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과, 의예과 대나무숲’ 관리자를 만나다
5000명 이상의 팔로워들의 호응, 2000개 이상의 제보
의대생들 간 자유로운 상담, 토론의 기회 제공해…
“조언하는 선배같은, 편안한 친구같은, 귀여운 후배같은 문화공간 되었으면”
“다른 학교의 의대생들과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전국 의대생들의 ‘연결고리’가 되길 바라”
각 집단의 특성 살린 익명의 제보 게시판
‘대나무숲’은 sns를 이용하여 제보가 게시되는 페이지로 같은 학교 재학생들 또는 같은 직업군의 사람들 내에서 정보를 공유하거나 고민을 털어놓는 등 자유로운 소통을 가능하게 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의학과, 의예과 대나무숲의 성장
2016년 7월 페이스북에 등장한 ‘의학과, 의예과 대나무 숲’ 페이지는 의대생들의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전국 41개 의과대학의 의대생들은 비슷한 커리큘럼과 과목들을 공부하며 생활하는 등 많은 공통점들을 갖고 있었지만, 공감 형성의 기회는 부족한 상황이었다. ‘의학과, 의예과 대나무숲’(이하 의대숲)의 등장은 익명의 힘을 빌려 다양한 고민 상담과 즐거운 공감, 의대 내 문화나 사회 문제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의 자유로운 제시 등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현재 약 5500명 이상의 페이스북 이용자들이 팔로우하고 있으며 2000개 이상의 제보가 공유되며 ‘의대숲’은 울창하게 우거지고 있다.
의대숲 1주년을 맞이해 의대숲의 다양한 통계를 분석해보고, 페이지를 운영하는 ‘관리자’, ‘솔로몬’, ‘레날’, ‘오인트’를 서면으로 만나보았다.
전 학년의 의대생들로부터 모인 다양한 제보
지난 1년간 가장 많은 제보를 한 학년은 예과 1학년과 2학년으로 총 제보의 40퍼센트에 달했다. 다음으로 본과 1학년, 2학년 순으로 제보가 가장 많았다. 카테고리 별로는 연애와 고민, 학교 순으로 제보가 많았고, 공부와 일상, 토론 등 광범위한 주제에 대한 제보가 있었다. ‘좋아요’를 가장 많이 받은 제보는 1516번 차트(토론 카테고리)였고, 1433번 차트(기타 카테고리)가 두 번째를 차지했다. 공유가 가장 많이 된 글은 1677번 차트로 학교와 관련된 제보였다. (출처: 의대숲 페이스북 관리페이지)
Q1. 의학과, 의예과 대나무숲 페이지를 만들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페이지를 개설할 때 특별히 고려했던 부분이 있는가?
관리자. 본과생으로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를 심하게 겪는 중이었다. 고민을 동기들이나 친구들에게 털어놓기에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고, 개인 sns도 다른 선배들의 눈이 의식되어 한계가 있었다.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해 답답함을 느끼던 중 sns에서 ‘간호사, 간호학과 대나무숲’이라는 페이지를 보게 되었고, 병원에서의 불합리한 문화와 공부와 실습에 대한 어려움에 대한 글을 보며 공감했다. 의대생들을 위해서도 고민을 토로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이는 의대숲의 개설로 이어졌다.
특별히 고려했던 부분은 바로 전국의 의대생들에게 골고루 홍보되는 것이었다. 생각보다 반응은 뜨거웠고, 순식간에 수백 명의 의대생들이 ‘좋아요’를 눌렀다. 그만큼 많은 의대생들이 원하고 있었음을 느꼈고, 지금까지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어서 매우 기쁘다.
Q2. 전국 41개 의과대학에서 모여드는 제보를 관리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 같다. 의학과, 의예과 대나무숲은 어떻게 운영되고 있나?
관리자. 하루에 들어오는 수십 개의 제보들은 하나하나 수작업으로 처리된다. 들어온 제보들은 일단 관리자가 일차적으로 확인하고, 애매한 제보들은 대숲지기들끼리 의논하여 필터링 대상을 정한다. 최근부터는 대숲지기들과 일주일씩 나눠서 관리를 하고 있어 부담이 줄었다. 검수된 제보들은 예약 과정을 통해 게시된다.
Q3. 관리자로서 어떤 보람을 느끼는가? 또,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
관리자. 재미있는 제보에 대해 즐거운 반응을 보이는 댓글들이 보일 때 지쳐가는 학업과 생활에 활력이 되는 것 같아 가장 기쁘다. 반면 군기문화와 같은 민감한 주제에 대한 제보가 있을 때 염려되어 댓글들을 수시로 확인한다. 장난스러운 댓글로 인해 제보자 혹은 다른 사람들이 상처를 받을까봐 최대한 신경을 쓰고 있지만 표현의 자유를 어디까지 허용해야 하는지 항상 고민이 된다.
솔로몬. 의대생들을 위로하고 공감과 소통의 장을 마련하고 있다는 점, 같이 고민한다는 점에 대해 뿌듯함을 느낀다. 본과 4학년임에도 불구하고 편입, 군대, 외국에서 의사하기, 정치 등 경험이 없어 답변이 힘든 경우에 안타까움을 느낀다.
레날. 학교생활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의대 숲을 보고 있다는 걸 느낄 때 많은 사람들이 보는 만큼 더 열심히 일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된다. 가장 큰 어려움은 필터링 문제다. 대숲지기들끼리 토론을 해도 결론을 내기가 정말 힘든 경우가 많아 정답이 없는 어려운 문제인 것 같다. 또한 제보 글을 올릴 때 제보번호를 잘못 단다거나 게시 시각을 착각하는 등의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긴장한다.
오인트. 비록 익명이지만 제보가 좋은 반응을 얻을 때 보람을 느낀다. 제보 글에 알맞은 댓글을 작성하는 것이 어렵다.
Q4. 현재까지 2000개가 넘는 차트가 이어지고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제보가 있다면 무엇인가?
관리자. 206번 차트. 2016년 12월 8일에 올라온 청춘에 관한 글이다. 공부도 물론 중요하지만,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는 20대를 더 찬란하게 보내겠다고 다짐해 보았다.
레날. ‘노력한 만큼 등수가 나오지 않아서 속상하고 동기들한테 열등감을 느낀다.’는 내용의 제보에 공감이 많이 되었다. 사소한 고민일 수 있겠지만 ‘나 혼자만 이렇게 느끼는 게 아니구나.’ 라고 생각하며 큰 위로를 받았다.
오인트. 의사선생님께서 의대생들이 가져야 할 여러 자세들을 조언해주신 제보가 기억에 남는다. 개인적으로 많은 공감이 되었다.
Q5. 최근 장난스러운 댓글 등을 방지하기 위한 ‘진지’ 해시태그가 만들어져 진지한 고민상담을 원하는 제보자들의 요구를 충족할 수 있게 되었다. 앞으로 새롭게 만들어질 카테고리가 있는가?
관리자. 사실 이번 ‘진지’ 카테고리는 과거 ‘실습’ 카테고리가 만들어졌을 때와 마찬가지로 익명의 의대생의 건의로 만들어졌고, 대숲지기들의 만장일치로 시행하게 되었다. 앞으로 운영 중 새로운 카테고리의 필요성이 느껴질 때, 새롭게 만들어 질 것 같다.
Q6. 대숲지기들이 꿈꾸는 의학과, 의예과 대나무숲은?
관리자. 가끔은 조언을 해주는 선배 같은, 가끔은 편하게 얘기할 수 있는 친구 같은, 가끔은 웃음을 짓게 하는 귀여운 후배 같은 느낌을 주는, 그런 ‘문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솔로몬. 단순한 대나무 숲의 기능을 넘어, 의대생들이 느끼고 있는 어려움(군기, 학교, 교수님, 의료계 이슈 등)의 공론화의 시작점이 되어 의과대학 및 의료계가 발전할 수 있는 장이 되었으면 한다.
레날. 다른 학교의 의대생들과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전국 의대생들의 “연결고리”가 되길 바란다.
오인트. 좋아요 2만 개가 넘는 의료계의 대표 커뮤니티가 되기를 기원한다.
오윤서 기자/순천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