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살인사건으로 본 우리나라 검시제도의 문제점

이태원 살인사건은 1997년 4월 3일 밤 10시경, 피해자 조중필 씨가 이태원 소재 한 패스트푸드점 화장실에서 이유 없이 흉기에 찔려 살해당한 사건이다. 용의자로는 한국계 미국인 아서 존 패터슨(이하 패터슨)과 에드워드 건 리(이하 에드워드 리)가 지목되었다. 당시 사건을 조사한 김락권 형사와 미군범죄수사대는 패터슨의 손에 미국 갱단의 마크가 있고 살해 방법이 그 갱단의 수법과 비슷하며, 패터슨의 몸에 피가 뒤덮여 있다는 점을 근거로 패터슨을 용의자로 지목하였다. 하지만 수사를 담당한 박재오 검사는 법의학적인 판단(부검 결과)과 친구 C의 증언을 근거로 에드워드 리를 용의자로 지목하고 그를 살인죄로 기소하였다. 재판 결과 에드워드 리는 무죄판결을 받았고, 그제서야 검찰은 패터슨을 진범으로 판단하고 수사를 재개했다. 하지만 검찰이 패터슨에 대한 출국금지 연장을 미룬 사이에 그가 미국으로 도주하여 사건은 미제로 남게 된다. 2009년이 되어서야 우리나라는 미국에 패터슨에 대한 범죄인 인도 청구를 하였고, 결국 사건 발생 20년 후인 2017년 1월 24일, 패터슨의 살인죄에 대한 20년 형이 확정되며 사건은 종결된다.

 

이 사건이 20년간 미제사건으로 남게 된 결정적 실수는 무엇이었을까. ‘법의학적인 판단’을 근거로 에드워드 리를 범인으로 지목한 검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패터슨이 범인으로 의심되는 여러 정황에도 불구하고 에드워드 리를 기소하게 만든 법의학적 판단은 무엇일까. 다음은 당시 법의학적 소견을 냈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법의학교실 이윤성 교수의 2013년 경향신문 인터뷰내용이다.

 

“제가 현장에 갔을 때 햄버거집은 정상 운영되고 있었고 화장실은 깨끗하게 청소돼 있더군요. 혈흔이라든가 흔적은 전혀 남아있지 않았고 사진만 두 장 본 게 전부였죠. 부검 때는 화장실에 (용의자가) 두 사람 있었는지조차 몰랐어요, (이하 중략) 또 피해자의 목에 찔린 상처의 방향을 보니까 수평이었어요, 당시 검사와 참 친한 사이였는데, 그래서 참고가 되라고 얘길 해준 거였는데, 나 때문이었으면 미안하지만…”

 

이윤성 교수는 피해자 목의 자창을 봤을 때 176cm의 피해자 조중필보다 가해자의 키가 커야 할 것이라는 추정을 검사에게 전했는데, 검사는 그 말을 근거로 왜소한 패터슨 대신 건장한 체격의 에드워드 리를 범인으로 지목하였다.

 

이 인터뷰에서 우리는 우리나라 검시제도의 허점 2가지를 발견할 수 있다. 우선 부검의가 부검 당시 화장실에 용의자가 두 사람 있었는지조차 몰랐을 만큼 사건현장에 무지한 채로 부검을 해야 했다는 점이다. 부검에는 사건 현장의 정황이 매우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수사와 부검이 별개로 진행되고 부검의가 현장에 직접 나가는 경우도 드물다. 수사관계자의 말만 듣고 부검을 하기 때문에 수사 관계자가 불충분한 정보를 제공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며, 현장 상황이나 사망력에 대한 정보 없이는 부검을 하고도 수사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두 번째로, 우리나라는 사법부검우선인 검시 제도를 채택하고 있어 검사가 검시의 책임권한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검시에 있어서 비전문가인 검사는 목에 찔린 상처의 방향을 토대로 한 부검의의 단순 추론만을 가지고 수사 방향을 완전히 바꾸어버린 것으로 보인다. 반대로, 부검의는 가능성을 시사하는 의견을 주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즉 검찰은 ‘부검 소견이 뒷받침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부검의는 ‘가능성을 말해준 것이다. 나는 수사가 어떻게 되어 가는지도 모르는데 가능성만 가지고 내가 왜 책임을 지느냐’라는 입장 차이를 보이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검시제도는 책임 소재를 불분명하게 하여 관여자 간의 책임 전가를 부추기고 있다.

 

이태원 살인사건을 20년 미제사건으로 만든 우리나라 검시제도의 치명적인 문제점을 더 자세히 살펴보자. 우리나라는 대부분의 경우 의학적 제반 지식이 부족한 검사가 검시의 권한을 가지는 것에서부터 문제가 시작된다. 검사가 부검 여부를 결정하고, 의사는 현장에 나갈 권한이나 책임이 없다. 검사의 필요에 따라 의사가 부검만 하기 때문에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지고 사건 현장에 대한 부족한 정보를 바탕으로 한 부검 결과의 정확성에도 의문이 생긴다. 또한 우리나라의 검시제도는 검사가 검시의 책임을 지고 있는 까닭에 검시의 목적이 사회질서 유지 및 사법작용의 정확성에만 편중되어 있어 사망원인 통계나 질병예방 목적의 사회적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한다. 전염병의 역학 조사, 직업병의 검토, 자연재해 시 사망인의 식별 등 범죄와 무관하게 검시가 필요한 분야에서는 그 책임자가 없고, 매우 제한적으로 검시 제도가 운영되고 있다.

 

이태원 살인사건에 대한 언론 보도는 검사의 실책을 비판하는 쪽으로 흘렀다. 물론 그 당시 다른 검사가 사건을 담당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근본적으로 검사의 실책이 발생하게 된 제도적 문제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이를 개인의 문제로 치부해버린다면 앞으로도 불미스러운 일의 재발을 막을 수 없다.

 

검시 제도에 있어서 모범적이라고 생각되는 미국의 경우, 변사 사건이 발생하면 경찰이 법의관 사무실에 신고한다. 접수는 조사관이 담당하여 사건의 내용을 검토하고 관할 여부를 판단한다. 법의관 관할이 아닌 경우 진료를 담당하였던 의사가 사망진단서를 작성하고, 관할 대상인 경우에는 조사관은 검시조사를 위하여 변사 현장에 즉시 출동한다. 그리고 경위 조사와 시체 검안 등 법의학적 조사를 시행한다. 다만 사건 접수 시 타살이 강력히 의심될 때는 24시간 대기 중인 법의관이 현장의 검시를 지휘한다. 조사관이 검시조사보고서를 작성하면, 이를 토대로 법의관들이 모두 참여하여 다시 검안을 시행하며, 검안으로 끝낼지 부검을 시행할 것인지 결정한다. 부검이 결정될 경우 즉시 시행하고 부검을 전후하여 필요에 따라 법치의학자, 법의인류학자의 자문을 받는다.

 

미국은 전담검시제를 채택하여, 검시를 담당하는 전문 인력인 법의관이 총책임자로서 사건을 진두지휘한다. 전문가와 책임자가 일치하기 때문에 검시의 정확도가 높다. 또한 타살이 의심되는 경우 바로 현장 조사와 부검이 진행되기 때문에 사건현장의 훼손이나 증거의 유실, 시체의 부패로 인한 간섭현상이 훨씬 적다는 장점이 있다. 만약 이태원 살인사건이 미국에서 발생했다면 어땠을까. 사건 발생은 막을 수 없었을지라도, 사건 발생 후 남겨진 유가족들이 20년 간 고통받는 일은 없었을 테다. 법의학은 인권 존중의 의학이다. 피해자와 그 유가족들의 인권보호가 법의학의 존재 이유다. 우리나라의 검시제도는 검시의 주체가 법의관이 될 수 있도록 개편이 필요하다. 타 국가들의 우수 사례를 바탕으로 한, 우리나라 실정에 맞는 제도 변화가 강력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한민형 기자/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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