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 수술, 우리만 몰랐던 그들의 민낯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한 사건
지난 9월 13일, 부산의 한 버스 운전 기사 강씨가 숨을 거두었다. 강씨는 평소 어깨 충돌 증후군으로 인해 어깨 통증을 호소했다. 그래서 지난 5월 10일 부산의 한 정형외과에서 견봉 성형술을 받게 되었다. 수술이 끝난 저녁 무렵 강씨의 상태가 이상하다고 느낀 강씨의 부인은 병원의 의료진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나 의료진은 단순히 마취에서 깨어나는 속도가 느린 것뿐이라며 부인을 안심시켰다. 하지만 강씨의 상태는 더욱 악화되었고, 뒤늦게 119가 도착하고 나서야 심폐소생술이 시행되었다. 끝내, 운전 기사 강씨는 뇌사 판정을 받았고 뇌사 상태로 4달 동안 병실에 누워있다 세상을 떠났다.
44세의 이른 나이로 눈을 감아버린 강씨는 당시 아무런 지병도 없는 건강한 성인이었다. 그랬던 그가 돌연 비교적 쉬운 수술을 받고 뇌사 상태에 빠져들자, 유족들은 병원에 CCTV 자료를 요구했다. 그러나 병원은 이미 CCTV 자료를 삭제해버린 상태였고, 사건은 결국 경찰 수사로 넘어가게 되었다. 경찰은 우여곡절 끝에 CCTV 자료를 확보할 수 있었고, 양복을 입은 수상한 남자가 수술실을 들락거리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확인해본 결과, 양복을 입은 남성은 해당 정형외과에 납품하는 의료기기 판매업체의 영업사원이었다. 평범한 의료기기 회사의 사원인 그가 사실은 강씨의 목숨을 앗아간 수술을 집도한 것이었다.
이미 의료계에 고착화 되어버린 대리 수술
의사 자격증을 지니지 않은 사람이 수술을 집도하는 것은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그런데, 의료기기 업체 직원들의 말에 의하면 이와 같은 대리 수술은 이미 오래된 관행이라는 것이다. 의료기기 영업사원들은 수술 기구를 납품할 뿐만 아니라, 환자를 잡아주는 보조적 역할부터 수술을 집도하기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수술실에 관여하고 있었다. 심지어 수술을 집도하기로 예정되어있던 의사가 출근을 하지 않아, 의료기기 회사 직원이 수술을 대신 이끌어나가는 일도 있었다.
상식을 넘어선 이런 악행을 저지른 이유는 금전적인 이득을 취하기 위해서였다. 의료기기 회사 직원들은 회사에서 수술실 출입을 당연하게 여기는 분위기에 이끌려 의지와 관계없이 수술에 참여할 수 밖에 없었다. 또한 회사에서는 수술을 잘하는 사원을 우대하기 때문에 도무지 대리 수술을 거부할 수가 없었다. 반면, 병원은 대리 수술을 시킴으로써 적은 수의 의사로 더 많은 수술을 진행할 수가 있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병원의 이윤을 극대화시켰다.
엄연한 범법 행위, 처벌은 약해
의료법 제27조에 의하면, 의료인이 아닌 어떤 누구도 의료행위를 할 수 없다. 그리고 의료인이라 한들, 면허로 허용된 범위를 벗어난 의료행위는 할 수 없다. 따라서 의료 면허를 가지고 있지 않은 의료기기 회사 직원이 대리 수술을 하는 행위는 엄연한 불법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처벌은 다소 약해보인다. 의료법에 따르면 대리 수술을 사주한 의사에 대한 처벌로는 면허 취소나 1년 동안의 면허 자격 정지 처분을 내릴 수 있다. 그래서 대개 대리 수술로 면허 자격 정지를 당한 의사들은 1년 후 다시 업무에 복귀하기 마련이다. 혹여나 면허 취소 통보를 받더라도 3년 후면 면허 재교부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여전히 그들은 원활하게 사회 복귀를 할 수 있다.
의사만을 믿고 자신의 몸을 전적으로 맡긴 채 수술방에 드러누운 환자를 기만하는 이와 같은 행위는 윤리적으로 매우 잘못된 것이다. 그리고 환자를 속인 행위의 결과가 환자의 몸에 위해를 가했을 때, 그에 대한 처벌로 면허 정지 처분이나 재교부가 가능한 면허 취소 처분을 내리는 것은 뭔가 다소 부족해 보인다. 이처럼 대리 수술에 있어서, 의사의 도덕적 책임과 법리적 책임 사이에는 괴리가 있어보인다.
CCTV 설치 어떻게 될 것인가
이런 상황 속에서 경기도 지자체는 이미 10월 초부터 지자체 의료원 소속인 안성병원에서 수술실 내 CCTV 설치 시범 운영을 시작함으로써 발빠르게 움직였다. 더 나아가 내년부터는 대상을 6개 병원으로 확대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환자 및 소비자 단체에서는 수술실 내 CCTV 설치를 할 것을 촉구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또한 한국사회여론연구소에서 진행한 전국 여론 조사 결과, CCTV 설치에 찬성을 한 응답수가 82.8%로 집계되었다. 대리 수술을 근절하는 대책으로 CCTV 설치를 적극 활용할 것을 원하는 여론이 우세한 상황이다.
의료계의 입장은 사뭇 다르다. 의사 협회(이하 의협)는 대리 수술 의혹과 관련하여 매우 깊이 통감한다며 깊은 반성과 내부 자정 활동을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한 보다 적극적인 자정활동을 위하여, 정부에서 의협으로 일부 권한을 위임하여 독립적인 의사 면허 관리 기구를 설치하게 해달라는 요구를 하였다. 하지만 의협은 CCTV 설치에 대해서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CCTV 설치를 하게 되면, 의사들이 혹시 생길지 모르는 의료분쟁을 두려워해 소극적인 방어 진료를 하게 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이는 곧 환자에게 고스란히 피해가 전달될 것이며, 의료진과 환자의 신뢰관계도 무너뜨리기 때문에 전체 의료 차원에서도 좋지 않다는 의료계의 설명이다.
최선을 다해서 환자를 살리겠다는 의사의 책임감과 내 몸을 의사에게 맡기겠다는 환자의 믿음. 이 두 가지가 지금 의료계에 절실하다. 하지만 사사로운 이익에 사로잡혀 다른 이의 손을 빌려 수술을 하는 이들로 인해 우리의 꿈은 멀어져만 간다. 무너질 대로 무너져 어느 것부터 바로잡아야 할지 모르는 작금의 현실. 지금부터라도 하나씩 고쳐나가야 한다.
서영준 기자/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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