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행복한 차별 없는 의료

모두가 행복한 차별 없는 의료

트랜스젠더 의료의 다양한 쟁점들을 중심으로

 

소수자 중에서 의료 영역의 이슈들과 가장 맞닿아 있는 집단을 하나 꼽으라면 이는 단연코 트랜스젠더들이다. 이번 기사에서는 트랜스젠더가 보건의료 영역에서 어떻게 해석되고 있는지, 그들을 둘러싼 의료 영역의 주제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톺아보고 소수자들이 의료 현장에서 겪을 수 있는 어려움을 해소할 방안을 모색해 보려고 한다. 해당 기사에서 정책과 관련된 내용들은 주로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발간한 트랜스젠더 혐오차별 실태조사 보고서(2020)를 참조하였다.

국내외 정신의학계에서 정신질환을 분류하는 기준으로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미국정신의학회의 정신장애 진단 및 통계 편람(DSM)은 2015년 전까지 트랜스젠더를 정신질환으로 규정해 왔다. 트랜스젠더의 정체성 그 자체를 정신장애로 규정하면 안 된다는 합의가 정신의학계에서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진 것은 비교적 최근이다. 이러한 합의를 바탕으로 2019년 국제질병분류(ICD)에서 성주체성장애(gender indentity disorder) 항목은 삭제되고 성건강관련 상태의 분류에 성별불일치(gender incongruence) 항목이 신설되었다.

트랜스젠더 관련 의료 이슈 중 가장 뜨거운 쟁점은 트랜지션(gender transition, 사회적 성을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방식으로 바꾸는 과정) 관련 의료보험 적용, 트랜스젠더 정체성의 비병리화 등이다. 서구 선진국들에서는 트랜지션 관련 의료보험 적용을 지지하는 판례들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비교적 최근의 사례로는 트랜스젠더 여성의 체모 제거를 보험대상으로 포함시킬 것을 판결한 독일의 사례(2016)가 있다. 트랜스젠더 정체성의 비병리화도 꾸준히 제기되는 문제이다. 이는 성별정정 요건에서 정신과 진단을 더 이상 요구하지 않는 등 트랜스젠더에 대한 정신병리적 접근을 철폐하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의 경우 트랜스젠더 관련 법령이 전무하고 개별 법원의 판단에 의해 성별정정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때문에 트랜스젠더 관련 법령 미비 문제를 입법 차원에서 해소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의료보험 영역에서도 트랜지션과 관련된 항목들은 한국에서 전혀 보장되지 않고 있다. 의료보험의 이러한 보장성 차이는 서구 국가들과는 확연히 다른 양태를 보이며 2018년에 성전환수술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을 결정한 일본과도 차이를 보인다고 할 수 있겠다.

트랜스젠더는 의료 현장에서 진료를 받을 때에도 차별의 벽에 부딪히는 경우가 많다. 국가인권위원회의 트랜스젠더 설문조사 결과(2021)에 따르면 지난 1년 간 트랜스젠더 정체성으로 차별을 받았다고 응답한 비율은 65%인 것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비율로 미루어 볼 때 한국의 의료 현장에서 트랜스젠더가 겪는 차별의 강도가 극심할 것임은 어렵지 않게 예측해 볼 수 있다. 실제로 트랜스젠더에 대한 다수의 질적 연구 등에서 의료진의 차별적 대우에 노출된 사례는 빈번하게 보고되고 있다. 실제로 한 트랜스젠더는 정신과 진료 과정에서 지속적인 성별 불일치를 호소했지만, 의료진에 의해 동성 부모에 대한 반감으로 인한 일시적 정체성 혼란으로 치부되었다고 보고했다. 한국의 의료진들이 트랜스젠더 의료에 있어 지식과 경험이 부족하다는 점 또한 강하게 제기되고 있는 문제이다. 한국의 의과대학에서는 성소수자 의료에 대한 교육과정이 전무하다시피하고, 트랜스젠더 의료 연구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 때문에 차별 없는 의료의 제공에 힘쓰는 여러 의료진들 또한 현장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앞서 제기되는 이러한 여러 문제점들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먼저 가장 시급한 것은 국내 트랜스젠더의 현황 파악이다. 아직 국내 트랜스젠더에 대한 국가 차원의 공식적인 통계는 없다. 통계에 특정 집단의 존재가 잡히지 않는다는 것은 단순히 그들의 수를 정확히 파악할 수 없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존재를 모르니 정책 입안과 결정의 전 과정에서 그들을 지워버리게 되는 것이다. 정부는 트랜스젠더 통계를 바탕으로 트랜지션 관련 의료보험 적용과 비병리화에 관한 논의를 시작하고, 의료 현장에서는 트랜스젠더 의료에 대한 지속적 연구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의료진 집단 내부에서도 차별 없는 의료의 제공에 대한 일정한 합의와 그것을 위한 상호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의과대학 수준에서도 트랜스젠더 집단이 필요로 하는 의료를 제공할 수 있는 의사 양성에 대한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 현재 활동하고 있는 성소수자의료연구회가 그것의 모범적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 존엄성의 준엄한 대원칙에 따라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자유로워야 한다. 단 한 사람이라도 평등한 자유를 누리지 못한다면 나머지의 사회 구성원들은 그 한 사람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것은 곧 모든 사회 구성원들의 자유를 보장하는 길이기도 하며 사회 전체가 행복하게 유지될 수 있는 밑거름이 된다.

 

<오준서 기자/ 순천향>

jimmyoh12@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