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들의 ‘인생 책’을 소개합니다
이 겨울, 독서의 바람이 분다
오윤서 기자/순천향
<모모>, 미하엘 엔데
“시간은 삶이며, 삶은 우리 마음 속에 깃들여 있는 것”. 책에 쓰인 작가의 말이다. 이 한 문장을 이해하는데 장장 365페이지를 모두 읽어야만 했다. 그러나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 다다를 때까지 손에서 책을 놓을 수가 없었다.
열세 살, 처음 만난 <모모>는 이십대가 된 지금도 한 문장 한 문장 곱씹으며 읽을 만큼 내게 큰 울림을 준 책이다. 이 소설은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즐기고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에 들이닥쳐 시간을 지배하는 회색신사들과, 이들에 맞서는 소녀 모모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그러나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모모와 함께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우리는 ‘시간’에 대해 고민해보게 된다.
어떤 시각에서 다른 시각까지, 시간이 없다, 시간이 빠르다. 사람들 사이에서 ‘시간’은 보통 이렇게 단순한 의미로 그친다. 그러나 이 책은 한번도 눈에 보인 적 없지만 언제나 우리 곁에 있는 시간에 대해 깊이 있게, 모험을 같이 떠나는 것처럼 즐겁게 다룬다.
행복, 즐거움, 만족, 우울함, 슬픔, 여유로움, 바쁨, 게으름, 명상의 시간. 모든 사람들은 각자 자신들의 ‘시간’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렇지만 이 시간들은 진짜 주인의 시간일 때만 살아있으며, 이를 지키는 것은 주인들의 몫이다.
얼핏 줄거리만 보면 ‘제한된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열심히 살아가자’라는 진부한 주제를 담은, 교훈과 조언만 늘어놓는 자기 계발서로 오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작가는 우리들의 시간을 응원하고, 오히려 시간을 아낄수록 사람들이 가진 것이 줄어들었다며 삶에 대해 전혀 다른 방향을 제시한다. 바로, 잠시 멈춰 자신만이 가진 ‘시간의 꽃’에 온전히 집중해보자는 것이다.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삶은 열심히 무언가를 해내는 것이라고 우리는 말해왔고, 여전히 세상은 말한다. 그 세상 속 바쁜 일상에 치여 우리는 정작 자신의 기분과 시간은 잊어버리거나 잃어버리고 만다. 여전히 바쁘게 돌아가는 시계 바늘 위 잠시 걸터앉아 모모를 만나길 소망해본다.
김경훈 기자/울산
<숨결이 바람 될 때>, 폴 칼라니티
‘죽음’은 의사에게 낯설지 않다. 밤낮으로 수많은 죽음을 마주하고 남겨진 가족들에게 그 죽음을 전하는 것이 의사의 일이기 때문이다. 항상 자신의 생명보다 다른 사람들의 생명을 지켜야 하는 의사에게는 모든 순간이 삶과 죽음 사이에서 벌이는 사투이다. 이것이 의사와 의사가 될 우리들이 삶과 죽음을 마주하는 인간의 태도에 대해 그만큼 다른 사람들보다 더 치열하게 관찰하고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그래서 나는, 죽음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관찰하는 의사들이 쓴 책들은 그 자체만으로 우리 의대생들이 꼭 읽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숨결이 바람 될 때>는 단순히 의사가 쓴 책이라는 점에 그치지 않는다. 이 책의 작가는 죽음의 관찰자가 아니라 죽음의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숨결이 바람 될 때>의 작가 폴 칼라니티는 촉망받는 30대의 젊은 신경외과 레지던트였다. 그러나 그는 수 년 간 바쳐온 노력이 보상받기 직전에 청천벽력으로 말기 암 진단을 받게 된다. 커져가는 암이 선명하게 그려진 자신의 X-ray 사진을 손에 들고 말기 암 환자의 생존율 곡선을 떠올리며 의사인 그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폴 칼라니티는 죽음 앞에서 부러지지 않고 생명이 사그라지기 전까지 의사로서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기로 마음먹는다. 몸 속의 암이 목숨을 갉아 먹어 죽음의 문턱에 다다르면서도 자신의 삶과 감정을 아름다운 문장으로 풀어냈다. 그렇게 죽어가는 의사가 마지막 남은 생명을 짜내어 남긴 흔적이 우리 앞에 이 책 한 권으로 놓이게 된 것이다. 감동과 슬픔, 동시에 너무나 아름다운 이 책을 모든 의학도들에게 권하고 싶다. 죽음이 그 무엇보다도 우리에게 삶에 대해 가장 많이 가르쳐준다는 것을 이 책은 증명하고 있다.
남현서 기자/연세원주
<다시 태어난다 해도 이 길을>, 고시연구사
올해 6월 마지막 사법시험이 치러지면서, 인생역전과 성공신화의 상징인 고시의 맏형 격인 사법시험은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었다. <다시 태어난다 해도 이 길을>은 이러한 사법시험 및 고등고시의 합격수기를 모아 놓은 책이다. 사법시험은 이제 과거로 흘러가지만, 이를 경험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그대로 함께 흘려 보낼 수만은 없는, 가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사법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아니기에 이는 다소 생소한 주제일 수 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우리는 오히려 이들에 대해 묘한 동질감을 느끼게 된다. 이들에게 사법고시의 의미가 그러하듯이 우리들의 마음 속에도 각자 간절히 갈망하는 것이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사법시험에 관한 내용과 더불어 검정고시, 누군가의 상실, 건강문제 등 그들이 살아온 인생의 굴곡 또한 담겨 있다. 그 속에서도 인생의 많은 시간을 한 가지에 투자하여 여러 번의 실패를 겪고 나서도 마침내 성공한 사람들의 절실함과 끈기는, 우리도 각자 마음 속의 무언가를 따라 나아가면 결국에는 목표하는 바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준다.
다른 사람의 인생을 들여다볼 때의 핵심은 이것이 나 자신에 대한 성찰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특히 공부를 하거나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권태를 느끼는 순간이 찾아온다면, 이 책이 다시 시작하게 하는 긍정적인 자극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읽어 보기를 권한다. 책을 다 읽을 시간이 없는 사람에게는 <The Road Not Taken>, <오직 하나의 길>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