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 응급실 폭행사건에서 개정안 발의까지… 숨 가빴던 두 달여의 기록
사건의 발단, 전북 익산 모 병원 응급의학과장 폭행 사건
지난 7월 1일 오후 10시경 전라북도 익산의 모 병원에서 이모 응급의학과장이 술에 취한 환자에게 폭행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술에 취한 환자가 업무 중인 응급의학과장에게 시비를 걸며 머리채를 잡거나 얼굴을 가격하는 등의 폭행을 한 것인데, 이로 인해 이 과장은 코뼈 골절, 뇌진탕, 치아 골절 등의 상해를 입었다. 가해자는 경비인과 경찰이 도착한 이후에도 폭언을 하거나 의자를 발로 차는 등의 난폭한 행동을 계속했다. 심지어 가해자는 경찰 앞에서 이 과장에게 ‘교도소에 다녀와서 칼로 죽일 것’이라는 취지의 살인 협박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가장 충격적이었던 점은 경찰이 신변보호를 요청한 의사의 요구를 거절했으며, 담당 경찰이 없다는 이유로 고소장 접수를 미루고 사건 다음날 바로 가해자를 풀어줬다는 점이다.
응급의료인 폭행사건의 실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이 사건은 많은 국민들의 관심을 모으며 사건 직후 주요 포털사이트에 실시간 검색어 순위 상위권에 오르기까지 했다. 지난 7월 29일에는 전북 전주시 모 병원의 응급구조사와 간호사가 술에 취한 환자에게 발로 차이고 머리채를 잡히는 등의 폭행과 폭언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또 31일엔 술에 취한 대학생 환자가 구미차병원 응급실에서 침을 뱉고 옷을 벗는 등의 난동을 부리고 근무 중인 인턴을 이유 없이 쇠로 만든 트레이(쟁반)로 때려 인턴의 두피가 2㎝정도 찢어지고 동맥파열로 상당한 양의 피를 흘린 사건이 발생했다.
여러 단체들의 성명서 발표와 엄중한 처벌을 위한 목소리
이렇게 올해 7월 한 달 동안 언론에 노출된 응급실 폭행 사건만 세 건에 달했다. 하지만 의료인 폭행 사건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대한응급의학회에서 실시한 응급실 실태조사에 따르면 한 응급실에서 평균적으로 한 달에 1~2회 폭행사건이 발생한다. 또 응급의료인의 97%가 폭언을 들은 적이 있으며 63%는 폭행을 경험했다고 한다. 그리고 55%는 근무하는 중 생명의 위협을 느낀 경험이 있다고 한다. 이렇듯 의료기관에서 응급의료인들이 폭행에 노출되어 있기에 강력한 폭행처벌을 통해 이들의 진료권을 보장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응급상황에서의 의료인 폭행은 의료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폭행으로 인해 의료기관의 인력에 공백이 생기면서 실제 필요한 응급환자들이 치료를 받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최대집 의협회장은 의료인 폭행방지법 개정을 통해서 “국민의 건강을 수호하고 의사의 진료권을 보장받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현행법은 어떨까? 2015년 개정되어 현재 적용중인 응급의료법은 ‘의료행위를 방해하거나 응급의료를 위한 기물을 손상 또는 점거한 사람에게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병원의 평판에 대한 염려나 무관심으로 인해 실제 이 법대로 처벌이 내려지는 경우가 드물다는 점이다. 실제로 작년까지 응급의료법 위반으로 구속당한 가해자는 2013년에 1명, 그리고 2015년과 2017년 각각 4명에 그쳤고 대부분은 훈방되거나 소액의 벌금형을 받았다. 이러한 응급의료인 폭행에 대한 경미한 처벌에 대응해 대한병원의사협의회(병의협), 대한전공의협의회(KIRA), 대한의사협회, 대한응급구조사협회, 대한간호협회, 민주노총 의료연대본부 등등 수많은 단체가 성명서를 내 의료인 폭력사건 강력처벌과 재발방지에 대한 제도마련을 정부에 요구했다. 이 단체들은 한목소리로 “응급환자를 위해 24시간 진료 대기상태를 유지하는 의료진에 대한 폭행은 응급진료를 중단시켜 국민 생명을 위태롭게 하는 행위”라며 “안전한 진료환경을 위해 정부 차원의 대책을 즉각 수립하라”라고 촉구했다.
청와대 국민청원의 등장과 절반의 성공
이렇게 많은 보건의료인과 국민들이 응급의료인폭행 처벌강화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는 가운데 지난 7월 3일부터 8월 2일까지 “감옥에 갔다 와서 칼로 죽여버리겠다”라는 제목으로 청와대 국민청원이 진행되었다. 청와대 국민청원이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든지 어떠한 주제에 대해 청와대에 청원을 할 수 있고, 청원한 지 30일 이내에 20만 명 이상이 동의하게 되면 그 주제에 대해 청와대 측에서 책임 있게 답변해야 하는 제도이다. 의료분야에서는 권역외상센터와 관련해 청원수가 20만 명을 넘어 청와대가 개선책을 내놓은 전례가 있다.
이번 응급의료인폭행 처벌강화에 대해서도 청와대 국민청원 동참을 이끌어내기 위해 많은 의료단체들이 홍보에 나섰다. 지난 7월 26일 전남에서는 전라남도의사회, 각 지역 치과의사회, 전라남도간호사회, 광주전남간호조무사협회 등의 약 300명이 목포, 순천, 여수에서 가두 캠페인을 비롯해 의사들이 헬멧을 쓰고 환자를 진료하는 퍼포먼스를 진행하며 국민청원 참여를 독려했고, 대전에서는 대전시의사회, 대전시간호사회, 대전시약사회, 대전시치과의사회가 시민들을 대상으로 홍보물을 배포하고 서명을 받았다. 같은 달 27일엔 서울시의사회도 명동역에서 국민청원 독려대회를 개최했고 이밖에도 여러 의료인단체가 국민청원 참여를 홍보했다. 특히 그룹 클론의 가수 강원래 씨, 프로야구 박병호 선수, 안무가이자 무용수인 유한솔 씨 등의 공인을 비롯해 의료인이 아닌 많은 국민들도 SNS(Social Network Service)를 통해 청원의 취지에 공감하고 동참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홍보와 많은 국민들의 동참에도 불구하고 결국 8월 2일 국민청원은 14만 7885명이 동의한 후 마감되었다. 한 의료전문매체에 따르면 국민청원 참여인원이 아쉬웠던 이유로는 관심이 부족한 의료인이 많았던 점, 일부 의료인들은 발사르탄 이슈 등의 의료이슈와 많은 환자들로 인해 의료현안보다 환자 진료에 더 바쁠 수밖에 없었던 점, 주요 의료단체들 외에 다른 보건의료계 단체들의 동참을 충분히 이끌어내지 못했던 점 등이 거론된다고 한다. 비록 20만 명의 청원을 채우지 못해 청와대의 공식 답변을 들을 수는 없게 되었지만, 의료계에선 이번 움직임과 국민청원이 적지 않은 성과를 남겼다는 반응이다.
이전에도 의료인폭행 사건은 많았지만 일부의 일시적인 관심을 끌다 해결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묻히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하지만 이번 익산사건을 계기로 의사, 간호사, 간호조무사, 의료기사 등 의료계가 한목소리로 응급실 의료인 폭행 대책마련을 촉구했고 많은 국민들도 응급실 폭력에 대해 엄중한 처벌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다양한 SNS에서 표현했다. 이 덕분에 언론, 정치권, 행정부, 경찰청 등도 대책마련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응급실 의료인 폭행에 대한 전 사회의 지속적인 관심과 대책요구의 목소리로 인해 익산사건 가해자에게는 이례적으로 사건발생 5일 후 구속영장이 발부되었고, 각 부처에서도 나름대로의 대책을 내놓기 시작했다.
의료인 폭행 관련 법 개정안 발의
각 정당에서도 방법은 조금씩 달랐지만 의료인 폭행에 대한 실질적인 처벌 강화라는 취지에 있어서는 이견을 보이지 않았다. 의료인폭행방지법에 대해 야당인 자유한국당 소속 의원들이 먼저 개정안을 발의했고 뒤이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야당인 민주평화당 의원들도 개정안을 발의했다. 여당과 야당이 내놓은 개정안들의 내용은 조금씩 다르지만 핵심은 의료인에게 상해를 입혔을 때 가해자에 대한 처벌정도에 하한선을 두거나 벌금형을 삭제하는 등의 조치를 통해 처벌을 강화하고, 술에 취한 가해자에 대해서는 형을 감경하지 못하게 하거나 가중 처벌을 한다는 것이다. 일부 의원들의 개정안 중에는 피해자가 가해자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표시하면 처벌할 수 없다는 내용의 ‘반의사불벌’ 조항을 의료법에서 삭제한다는 내용도 담고 있었다.
이러한 법 개정을 통해 의료인 폭행에 대한 실질적인 처벌을 이룰 수 있다는 반응이다. 보건복지부도 국회와 긴밀히 협의해 의료인 폭행 사건 재발 방지를 위해 강력한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특히 보건복지부는 ‘의료인과 버스운전자는 국민의 생명을 책임진다는 측면에서 다를 게 없다’며 현재 버스운전자 폭행에 적용되는 특별범죄가중처벌법을 의료인 폭행에도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렇게 정치권의 각 부처에서 법 개정에 대한 의지를 드러내는 가운데 지난 8월 28일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를 가지면서 20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하반기 법안심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번에 상정된 법안들 중 의료인 폭행 처벌 강화가 많은 관심을 받고 시급한 상황인 만큼 국회와 정부 모두 이 법 개정 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보인다. 앞으로도 의료계와 국민들이 지속적으로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법 개정이 제대로 이루어지는지 살피는 태도를 보여야 대한민국의 모든 병원들이 진정으로 안전한 의료 시설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김준엽 기자 / 가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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