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으로 예술 바라보기
루크 필데스(Sir Luke Fildes, 1843-1927)의 그림인 ‘의사’ (The Doctor, 1887, The Tate Britain, London)는 의사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는 그림이다. 이 그림에 드러나 있는 헌신적이고 이상적인 의사의 모습은 오늘날까지도 우리에게 좋은 의사란 어떤 의사인지에 대해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
루크 필데스는 영국 빅토리안 시대의 사회 사실주의 (Social Realism: 19세기에 일어난 예술 운동으로서, 사실에 근거하여 주로 노동자와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작품을 통해 보여주고자 하였다.) 화가로서 잘 알려진 화가이다. 그의 초기 작품 활동은 당시 다른 화가들과 마찬가지로 가난한 이들의 삶을 주로 주제로 삼았다. 그림의 주제는 가난한 이들의 삶이었지만 주로 부유한 의뢰인의 부탁으로 그림을 그려주고 소득을 얻었다. ‘의사’는 기업가였던 헨리 테이트(Sir Henry Tate)의 부탁을 받고 그려진 그림으로 후에 런던의 테이트 미술관(Tate Gallery)에 전시되었다.
이 그림이 그려진 배경에는 다양한 추측이 존재한다. 필데스의 아들인 필립은 그림이 그려지기 이전인 1877년도에 폐렴으로 사망하였는데 이 때 왕진을 왔던 머레이(Dr Murray)가 죽어가는 아들을 관심과 애정으로 돌보는 모습을 보면서 필데스가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또 다른 추측은 빅토리아 여왕이 그녀의 주치의였던 제임스 클라크(Sir James Clark)를 기리기 위해서였다는 것이다.
필데스는 ‘의사’를 런던에 있는 그의 화방에서 그렸으며 그는 배경이 된 오두막집의 내부를 정교하게 구성하였다. 그림의 주인공인 의사 또한 전문 모델이었는데 필데스 자신의 모습이 다소 투영되었다고도 한다. 이 그림은 사실에 근거하였지만 화가가 생각하는 이상향과 픽션을 적절하게 가미한 그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림을 전반적으로 살펴보면 필데스가 살던 빅토리아 시대 당시 의사가 왕진을 와서 어린 아이인 환자를 진찰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집안의 풍경은 환자의 사회적 지위를 간접적으로 알려주고 있는데 침대는 의자 두 개를 임시방편으로 붙여서 만든 것이며 집안은 다소 지저분하고 누추해 보인다. 그림의 초점은 환자를 응시하고 있는 의사에 맞춰져 있으며 그 뒤에는 환자의 아버지가 넋이 나간 표정으로 망연자실한 아내의 어깨에 손을 얹고 위로하고 있다.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의사가 환자를 간호할 때 사용하였던 용품들이 보인다. 그림 우측에 막자와 막자 사발, 그리고 컵과 스푼이 있는데 아마 물약이나 찜질제를 만들 때 사용하였을 것이다. 한편 청진기나 체온계와 같은 기구들은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볼 때 그 당시까지도 생의학(bio-medicine)에 어느 정도는 의존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당시에도 청진기와 같은 기구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청진기를 사용하기도 하였는데 어떤 환자들은 의사가 기구를 사용하는 것만을 보고도 그를 매우 신뢰할만한 의사로 여겼다고 한다.
그림을 감상하다 보면 환자의 병이 나을지 말지에 대해서도 당연하게 의문을 가지게 될 것이다. 이 또한 상반된 해석이 존재한다. 그림을 통해서도 볼 수 있듯이 필데스는 빛을 잘 사용하는 화가였기 때문에 환자의 얼굴에 쏟아지는 밝은 빛이 환자의 병이 나을 것이라는 낙관적인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한편 환자의 병이 세균에 의한 감염 질환이었다면 필데스가 그림을 그렸던 당시였던 1880년도에는 아직 항생제가 발견되기 전이었기 때문에(최초의 항생제인 페니실린은 1928년 알렉산더 플레밍에 의해 발견되었다.) 의사가 환자를 낫게 해줄 별다른 방안이 없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을 고려해 보았을 때 환자는 원인 모를 감염에 의해 곧 죽을 운명이고 의사는 단지 환자를 지켜보고 있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어떤 이는 이 그림을 보고 의사가 환자의 부모만큼이나 무기력하다고 표현하기도 하였다.
필데스는 사실주의 화가였음에도 불구하고 ‘의사’를 마치 인류애의 화신인 것처럼 이상적으로 그려내었다. 그리고 그의 ‘의사’는 당시뿐만 아니라 지금까지도 대중적으로 널리 사랑받아오고 있다. 아마 사람들이 원하는 보편적인 의사, 의학의 모습을 이 그림이 보여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날은 19세기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의학 기술이 발달되었고 이전에는 의학적으로 치료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질병을 점점 정복해나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인간의 영역이라고 여겨졌던 의술의 영역을 기계가 넘보는 시대가 되었다. 인간은 완벽함과 정밀함에 있어서는 기계에게 어느 정도 자리를 내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유하는 사람으로서 의사가 필요한 것은 의사 또한 환자와 마찬가지로 불완전한 인간이므로 공감하고 이해해줄 수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정창희 기자/이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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