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법 개정, 위기 혹은 기회?

2023년 11월 20일부로 모든 법령 위반으로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간호사, 의사 등의 의료인은 면허가 취소된다. 이는 의료 관련 법령 위반으로 금고 이상의 형을 받았을 때를 의료인 결격사유로 인정했던 지난 법령에 비해 면허취소 기준을 확대했다고 볼 수 있다. 일부 비도덕적인 의료인의 진료로부터 국민의 건강을 보호하겠다는 취지이다. 또한 면허 재교부를 위해서는 일정 환자 권리의 이해, 의료인의 역할과 의료 윤리, 의료 관련 법령 등에 대한 교육을 40시간 이상 받아야 한다.

의술을 행하는 직업에 윤리성을 요구하는 이유는 의료인이 환자의 건강권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결정을 내리는 권한이 있기 때문이다. 이 권한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높은 보상으로 연결된다. 하지만 이 권한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의사-환자 관계에서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자신의 건강을 타인에게 맡기는데 신뢰는 기본 전제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의료인에게 요구되는 윤리성은 의료인의 권한을 존속시키기는 장치의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윤리성을 눈에 보이게 측정할 수 있는 지표가 없기에, 간접적으로 금고 이상의 형을 받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것을 국민들이 의료인에게 요구하는 최소한의 도덕성으로 설정한 것으로 보인다.

현 의료법 개정안을 보면서 미국의 의사협회가 떠올랐다. 미국 의사협회는 국가 차원의 건강보험을 반대하는 근거로 건강보험 적용에 따른 수가체계가 환자를 위한 최선의 진료를 방해한다고 주장했다. 의사 집단 이 사회 구성원의 건강을 보장해야 하는 의무가 있음을 강조하며 건강보험 적용이 의사의 전문직업성을 침해하여 공공보건에 악영향을 끼친다고 주장했다. 20세기 면허권 자율규제를 통해 비전문 의료인을 축출하며 국민들의 신뢰를 얻은 미국의 의사 집단의 이러한 주장은 놀랍게도 미국에서 받아들여지고 있다. 미국의 의사협회는 자신들이 환자의 이해를 대변하는 집단임을 표명하며 정보의 비대칭성을 의사-환자 관계에서 불신의 씨앗이 아닌 신뢰의 밑바탕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들의 자율규제는 의사 집단을 넘어 의과대학에서도 나타나는데, 대표적으로 듀크 의과대학의 학생 강령을 보면 알 수 있다. 표절이나 커닝뿐만 아니라 폭언이나 폭행 등을 비전문적인 행동으로 규정하며 학생 시절부터 미래 의료인으로서 가져야 할 전문직업성을 강조한다. 더 나아가 미국 의사협회는 전문직업성이 부족한 의사들의 면허권을 자체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이러한 집단 내 자율규제의 강화는 곧 국민들의 의사 집단을 향한 신뢰로 이어졌으며, 미국 사회에서 의사 집단은 권위와 영향력을 얻게 되었다.

물론 우리나라 의료의 역사적 배경은 미국과 매우 다르다. 국가 차원에서 발전한 우리나라 의료는 국민건강보험이 일찍이 적용되었고, 대형 병원 중심의 진료가 주다. 또한 일차의료 의사들과 이해관계가 다른 경우가 많기에 의사 집단 내 단합이 어려운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미국의 사례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은 국민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 자율규제를 강화했다는 것이다. 만일 의료법 개정이 되기 전에 의사 집단 내에서 사회적 상황에 기민하게 반응하여 자율규제를 강화했다면 개정된 의료법이 의사 집단을 정부 차원에서 관리하는 도구가 아닌 의사의 전문직업성을 강화함으로써 국민들에게 신뢰를 주는 집단 내 각성으로 비 칠 확률이 높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자율징계권을 의사 집단이 선점하는 것은 의료의 질을 높이는 것뿐만 아니라 의사-환자 관계의 신뢰를 회복함으로써 국민의 건강권 보장이라는 전문직업성의 가치를 제고할 것이다. 책임을 지는 만큼 권리는 부여되고, 신뢰를 얻는 만큼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고 생각한다. 개정된 의료법이 평행선을 달리는 국민과 의사 간의 신뢰의 간극을 조금이라도 메울 수 있기를 희망한다.

 


 

조우영 기자/울산

chowooyoung0513@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