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한국저작권위원회, 유주영, 사색]
“졸업은 빠를수록 좋다” 의대생이라면 누구나 들어본 말이다. 모 교수님은 의학 지식이 2배가 되는 주기가 1.7년으로 줄었다면서, 빠르게 졸업하면 할수록 편안하고 유리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유급이나 재시험의 불안이 다가오는 무렵에는 반쯤은 농담을, 반은 진심을 담은 채 어디에서나 들려오는 말이기도 하다. 그것이 기실 틀린 말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단일 목표를 향해 뒤를 돌아보지 않고 가장 빠르게 달려가는 것은, 그러면서 옆을 돌아볼 틈도 없는 하루하루의 일과를 해낸다는 것은 멈추어 볼 여유가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멈춤 없이 앞으로만 나아가는 삶의 시간은 영속적이라기보다 파편화된다.
재독 철학자 한병철의 저서인 [시간의 향기]에서 그는 이렇게 저술한다. 현대 사회에는 영속적인 것이 없이 모든 것이 너무 빠르게 변화한다. 아무것도 오래 남아있을 것이라고 기대할 수 없는 세상에서 영속적인 것은 오직 자신의 자아, 하나뿐이다. 그렇게 사람의 인생은 아주 작게 국한되고, 사람의 시간은 작게 조각난 파편으로 원자화되어 멈춤도, 멈춤 속에서의 사색도 남아있지 못한다고. 스스로에 대해, 세상에 대해 사색하는 것만이 시간에 향기를 불어넣어 준다고.
의대생들은 과중해지는 공부를 감당하다가, 가끔 생기는 쉼의 시간에는 시끌벅적하게 논다, 마치 노는 것을 한꺼번에 처리해서 미련을 남기지 않으려는 듯이. 졸업 후, 전문의가 되고 난 후, 은퇴 후의 삶을 기대하면서 현재를 갈아 넣다시피 버티는 것은 미래에 대한 향수일 뿐이다. 현재를 제대로 살지 않는데 삶을 제대로 살아간다고 말할 수 있을까? 숨 가쁘게 현재를 달리고 나면 분명히 손에 쥘 수 있는 것은 있겠지만 지나간 과거가 되어버린 시간들을 다시 주워 담을 수 없기도 하다.
현재를 온전히 휴식과 멈춤, 사색을 위해 흘려보내라는 것이 아니다. 그저 잠시만 멈추어 보는 것을 권해보고 싶다. 미래의 행복과 안정을 위해 달리고 있다면, 지금 당장의 행복을 놓치는 것 또한 아까워해 보자. 여유가 생겼을 때는 외부적인 흥미를 찾기보다는 내부를 파고들어 사소하고 거대한 질문들을 던져보자. 그런 생각과 감정들이 시간을 향기롭게 물들일 때까지.
김효찬/전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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