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의 조용한 혁명: 입원전담전문의 제도에 대해 알아보자.

‘의료계의 조용한 혁명(Quiet revolution in Healthcare)’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는가? 이 말은 미국에서 시작된 입원전담전문의(이하 입원전담의) 제도를 뜻하는 말이다. 입원전담의 제도란 전공의가 아닌 전문의가 입원 환자만을 위해 병동에 상주하며 그들의 입원 초기 진찰, 경과 관찰, 간단한 처치 및 시술, 수술 전후 관리, 퇴원 계획 수립, 상담 등의 환자 관리하는 제도이다. 국내 의료계에도 17년 6월 입원전담의 제도가 시행돼 조용하지만 강력한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의료계라는 연못에 잔잔한 물결을 만든 돌멩이, 입원전담의 제도의 현황, 문제점 그리고 기대 방향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현재 입원전담의 시범 사업에는 서울아산병원을 필두로 한 17개 병원에서 68명의 전문의가 참여하고 있다. 참여하는 모든 병원은 내과 또는 외과 전문의를 입원전담의로서 채용하고 있으며, 해외의 경우를 비추어 보면 이것은 추후에 소아과, 산부인과, 가정의학과 전문의까지도 확장 가능하다. 이렇게 고용된 입원전담의 들은 입원 환자의 입원부터 퇴원까지 직접 책임지고 진료하며 입원 기간 동안 환자에게 필요한 전문 치료를 제공한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이 제도가 시행되는 민간 병원에서 환자 처치 및 투약은 기존에 비해 3.25배 신속했고, 입원 후 의사 진료는 기존에 비해 3.27배 빨랐다고 한다. 환자들의 만족도 역시 높다고 조사됐다.

입원전담의 제도는 주 7일, 1일 24시간 병동에 전문의가 상주함으로써 환자 안전성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병원에서는 주중의 오전을 제외하고는 전공의 1~2년 차에게 환자를 맡겨왔다. 하지만 입원전담의 제도가 생기면서 입원전담의가 이 업무를 대체해 환자들에게 더 높은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됐다. 긴급 상황이 발생했을 때 역시 더 전문적인 처치가 신속하게 이뤄질 수 있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제도 시행 후 전공의들의 수련 환경이 개선돼 전공의들은 입원전담의의 대체 근무로 인해 확보된 여유 시간에 각자의 의료 역량을 개발할 수 있게 됐다. 또한 일선 병원에서 잘 지켜지지 않던 전공의 주 80시간 근무제한 역시 비교적 잘 준수되어 병원 내 전공의들이 만족스러운 삶의 질을 영위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더불어 입원전담의들 역시 높은 삶의 질을 누릴 수 있다. 가령, 주 7일 근무를 하고 그다음 주는 7일 내내 휴가를 갖고 개인적인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이다. 근무가 팀 단위로 이뤄지기 때문에 팀 간 협의가 이뤄진다면 가능한 일이다.

 

그렇지만 빛이 있는 곳엔 항상 그림자가 있듯이 이 제도에도 굵직한 문제점들이 있다. 첫 번째로는 아직 이 제도가 시범 시행 단계에 있어서 입원전담의의 병원에서의 위치와 업무 등이 체계화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는 입원전담전문의협의회에서 발표한 조사에서 알 수 있다. 조사에 따르면 내년부터 입원전담의를 하지 않겠다고 답한 30%의 전문의들은 그 이유로 병원 및 집행부의 이해 및 의지 부족(40%)을 언급했다. 즉 입원전담의의 병원에서의 위치와 업무가 명확하지 않아 소속 병원이 제공하는 진료 지원이 부족하거나 근무자에 대한 이해도가 낮다는 것이다.

많은 의사가 갖고 있는 ‘내 환자’라는 인식도 개선돼야 한다. 자신이 진료하고 입원시킨 환자에 대해서는 본인이 책임져야 한다는 의사들의 생각을 바꿀 필요가 있다. 의사는 입원전담의 와 동등한 위치에서 입원 환자를 공동 진료하거나 입원전담의에게 자문 역할을 해주어야 한다. 따라서 이러한 인식 개선과 역할 분담이 선행돼야 한다.

두 번째는 입원전담의의 고용 불안정성이다. 모든 입원전담의는 현재 계약직 형태로 근무 중인데 전체의 68%가 정규직 전환 가능성에 대한 병원의 입장을 들은 바 없다고 한다. 재계약에 대한 조건이 명시돼 있는 계약의 비율도 13.6%에 그쳤다. 이런 상황은 입원전담의들이 자신들의 병원에서의 신분 보장을 의심하게 한다. 따라서 의사 개인의 입장에서는 불안이 남게 되고, 입원전담의 지원자가 줄어들어 제도의 유지를 어렵게 만든다.

세 번째로는 병원의 재정적 문제가 제기됐다. 초기에 책정된 수가가 낮다는 의견이 수렴돼 지난해 시범 수가를 40%까지 인상했지만 이 또한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평가가 나왔다. 현재는 전문의 수에 따라 1만 5000원부터 4만 3000원까지 별도 수가가 적용돼 있고 환자 본인부담금은 입원 1일당 약 2000~6000원 수준이다. 하지만 현 시범 수가는 간신히 수도권 대학병원 인건비를 맞출 수준으로, 지방 대학병원 인건비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입원전담의 제도에는 위에서 언급한 3가지 굵직한 문제점들 외에도 입원전담의의 책임성 부여 문제, 급여 문제 등 다양한 문제점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입원전담의 제도에는 이런 문제점들을 넘어서는 필요성이 있다. 환자들의 재원일 수, 재입원 감소 등 의료의 질을 높이고, 의료 사고를 방지해 환자 안전 강화하는 성과를 내기 때문이다. 더불어 이 제도를 먼저 도입한 해외 사례를 보면 입원전담의의 역할은 병원에 분명히 필요하다.

서울대병원 허대석 교수(종양내과)는 지난 2012년부터 입원전담의 제도 도입을 주장했다. 그는 “한국 의료계도 전통적인 의사 인력체계 틀에서 벗어날 시점”이라면서 “지금 의료계의 총체적 문제를 해결하려면 이 제도의 도입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라고 했다. 비록 해결해야 할 문제점들이 많이 남았지만 그 과정을 더 나은 한국 의료계를 만들기 위해 거쳐야 할 관문이라 생각하면 어떨까? 과도기를 겪고 있는 한국 의료계에 던진 허 교수의 외침을 되새기며 이 기사가 입원전담의 제도에 대한 각자의 생각을 정리해보는 계기가 되었기를 바란다.

 

곽민섭 기자 / 영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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