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이 끝나도 공허한 기분은 왜일까?

빅터 프랭클의 삶과 로고테라피, 그리고 그가 사회에 던지는 메세지

 

오늘날, 정신 건강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솟구치는 것 같다. 하지만 삶의 의미에 대한 탐구는 고대 철학에서도 중요한 주제였다. 철학, 과학, 예술과 같은 다양한 표현 및 탐구 방법을 통해 우리는 왜 살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찾고자 한다. 빅터 프랭클이라는 정신과 의사에 대해 들어보았는가? 프로이트, 아들러에 비해 생소할 수 있지만, 그 또한 20세기, 21세기 현대인들에게 묵직한 메시지를 전한 사람이다.

 

빅터 프랭클의 삶

빅터 프랭클은 로고테라피를 창안한 오스트리아 빈 출신 정신의학과 의사다. 그는 정신과학 의학자로서, 환자 개개인을 넘어 ‘의미 상실’로 고통을 겪는 사회 전체에 묵직한 메시지를 전달하였다. 프랭클 박사의 삶과 로고테라피를 통해 현재 우리가 마주한 삶을 바라보는 기회를 가지고자 한다.

 

빅터 프랭클은 1905년 3월 26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 때 정신의학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16살에는 프로이트에게 편지를 쓰기도 했다. 그에게 보낸 짧은 글은 1924년에 논문으로 학회지에 실리기도 하였다. 이어 빅터 프랭클은 오스트리아 빈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신경학과 정신의학 전문의를 딴다. 처음으로 한 일은 자살을 시도한 여성들을 치료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제 2차 세계대전 중 1938년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합병하면서 프랭클은 시련을 겪는다. 당시 나치는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들을 살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고 판단하고, 안락사 시켰다.정신과 의사들은 안락사 대상자를 선별하라는 요구를 받았다. 프랭클 박사는 환자들을 안락사로부터 지켜내기 위하여 다른 처방을 내리는 등 갖가지 방법을 모색하였다. 1942년, 빅터 프랭클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끌려간다. 그는 독일이 패한 1945년까지 3년 동안 총 네 군대의 수용소에서 생존하였다. 그러나 부모와 아내는 모두 수용소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빅터 프랭클은 수용소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삶의 의미를 찾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할 수 있는 이론을 창안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로고테라피’다. 『삶의 의미를 찾아서』는 그가 로고테라피를 창안할 수 있게 해준 수용에서의 경험을 기록한 책이다. 그는 서문에서 이 책을 통해 주관적인 경험 속에서 객관적인 이론을 찾아내고자 한다고 밝혔다.

 

그는 32권의 책을 쓰고, 빈에서 신경전신의학자 교수로 여생을 이어가다 프로이트와 아들러에 이어 세 번째 빈 정신요법 학교(The third school of Viennese psychotherapy)를 세웠다. 이후 1997년 세상을 떠났다.

 

로고테라피란 무엇인가?

로고(logos)는 그리스어로 ‘의미’라는 뜻이다. 프랭클은 삶의 원동력을 의미를 향한 추구라고 보았다. 의미를 찾는 것은 본능적 욕구가 채워진 이후에 추구할 수 있는 부차적인 욕구가 아닌, 가장 원초적인 욕구, 즉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이다. 로고테라피는 환자가 자신만의 ‘의미’를 찾도록 도와주는 심리치료요법이다.

 

『의미를 향한 소리없는 절규』란 책에서는 삶의 의미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인류학에서 근본적인 사실은 인간 존재란 자신이 아니라 어떤 사람, 어떤 대상을 항상 지목하고 지향한다는 것이다. (중략) 이런 인간 실존을 위한 자아 초월적인 삶을 살았을 경우에만 진정한 인간인 것이고, 진정한 자신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빅터 프랭클은 삶의 의미를 정해주는 사람이 아니다. 삶의 의미는 개인의 고유한 것이며, 로고 테라피스트는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이라고 했다.

 

빅터 프랭클은 자칭 ‘영혼의 치유를 업으로 삼은 사람’으로서 수용소 이전에도, 수용소 내에서도, 수용소 이후에도 의미를 찾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수용소 내에서의 경험을 통해 객관적인 이론을 추출하고자 했고 과연 로고테라피의 통찰력은 현대 사회에도 적용이 된다.

 

현대 사회의 실존적 공허와 로고테라피

1979년 CBC 인터뷰에서 프랭클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수용소 수감자들은 모든 욕구(음식, 수면 등)를 박탈당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수용소에서의 자살률은 매우 낮았다. 반면, 스트레스도 없고 부족한 것이 없는 빈의 14-15세 청소년들이 던진 가장 많이 제기한 주제는 ‘자살’에 대한 것이라고 한다.” 이는 실존적 공허라는 시대적 과제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실존적 공허란 무엇인가?

현대 사회는 인간에게 필요한 욕구들을 충분하다 못해 넘치도록 채워주고 있다. 플레이팅이 훌륭하고 맛도 좋은 음식들, 예쁘게 스스로를 꾸밀 수 있는 장신구, 편안한 집을 제공하는 건축 기술, 언제 어디서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채팅 앱 들은 우리의 욕구들을 만족시켜준다. 그러나, 그 수많은 충족들 중에 채워지지 못한 것이 바로 ‘의미’다. 그렇기에 아무리 풍족하더라도 우리는 살아야 할 이유를 모른 채 공허함에 빠진다.

 

실존적 공허라는 말은 얼핏 거창해 보이지만, 다음과 같은 설명으로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의대생들은 거의 매주 시험이 끝나기를 기도한다. 유독 시험이 다가올수록 재밌는 TV프로그램도 많고, 책이 읽고 싶어진다. 시험만 끝나면 세상이 행복할 것 같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막상 시험이 끝나면 하고 싶었던 것들이 생각나지 않고 침대 속에서 휴대폰을 바라본 채 새벽까지 누워 축 쳐지고 한다. 때론 우울해지기도 한다.

 

의과대학 생활 6년만 버티면 좀 나아질까? 스스로가 추구하고자 하는 의미가 없다면 졸업은 그저 모양만 다른 또 하나의 시험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의대생들을 지탱할 수 있는 힘은 무엇일까? 꼭 의료에 한정될 필요는 없다. 무기력해지고 포기하고 싶은 순간마다 용기를 내어 의미를 찾아보자. 프랭클 박사의 말처럼 의미는 변할지라도 사라지지 않는다

 

오징어 게임 인물들이 게임에 참여한 이유

실존적 공허는 최근 유행한 ‘오징어 게임’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으니, 혹여나 아직 오징어 게임을 시청하지 않은 독자라면 주의하길 바란다. 오징어 게임의 첫 번째 게임 이후, 참가자들은 과반수 투표를 통해 게임을 중단하였다. 그러나, 결국 14명을 제외하고 생존자 201명 중 187명이 복귀한다. 그들은 왜 복귀하였는가? 그들에게 현실은 벗어날 수 없는 지옥이었지만, 오징어 게임에서는 희망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성기훈, 조상우, 강새벽, 장덕수 모두 게임의 상금을 통해 자신이 직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두 번째, 성기훈은 게임을 우승하고 현실의 모든 문제를 해결했지만, 돈을 쓰지 않고 노숙자처럼 생활했다. 통장에 456억이 있는데도 그는 왜 노숙자처럼 산 것인가? ‘사랑하는 사람과의 재회’만을 바라보고 생존했던 유대인 수용소 생존자들이 석방 후 느꼈을 끝없는 절망처럼, 성기훈도 게임에서 우승하고 돌아와 어머니의 시신을 마주했다. 그는 더 이상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없었다.

 

그런데, 오일남과 독대 이후, 기훈은 머리색을 바꾸고 멀끔한 옷을 입고서 상금을 성우 엄마와 강새벽의 동생에게 주고 떠나려고 했다. 오징어 게임 관계자와 전화를 하고, 딸과 재회하기 위한 비행기로부터 발걸음을 되돌리면서 드라마는 막을 내린다. 오일남과의 독대 이후 성기훈의 내면엔 무슨 변화가 일어났던 것일까?

 

성기훈은 오일남과의 독대 이후 게임을 진행한 진짜 이유를 찾아냈다. 그리고 자신들은 오직 ‘재미’를 위한 ‘말’이었음을 알게 된다. 성기훈이 새벽이 동생과 상우 어머니에게 상금을 준 것은 자신의 삶의 이유를 게임에서 죽은 참가자들에게서 찾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잔인한 짓을 저지른 이유를 알아내고 말겠다는 다짐을 한다. 그것이 그 순간 성기훈이 찾은 삶의 의미가 아닐까? 오징어 게임 기획자들의 잘못을 밝히고, 벌을 주고, 참가자들의 희생을 기리는 것 말이다.

 

셋째, 오일남의 게임 참여 이유를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그가 재미로 게임에 참여했다는 것은 깊이 생각해볼 만한 문제다. 오일남이 추구한 삶의 의미는 ‘재미’였다. 부족한 것 하나 없던 오일남에게 삶이 너무 지루했기 때문이다. 재미를 추구하기 위해 오징어 게임을 기획했으나 곧 시들해졌다. 그러자 오일남은 직접 게임에 참여했다. 본 기자는, 풍요 속에서 무기력과 지루함을 느끼는 현대인의 단상을 가장 잔인하게 반영한 캐릭터가 오일남이 아닐까 생각한다.

 

지금까지 빅터 프랭클의 삶과 로고테라피를 간략히 알아보았다. 그리고 그것이 현재 우리 일상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도 살펴보았다. 관심이 있는 독자들은 빅터 프랭클의 저서를 비롯하여 Viktor Frankl Institute of Logotherapy 사이트를 통해 그의 사상과 로고테라피에 대해 더 깊이 알아갈 수 있을 것이다.

 

김현 기자/연세원주

<lisa051223@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