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누아르, 류마티스 관절염이 있는 손으로 그림을 그리다

미술가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신체 부위는 어디일까? 손은 미술가가 보고 느끼는 것을 붓과 물감으로 다채롭게 표현해 주는 부위이다. 붓의 터치는 손놀림에 아주 민감하게 반응한다. 긴 터치, 짧은 터치, 부드러운 질감, 억센 질감 등……. 하지만 미술가들에게도 관절염이 생기지 않으리란 법은 없다. 특히 류마티스 관절염은 예방하기도 어렵고 일상생활도 큰 지장을 주는 참 안타까운 질환이다. 그렇다면, 류마티스 관절염을 앓은 미술가가 있을까? 그들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19세기 인상파 거장 르누아르에 대해 알아가보자.

오귀스트 르누아르(Pierre-Auguste Renoir 1841-1919)

누구나 한 번쯤 <피아노 치는 소녀들>, <테라스에서> 그림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 그림을 그린 주인공이 바로 오귀스트 르누아르다. 그의 그림은 빛이 번진 듯 안 번진 듯한 붓터치와 다채로운 색깔이 특징적이다. 레스토랑, 집, 학원, 사무실 등 어디에 걸어도 문안하고 분위기를 산뜻하게 띄워준다. 그는 자기가 원하는 대상을, 원하는 방식으로 자유롭게 표현하는 인상주의의 개척자였다.


(Fig.1. 테라스에서 1878)

류마티스 관절염(이하 RA)의 병리기전에 대해서는 현재까지 명확하게 알려진 바가 없다. 그 중에서도 알려진 것은 ACPA(Anti-citrullinated peptide antibody), Rheumatoid factor등에 의한 자가면역 반응이다. 이 면역복합체들은 특히 관절부위에 염증정 관절염을 유발한다. RA는 전신질환이기 때문에 대칭적인 임상소견을 나타낸다. MCP(Metacarpophalangeal)와 PIP(Proximal interphalangeal) joint가 붓고(swelling), 누르면 아프고(tenderness), 결절이 생기기도 한다. 관절 외 증상으로는 대표적으로 간질폐렴과 혈관염이 있다. RA를 일으키는 환경적 요소로는 담배가 대표적이다.

르누아르가 류마티스 관절염을 앓았다는 직접적인 진찰 기록은 없으나, 그의 사진, 편지, 그리고 자서전을 통해 그의 질병 진행 양상을 파악할 수 있다. 40대 후반, 50대 초반에 르누아르는 관절 주위가 붓기 시작했다고 한다. 51세 즈음에 찍은 보트 투어에서 찍은 사진에서 그의 MIP, PIP joint가 부어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때까지만 해도 담배 파이프를 평범하게 쥐었다고 한다.


(Fig.2. MIP, PIP joint가 부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60세 경부터 그의 병세가 악화되었다. 손에 기형이 생기면서 담배 파이프와 붓을 불편하게 쥐기 시작했고 발에도 기형이 생겨 신발을 신지 못했다. 체중도 46킬로그램까지 감소했는데 이는 Rheumatoid cachexia(이하 RC)로 추측된다. RA환자의 6할은 대사 이상으로 근육량과 지방량이 감소하는 RC를 앓는다. RA가 목뼈에도 영향을 미치며 뇌졸중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로 인해 신체 일부가 마비되어 여생을 휠체어에서 보내야 했다. 말년에는 RA의 결절이 더 커지고, 심지어 발과 새끼손가락에 괴사까지 일어났다. 이는 RA로 인한 혈관염 때문에 생긴 전신적 증상이다. 1919년, 78세의 나이에 폐렴으로 사망했다.

어떻게 질병을 다루었는가

류마티스 질환의 치료원칙은 다음과 같다; (1)치료의 목표는 관해로 한다; (2)통증의 기전에 따라 약제를 선택한다; (3)동반질환과 약제 부작용을 고려하여 치료한다; (4)질환으로 인해 삶의 질이 저하되지 않도록 관리한다. 환자의 생활 패턴, 직업 환경 등을 고려함으로써 적절한 생활습관을 형성할 수 있도록 환자를 밀접하게 관리해주는 것도 의사의 몫이다.

르누아르가 살았던 당시에는 류마티스 질환에 대한 의학적 지식과 치료가 부족했다. 하나 르누아르가 그림을 그리기 위해 시도한 다양한 요법들은 현대 사회의 치료와 일맥상통한다고 한다. 그 결과 르누아르는 류마티스 관절염을 앓았음에도 400여 점의 작품을 남길 수 있었다.

초기에는 손의 움직임을 원활하게 유지하기 위해 피아노도 치고, 저글링, 배드민턴 등 다양한 공놀이를 했다. 또, 통증을 완화시키기 위해 프랑스 스파를 애용했다. 나중에는 남프랑스 지역으로 이사를 가기까지 한다. RA를 막을 수 있는 약제로 csDMARD가 있지만, 당시에는 그 약제가 없었다. 르누아르는 NSAID의 일종인 antipyrine을 복용했다고 한다. Antipyrine은 COX inhibitor로서 염증을 유발하는 프로스타글란딘을 억제하지만 질병의 경과를 변화시키지는 않는다. 따라서 르누아르는 다양한 장치들에 의존하여 그림을 그려야 했다. 약해지는 뼈를 보호하고 욕창을 막기 위해 휠체어에 쿠션을 얹혔다. 캔버스를 움직이는 장치를 마련함으로써, 팔을 크게 움직이지 않더라도 큰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르누아르가 말년까지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데에는 가족의 지지와 사회적인 성공도 빼놓을 수 없다. 그의 부인은 르누아르와 공놀이를 함께했고, 아들은 아버지 옆에서 캔버스를 움직여주었다. 또한, 르누아르는 하인을 고용하여 원하는 장소로 언제든지 갈 수 있었다. 가족과 하인의 적극적인 지지는 그가 무력감에 빠지지 않고 RA를 관리하며 미술가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당시의 의학적 한계로 인해 르누아르에게 1, 2, 3번 치료 원칙은 성취되지 못했다. 그럼에도 4번은 충분히 성취되었다고 본다. 본인의 노력과 가족 및 하인들의 물리적, 정신적 지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Fig.3. 손 기형 때문에 어색하게 붓을 잡고서 휠체어에 앉아 그림을 그리는 모습이다. 굉장히 말라보인다.)

RA가 르누아르의 작품에 미친 영향

남프랑스로의 이사는 작품의 테마와 대상에 변화를 주었다. 1910년대, 즉 70대의 르누아르의 작품에 여성 누드화가 많은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Extensor muscle에 기능 이상이 생기면서, 붓 터치가 짧고 빨라졌다는 의견도 있다.


(Fig.4. Les Grandes Baigneuses. 1918-1919. 160x130cm.)

르누아르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The pain passes, but the beauty remains.” 르누아르는 류마티스 관절염으로 인해 육체적 고통을 겪었으나,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 아름다운 그림으로 기쁨을 전하기 위해 한결같이 RA를 관리하며 그림을 그렸다. “Blessed painting. Even late in life, you are still creating illusions and occasionally giving joy.”

참고문헌
1.Boonen A, van de Rest J, Dequeker J, van der Linden S. How Renoir coped with rheumatoid arthritis. BMJ. 1997;315:1704-1708.
2.Zeidler H. Great Artists With Rheumatoid Arthritis: Why Did Their Disease and Coping Teach? Part 1. Pierre-Auguste Renoir and Alexej von Jawlensky. JCR. 2012;18:376-381.
3. Rajbhandary R, Khezri Z, Panush R. S. Rheumatoid Cachexia: What Is It and Why Is It Important? The Journal of Rheumatology. 2011;38:406-408
그림출처: 1번 동일

김현/연세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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