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기술(Blockchain Technology)이 불러올 의료혁명의 시대

의학은 언제나 과학기술과 함께 발전해왔다. 코흐(Koch)와 파스퇴르(Pasteur)의 세균학 정립은 근대 의학의 시작을 알렸다. ‘20세기 환상의 약이라 불리는 항생제가 등장했고 항생제는 그 당시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세웠던 각종 전염병들을 하나하나 퇴치해 나갔다. 1895년 뢴트겐(Roentgen)X선 발견은 골절의 진단 및 각종 수술에 큰 도움을 주었다. 잇따라 이루어진 전산화단층촬영(CT, Computed Tomography), 자기공명영상(MRI, Magnetic Resonance Imaging) 등의 영상기술의 발명은 의학의 발전을 두, 세 단계 앞당겼다. 멘델(Mendel)의 유전법칙 발견, 왓슨(Watson)과 크릭(Crick)DNA 구조 발견으로 유전학은 크게 성장하였고 인간 게놈 프로젝트(Human Genome Project)가 완료되며 의학은 난치병의 정복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렇듯 의학은 언제나 타 분야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한 단계씩 혁신을 이루어왔다. 의학의 발전은 곧 병원 현장에 적용되어 의료의 발전으로 이어졌다.

분야를 막론하고 화두가 되고 있는 인공지능 기술은 이전의 과학기술보다 더욱 더 광범위하고 대담하게 의료를 바꾸어 나가고 있다. IBM의 왓슨(Watson)은 암환자의 복잡한 의료 데이터를 분석하여 의사도 파악하지 못한 의학적 통찰을 이끌어 내기에 이르렀다. 딥러닝(Deep Learning)을 기반으로 한 이미지 분석 역시 영상 의료 분야 깊숙한 곳에 자리 잡았다.

앞으로 소개할 블록체인기술 역시 앞서 언급한 과학기술들처럼 의료 분야에 큰 변화를 일으킬 것이다. 블록체인은 무엇이고 그로 인해 의료는 어떤 모습으로 변화하게 될까.

 

블록체인이란 무엇인가

블록체인은 ‘분산되어 기록되는 원장(元帳, Ledger)’이다. 블록체인 상에서 이루어지는 사용자들 간의 모든 행위들(Transaction, 트랜잭션)이 각 개인이 가지고 있는 원장에 기록된다. 각자가 가지고 있는 블록체인 원장 모두가 원본이며 한번 기록된 과거의 트랜잭션은 변경이 불가하다. 기존의 중앙집중형 네트워크에서는 모든 데이터가 중앙 서버에 기록되어 오직 중앙 기관만이 데이터를 소유하고 있었다면 블록체인이 구현된 분산형 네트워크는 모든 데이터가 담긴 분산화 된 장부를 사용자 각자가 하나씩 가지고 있는 시스템이다.

블록체인에서의 거래는 언제나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이전 단계의 내용을 바탕으로 기록되기 때문에 정보는 임의로 변경이 불가능하다. 블록체인은 컴퓨터 자료구조의 연결 리스트(Linked List)를 기반으로 한다. 정보가 체인처럼 무한히 연결되어 있다 보니 중간 체인을 빼내(해킹)거나 바꿀(변조) 수 없다는 게 정설이다. 당연히 삭제되거나 유실될 가능성도 거의 없다. 또한 모든 거래가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투명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장부상의 정보는 언제나 신뢰도가 높고 추적이 용이하다. 하나의 장부를 해킹한다고 해서 모든 사용자의 데이터를 조작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해킹은 불가능에 가까우며 개인/공개키를 이용하는 공개키 암호방식(Public-key Cryptography)을 사용하기 때문에 데이터가 거래되는 과정에 있어서도 해커가 침입하기 쉽지 않다. 가장 처음으로 블록체인을 눈여겨본 분야는 금융 서비스 분야이다. 2016년,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 WEF)은 제4차 산업혁명을 이끌 핵심기술 중 하나로 블록체인을 선정하였다. 정보의 무결성이 무엇보다 중요한 금융 분야에서 가장 먼저 블록체인 기술을 받아들였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만큼 블록체인 상에 기록된 정보가 변질될 가능성이 매우 적다는 것을 의미한다. 많은 이들에게 익숙한 비트코인이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 대표적인 예시이다.

 

블록체인, 빅데이터를 완성하다

인터넷 기술이 빠른 속도로 성장해왔지만 여러 분야에서 데이터 공유에 관해서는 늘 보수적인 입장을 취해왔다. ‘데이터 공유를 통한 새로운 정보의 창출’이라는 거대한 목표 앞에서 발걸음을 붙잡은 것은 늘 ‘보안’이었다. 특히 의료 데이터의 경우 한 사람의 모든 정보가 담겨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개인 의료 정보가 악용될 경우 작게는 의료 보험 가입에 심각한 제한을 받을 수 있으며 직업을 구하는 데에 있어서 혹은 사회생활을 하는 데에까지 악영향을 받을 수 있다. 블록체인은 정보 보안 측면에 있어 다른 어떤 기술보다 우위를 점함으로써 이러한 우려를 완전히 잠식시켜버렸다.

인공지능 알고리즘과 사물인터넷(IoT) 기술이 발전하려면 빅데이터 기술이 우선적으로 구축되어야 한다. 서울아산병원의 빅데이터센터 건립, 한국마이크로소프트와 서울아산병원의 의료 빅데이터 분석 콘테스트 개최, 보건복지부의 ‘보건의료 빅데이터 플랫폼 시범사업 추진계획(안)’ 발표 등이 이를 방증한다.

의료계에 블록체인이 구축된다는 것은 의료 빅데이터의 완전체의 탄생이라고도 볼 수 있다. 블록체인에는 모든 사용자들의 의료 정보가 담기게 될 것이다. 빅데이터의 활용은 이전까지의 연구 방식을 180도 바꾸어놓을 것이다. 여태까지 공간적·시간적 한계로 인한 데이터 수집의 어려움을 이유로 연구를 진행하고자 할 때는 항상 일부 병원, 일부 기관에 국한된 데이터만을 대상으로 하였다. 하지만 블록체인은 모든 사람들의 정보를 담기 때문에 블록체인을 이용한다면 일부의 데이터가 아닌 데이터 전부를 대상으로 삼아 연구를 진행할 수 있다.

인공지능은 스스로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여 학습을 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일일이 보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데이터들을 빠른 시간에 분석하여 새로운 지식을 깨달아간다. 인공지능의 학습에는 양질의 데이터가 필히 요구된다. 인공지능의 대표주자로 손꼽히는 알파고 역시 16만 개의 바둑 기보를 학습하였고 가천대가 도입한 ‘왓슨 포 온콜로지’ 역시 1500만 개의 전문 의학 자료를 습득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블록체인을 통해 모아진 의료데이터 완전체는 인공지능에게 훌륭한 교과서가 될 것이다. 블록체인의 데이터는 ‘인공지능 의사’에게 있어 환자를 파악하고 앞으로의 문제에 대응할 수 있는 통찰을 이끌어내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블록체인을 통해 완벽하게 구성된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의 만남으로 의학의 발전은 지금껏 겪어본 적 없었던 빠른 속도로 이루어질 가능성이 크다.

또한 블록체인은 사물인터넷(IoT) 기술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 것이다. 현재까지 사물인터넷 기술은 중앙 서버에 집중된 대규모 데이터 센터를 가진 클라우드 컴퓨팅 방식으로 이루어져 왔다. 하지만 중앙 데이터 센터의 규모 확장 및 안정성 보장에는 여러 물리적 한계가 존재한다. 블록체인은 애초에 중앙 센터가 필요치 않기 때문에 이러한 한계를 가뿐히 뛰어 넘어설 수 있다.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하게 되면 각 기기 장치가 블록체인의 노드가 되어 하나의 데이터 센터 역할을 할 수 있게 된다. 더욱 다차원적이고 복잡한 연결이 가능해진다. 사람과 사물, 사물과 사물 간에 끊임없는 데이터의 교류는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이 자동적으로, 그리고 지능적으로 행해지게 할 것이다. 인터넷이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연결하는 ‘연결 사회(Connected Society)’를 불러왔다면 블록체인은 사람-사물, 사물-사물을 연결하는 ‘초연결 사회(Hyperconnected Society)’의 시대를 열 것이다.

의료에서의 사물인터넷이라고 하면 대개 헬스케어 웨어러블 기기를 떠올린다. 웨어러블 기기의 발전과 보급은 블록체인에 저장될 데이터를 수집하는 데에 가장 보편적인 도구가 될 것이다. 일상의 모든 정보가 기기를 통해 네트워크에 전달되어 저장될 것이다. 의사는 구태여 환자의 과거력을 파악하기 위해 오랜 시간에 걸쳐 문진을 할 필요가 없다. 이와 더불어, 환자의 평소 생활 습관을 속속들이 알 수 있게 된다. 당뇨, 고혈압 등 만성 질환 관리의 중요성이 점점 더 부각되는 현대 사회에서 일상생활 교정을 통한 치료에 있어 식습관 등 환자의 평소 모습을 파악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병원을 빠져나온 환자 데이터

현재의 의료시스템 상에서는 의료 데이터가 환자 개인의 정보라 하더라도 전자의무기록(EMR)에 담긴 채 사실상 병원이 소유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블록체인을 통해 탈중앙화된 의료 데이터는 병원이 아닌 환자 개인의 소유가 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의료기관 사이의 정보 공유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의료법에 따라 환자나 보호자의 동의를 받아 다른 의료인에게 진료기록 등을 송부할 수 있긴 하지만 각 의료기관의 상이한 시스템 및 정보 유출의 우려로 인해 그 비율이 전체 의료기관의 1% 대에 머물러 있다. 그러다보니 기존에 다니던 병원이 아닌 타 병원을 방문하게 될 경우 기본 검사부터 다시 받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비용 측면에서도 손실이 클 뿐만 아니라 해당 병원 방문 이전의 데이터가 없다보니 새로이 방문한 의료기관에서는 환자의 상태를 온전하게 파악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블록체인이 구현되면 의료 데이터의 주체가 병원에서 환자로 옮겨 가게 되는데, 그렇게 된다면 환자가 본인의 기존 데이터를 손쉽게 병원에 직접 제출할 수 있게 된다. 의사는 더 이상 마구잡이식 검사를 할 필요 없이 환자가 가져온 정보를 바탕으로 환자를 파악하여 검사 및 치료 계획을 세우면 되고, 환자 역시 중복 검사 비용을 줄이고 불필요한 검사들로 인해 생기는 합병증 등을 예방할 수 있다.

또한 앞서 언급하였듯 의사가 환자를 처음 만나게 되면 어느 정도의 시간을 들여 문진을 하게 되는데 이 시간을 줄일 수 있다. 의사는 초진 시 직접 묻고 답하며 환자의 알레르기 병력, 흡연/음주력, 가족력, 과거 질환/수술력, 약물 복용력 등을 세세하게 파악하여야 한다. 문진 결과를 통해 의사는 환자를 대할 때 신경써야할 부분, 주의해야할 사항 등을 고려하게 된다. 시간이 넉넉하다면 오랜 시간 동안 환자와 대화하며 환자의 정보를 파악할 수 있을 테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환자의 의료정보가 담긴 바코드 하나만으로 문진을 통해 알아내야할 환자의 모든 것을 파악할 수 있게 된다면 빠른 시간 내에 환자에게 적절한 조치를 취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환자가 의식이 없다 하더라도 환자의 정보 파악에는 어려움이 없게 될 것이다.

블록체인은 환자의 데이터를 두 가지 방식으로 분류한다. 환자의 식별이 불가능한 나이, 성별, 질병 등은 공개 데이터로 남겨두어 연구 목적이라면 누구나 사용할 수 있게 한다. 다만 환자 식별이 가능한 정보는 비공개로 전환하여 접근 권한이 부여된 자에 한하여 열람할 수 있도록 한다. 이는 앞서 말했듯 블록체인이 채택한 공개키 암호방식을 통해 가능하게 된다. 환자는 자신이 치료받고자 하는 의료기관에 자신의 개인키를 전달하여 자신의 내밀한 의료 정보를 열람할 수 있게 한다. 환자는 개인키를 통해 자신이 원하는 만큼 정보의 공개 여부 및 범위를 조정하여 치료를 받을 수 있다. 개인키를 공유 받지 못한 기관은 환자를 식별할 수 있는 정보는 접근이 불가하다.

현재 외국에서는 이런 식으로 몇몇 블록체인 플랫폼이 개발되어 조금씩 사용 범위를 확장해나가고 있다. MIT 미디어랩(MIT Media Lab)과 이스라엘 디컨네스 메디컬 센터(Beth Israel Deaconess Medical Center)가 함께 개발한 메드렉(MedRec)의 경우, 데이터를 위와 같이 두 가지 방식으로 분류하였다. 환자의 식별이 가능한 경우 접근 권한이 부여된 의료제공자와 환자만이 자료에 접근 가능하도록 해놓음과 동시에 그렇지 않은 경우 범용 의료데이터로 설정하여 연구개발을 위해 쓰이도록 하였다. 젬 헬스(Gem Health)의 경우 역시 데이터 접근에 별도의 접근 권한이 필요하도록 하였으며 의료데이터가 의료제공자 뿐만 아니라 환자의 입장에서도 정보의 교환이 용이하도록 하였다.

 

블록체인, 의료혁명을 이끌 수 있을까

의사들은 이전보다 좀 더 신중한 태도가 요구될 지도 모른다. 지금도 전자기록의 형태로 의사가 지시한 사항, 처방한 약물, 수술 과정 등이 기록되긴 하지만 블록체인은 이전보다 더욱 더 철저하고 자세하게 모든 사건들을 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데이터의 공개범위도 지금보다 넓어질 것이고 더 많은 이들이 자신의 의료 행위를 지켜볼 수 있게 되기 때문에 본인이 하는 행동에 더욱 더 책임감을 갖고 의술을 펼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비단 의료 뿐 아니라 제약, 보험, 병원 경영 등 의료 시스템을 둘러싸고 있는 제반 분야들 역시 큰 영향을 받을 것이다.

허나 결국 빅데이터만이 현재의 의료서비스와 시스템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들을 해결해 줄 것이다. 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의료 행위들을 단순한 사건으로 치부하여 넘겨버리는 것이 아니라 데이터의 측면에서 바라보고 분석한다면 의료의 진리를 향해 나아가는 데에 큰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될 것이며 의료 시스템은 점점 이상적인 모습을 띠게 될 것이다. 잘 저장된 데이터를 통하여 의사는 진료의 연속성을 확보하여 중복 검사 및 투약 오류를 줄이고 의료사고의 위험을 감소시킬 수 있다. 환자 역시 본인의 상태를 스스로 판단한 상태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되며 병원을 옮긴다 하더라도 흐름의 끊김 없이 의료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다.

이윽고 데이터가 새로운 자원인(Data is the new oil of the digital economy) 시대에 접어들었다. 2001년 ‘빅데이터’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한 이후 여러 학계가 이에 주목하고 있다. 세계경제포럼은 2012년 떠오르는 10대 기술 중 첫 번째로 빅데이터를 손꼽았고 대한민국 지식경제부 역시 IT 10대 핵심기술 가운데 하나로 빅데이터를 선정하였다. 블록체인은 빅데이터를 실현 가능케 해줄 기술이다. 세계경제포럼은 “2027년이면 전세계 총생산의 10%가 블록체인 기술로 저장될 것”이라고 예견하였다.

비교적 오랜 시간에 걸쳐 발전해온 ICT(Information and Communications Technologies) 기술에 비해 블록체인은 걸음마 단계이다. 특히 의료 분야에 적용되기에는 아직까지 넘어야할 산이 많다. 데이터의 표준화, 보안의 강화 등 보다 실용적으로, 현실적으로 이용될만한 블록체인 시스템을 찾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고 더 나은 의료시스템을 위해 그러한 노력이 반드시 행해져야 한다. 블록체인을 앞두고 의료는 또 한 번의 큰 변화를 준비하고 있다.

 

윤명기 기자 / 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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