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로 나선 의사들

거리로 나선 의사들

오진 의사 3인 구속, 제3차 전국의사 총궐기대회의 도화선이 되다

논란이 불거진
의사 3명의 구속

지난 2013년 6월, 8세 소아 환자가 횡격막 탈장으로 사망에 이른 사건이 있었다. 당시 환자는 복통을 호소하며 4차례에 걸쳐 성남 소재의 A병원에 방문했는데, 의사들은 이를 변비로 진단하였고 변비약 처방과 관장만을 시행하였다. 이후 환자는 발열과 호흡곤란 등의 증상까지 동반되자 B병원을 찾았고, 결국 횡격막 탈장 및 혈흉에 따른 저혈량성 쇼크로 사망하였다. 이 사건에 대해 지난 10월 2일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은 당시 환자를 진료했던 응급의학과 전문의,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가정의학과 전공의 등 의사 3명에게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금고 1년 이상의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하였다.
이에 의사들은 크게 반발하였다. 의사들은 ‘의학적 판단을 형법의 잣대로 처벌하고 구속하는 것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사례’라며 이번 구속 판결에 대해 강력하게 비판하였다. 또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횡격막 탈장은 5~10세 소아에서 한 해에 2명꼴로 치료받는 희귀한 질환이며, X선 영상으로도 뚜렷하게 진단하기 어려운 질환이기 때문에 이를 오진했다는 이유로 실형을 선고하는 것은 과도한 처사라고 주장하였다. 법원은 환자가 반복적으로 병원에 찾았음에도 불구하고 흉부 X선 영상 결과 등 기본적인 검사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다는 점을 근거로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하였는데, 의료계에서는 이에 대해 고의성 여부를 조사하지 않고 결과만으로 판결을 내려서는 안 된다고 반박하였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엄격한 기준과 높은 업무강도 등으로 여러 방면에서 고초를 겪고 있던 의료계에 형사처벌이라는 또 다른 걱정거리가 등장하자 많은 의사들이 분노하였고, 이에 대해의사협회(이하 의협)를 중심으로 대규모 집회를 개최하였다.

총궐기대회 이모저모

지난 11월 11일 오후 2시,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는 ‘제3차 전국의사 총궐기대회’가 진행되었다. 의협 추산 1만 2천여 명, 경찰 추산 5천여 명이 참석한 이번 총궐기대회에는 의협을 필두로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계층의 의사들이 참석하였다. 특히 이번 총궐기대회에서는 전공의들이 많이 참석해서 눈길을 끌었다. 대한전공의협의회 이승우 회장은 “구속된 의사 3명 중 한 명이 전공의라는 알려지자 전공의들이 이번 사건에 대한 잘잘못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인식했다”며 이번 총궐기대회에서 전공의들의 참여가 많았던 이유를 진단했다. 또 각 지역별 의사회에서도 거리에 구애받지 않고 버스 등을 동원하여 많은 인원이 참가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대한응급의학회와 대한가정의학회 등 학회에서도 총궐기대회 이전부터 성명서를 통해 총궐기대회에 참석하겠다고 밝히는 등 많은 단체에서 적극적으로 이번 총궐기대회에 참여하였다.
한편 총궐기대회에서는 피켓을 들고 있는 의사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피켓에는 의사들이 국가에 요구하는 9가지 내용이 담겨 있는데, 그 문구는 다음과 같다. ▶ 진료의사 부당구속 국민건강 무너진다! ▶ 방어적인 진료조장 사법부가 책임져라! ▶ 적당진료 강요하는 의료구조 개혁하라! ▶ 의사면허 박탈법안 국민건강 박탈된다! ▶ 심평의학 족쇄풀고 최선진료 보장하라! ▶ 의과기기 한방사용 국민건강 파탄난다! ▶ 의정합의 말뿐인가 지금즉각 이행하라! ▶ 의료제도 바로세워 국민건강 지켜내자! ▶ 의료분쟁특례법 제정하라! 또 이러한 주장을 바탕으로 여러 가지 퍼포먼스를 선보이기도 하였다. 먼저 ‘러시안룰렛’ 퍼포먼스에서는 의료사고가 발생했을 때 사법부에서는 그 책임을 의료진에게 돌리고, 의사들은 언제든지 구속될지 모르는 처지에 있는 현 의료계의 상황을 마치 ‘러시안룰렛’ 게임과 같다고 빗대어 표현하였다. 두 번째로 최대집 의협 회장이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퍼포먼스를 진행하였다. 최대집 회장은 이 퍼포먼스와 함께 “현재 의료계는 위기 상황에 놓여있고, 시계를 거꾸로 돌려 위기 상황에 처한 의료계 현실을 바꿔야 한다”며 “벼랑 끝에 몰려 있기 때문에 당당히 우리 손으로 의권을 지켜내기 위한 투쟁을 시작해야 한다”고 호소하였다. 세 번째로는 최대집 회장을 비롯한 의협 임원진들이 청와대 앞에서 ‘감옥에 갇힌 의사’ 퍼포먼스를 진행하였다. ‘#형사책임’, ‘#면허취소_징역’, ‘#불가항력_구속’, ‘#심평의학’이라는 팻말이 붙어있는 철창에 갇힌 의사들은 의료계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의사의 상징인 흰 가운을 벗겠다고 소리쳤다. 그리고 입고 있던 가운을 벗어던지며, 청와대를 향해 의료계의 분노를 호소했다.

과제로 남은 여론의 공감과
흔들리는 내부 동력

작년에 있었던 KBS와 MBC의 파업 집회는 짧은 시간에 목표를 달성하고 빠르게 마무리된 반면, 최근에 있었던 사립유치원 집회는 목표에 다가가기는커녕 외려 자신들의 요구 사항에 반하는 법안인 ‘유치원 3법’이 국회에서 발의되고 현재 심사과정 중에 있다. 두 가지 집회의 가장 큰 차이는 국민의 공감을 얻었는지의 여부이다. 국민 여론이 공감하는 집단일수록 목표하는 바를 빠른 시간 내에 수월하게 이끌어낼 수 있다.
이러한 면에서 부족한 국민적 공감은 이번 총궐기대회의 숙제로 남았다. 최근 대리수술 문제와 수술실 CCTV 설치 반대와 관련해 의사들에 대한 국민 여론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집회를 개최하면서 의료계에 대해 비판하는 여론이 거세지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거리로 나온 의사들 총파업에 대해 적극 반대합니다! 사람의 생명은 누구나 소중합니다!’라는 청원이 등장하였고 53명이 동참하기도 했다. 또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정의당 윤소하 의원은 ‘의료기기 영업사원의 대리수술 문제, 대형 병원의 잇따른 의료사고, 범죄를 저지른 의사가 실형 선고 후 면허를 재교부받는 일 등에 대해 국민이 분노하고 있다’며 의료계의 자정 노력을 통한 국민적 신뢰 회복이 먼저라고 피력하였다.
또한 개원가 일각, 그리고 병원계에서도 의협이 강력히 주장하는 준법진료와 총파업에 시큰둥하게 반응하고 있다. 준법진료란 합법적인 범위 안에서만 진료를 하겠다는 것으로, 전공의 특별법에 따른 1주일 88시간 이내 근무 준수와 근로기준법에 따른 11시간 이상의 연속 휴게시간 보장 등이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것이 의료 인력이 부족한 의료현실상 불가능에 가까우며, 오히려 의사와 환자의 혼란을 가중시킬 수 있기 때문에 실현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주장했다. 또 총파업의 경우에도 의사들의 무관심과 참여도 저조, 성과 없는 투쟁에 대한 지지 약화 등을 근거로 총파업의 실행가능성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다. 실제로 이전에 개최되었던 두 차례의 총궐기대회보다 수치상으로 나타난 의사 회원들의 참여도가 저조하다. 제1차 총궐기대회에서는 의협 추산 약 3만명(경찰 추산 약 1만명), 제2차 총궐기대회에서는 의협 추산 약 5만 1천명(경찰 추산 약 7천명)이 참석한 반면 이번 제3차 총궐기대회에서는 의협 추산 약 1만 2천명(경찰 추산 약 5천명)이 참석하는데 그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총궐기대회에 참석했던 대한소아과학회, 대한가정의학회에서는 총궐기대회는 학회 차원에서 협의한 사항이기에 공식적으로 참석했지만, 총파업 참여는 회원들 개개인에게 맡긴다는 입장을 밝혔다.

총궐기대회 그 후

1심에서 구속되었던 의사 3인은 수원구치소에 수감되었다가 지난 10월 29일 유족 측과 합의를 하였고, 지난 11월 9일 보석으로 석방되었다. 그리고 불구속 상태로 지난 11월 16일부터 항소심이 시작되었다. 다음 공판은 12월 21일로 예정되어 있고, 항소심 판결은 내년 1월 중으로 내려질 것으로 예상된다. 의료계는 누구나 오진으로 실형을 받을 수 있다는 판례가 남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한편 의협에서는 총궐기대회에서 추후의 대응 수단으로 거론되었던 총파업과 관련해서 아직 뚜렷한 행보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의협 내부적으로도 구체적인 총파업 가이드라인을 합의하는 과정 중에 있고, 의료계 일각에서 총파업의 필요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며 신중한 반응을 보여 속전속결로 실행에 옮기기 어려운 실정이다. 또 대한한의사협회 등 타 직역 단체나 환자단체에서 이번 총궐기대회와 총파업 선언에 대해 강하게 비판하고 있어 의료계가 요구 사항을 호소하는 데 난항을 겪고 있다. 과연 의료계가 내?외부적인 갈등을 해소하고 바람직한 의료구조라는 목표를 원만히 얻어낼 수 있을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김태희 기자/인하
<hungrybear127@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