시기가 확보되는 것이 장기적으로 훌륭한 의사를 양성하는 데 더 효과적이라는 의견도 상당수이다. 실제로 최근 여러 대학에서 예과 교과과정에 글쓰기, 윤리, 역사 등을 포함시키고 있다. 예과 시기에 기초 과학 과목을 배우는 것 역시 본과 공부의 이해를 도울 수 있다는 주장도 눈여겨볼 만하다. 본과 공부가 암기 위주라고는 하지만, 근본적으로 자연과학 과목이므로 기초 과학 지식이 탄탄한 경우 더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2+4 체제는 한 학년이 모두 끝난 상태에서 본과를 시작하기에 보다 정비된 상태로 골학 및 해부학을 시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현재 전국 의과대학의 약 절반 가량이 1.5+4.5 체제로 전환한 상태이다. 그러나 비판 의견이 존재하는 만큼 1.5+4.5 체제로의 전환이 갖는 장단점을 파악하고 이에 수반되는 교육 과정의 변화를 면밀히 점검할 필요가 있다. 조기 임상 노출, 학업 부담 완화 등 의학 교육의 실질적 목표를 더욱 잘 달성할 수 있다는 측면도 있지만, 그만큼 임상 전 학습도 중요하기 때문에 각 의과대학들이 득과 실을 잘 따지는 것이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교육 과정을 조정하는 것은 그 변화를 다듬고, 사람들이 적응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는 문제가 있지만, 우리나라 의과대학들이 자율적으로 교육과정을 구성하고 운영한다면 각 의과대학들의 개성을 살릴 수 있고, 의학 교육이 다원화된다는 점에서 의미 있을 것이다.

손정민 기자/가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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