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투고] 국경없는 영화제 참여 후기: 세계는 우리의 응급실입니다

[독자투고]

국경없는 영화제 참여 후기

세계는 우리의 응급실입니다

[…그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께 여짜오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니라. 그 이튿날, 그가 주막 주인에게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며 이르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 누가복음 10장 25-37절]

선한 사마리아인. 도움이 필요한 자에게 마땅히 할 일을 한 사람. 그리고 국경없는의사회. ‘세계는 우리의 응급실입니다’를 외치는 이들은 이 세계의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일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그들의 이웃과 함께한 시간들을 영화에 담아 한국을 방문하였다.
누구나 국경없는의사회라는 이름을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전쟁과 자연재해가 휩쓸고 간 곳,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하는 의료 사각지대를 찾아가서 구호활동을 하는 단체. 하지만 이 시대의 우리에게는 전쟁, 자연재해, 의료사각지대란 것이 그저 언론매체 등을 통해서만 체험했기에 그것들이 참 막연하게 다가온다. 그러다보니 ‘그들은 어떤 활동을 하고, 그 활동을 어떻게 하는데?’라는 질문에 정확히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나 또한 그러하였다.(아니 사실은 너무나도 빈번한 언론에서의 테러 소식과 전쟁 소식, 기근소식에 무뎌져서, 그것들이 어떤 것인지를 알고 싶어 하지도 않았는지 모르겠다.) 그렇기에 영화제의 첫 순서였던 영화 ‘Living in Emergency’에서 마주친 네 명의 의사들은 너무나도 반가우면서도 마음 한 켠 저밋저밋한 모습으로 다가왔다. 그들을 보낸 것은 이상이었고, 그곳은 현실이었다. ‘1차 파견을 다녀온 사람 중에서 2차 파견을 지원하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이상을 짓누른 것은 현실이었다.
다른 어떤 것보다도 그들을 누른 것은, 이들이 져야 하는 책임이었을 것이라 생각해보았다. 열악한 환경 속 조그마한 병원 속에서, 그 주변 일대의 유일무이한 의사가 된다는 것. 국경을 없애고 넘어 다닌 대가로 그들은, 갖추어진 의료시스템 속에서 다른 분과 사람들과 책임을 공유하며 함께하던 시절과는 비교할 수 없는 무게를 짊어진다. 오는 사람들을 진단하고 치료 계획을 세워야 하고, 병원 내에 필요한 의약품들이 얼마나 있고, 얼마나 조달되고 있는지를 수시로 확인해야 하고, 말이 잘 통하지 않는 현지 인력들과 함께 체계를 꾸려가야 한다. 이것에 짓눌린 이들은 어느 순간 서로를 탓하고, 자신에 대한 연민에 빠져 공동체를 분열하게 만든다. 분명 이들은 고통 속에 있는 이들에게 도움을 주겠다는 마음으로 자원한 사람들이었다.
영화제에서 보여주고자 한 것은 어떠한 숭고함과 자기희생을 통해 성공적이고 멋들어진 구호활동을 벌이는 활동가의 모습이 아니었다. 상영되어 나오는 것은 그 어떤 것도 가미되지 않아서 아주 투박하고 거칠게 느껴지는 현실이었다. 그렇다고 그 현실이 구호활동가들만의 어떤 특별한 삶의 모습 같지는 않았다. 그 어느 병원에서도 있을 수 있고, 그 어떤 현장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삶의 뻔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이들이 특별한 이유는 바로 다친 누군가를 보고서 상처를 싸매어 나귀에 태우고 쉴 곳으로 데려가 돌보아 주었다는 것이다. 비록 그들이 남들을 돌보다 스스로가 지쳐서 나가떨어졌을지라도, 모두가 옳다고 하는 일을 기꺼이 하기로 정한 그들에게 사람들은 박수를 보내는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에 한 구호활동가의 말이 아직도 귀에 맴돈다. “만일 당신 앞에서 교통사고가 났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마땅히 그 곳에 가서 도움을 주어야 하지 않나요? 세계는 지금 아주 큰 교통사고가 난 곳들이 많이 있어요. 아주 큰 사고지요. 그곳을 돕는 것은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인지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이들을 통해 분명히 해야 할 것이 있다. 세계는 우리의 응급실이다.

김성현 /한림 본과 2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