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일원화 – 의사와 한의사의 끝나지 않는 싸움
한의원 봉침 사망 사고에서
의료일원화 논쟁까지
지난 5월, 경기도 부천의 한 한의원에서 봉침시술을 받은 30대 교사가 아나필락시스 쇼크로 인해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 당시 봉침시술을 했던 한의사는 환자의 상태가 심각해지자 같은 층에 있던 가정의학과 의사에게 도움을 요청했는데, 한의사가 소송에 휘말리면서 도움 요청에 응했던 가정의학과 의사도 덩달아 유족들에게 소송을 당했다. 그러자 의사협회에서는 ‘한방 의료사고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히기에 이르렀다. 한편, 한의사들은 봉침 사고에 대한 대응책으로 ‘응급 대처를 위해 한의원의 에피네프린 사용을 허용해달라’는 주장을 내세웠다. 이에 대해 의사 측은 ‘근본적인 해결책은 제시하지 않고 엉뚱하게 현대 의약품을 사용하겠다는 억지만 부린다’며 비판했다. 이렇게 사건에 대해 서로 다른 시각으로 접근하면서 의사와 한의사가 충돌했고, 이 과정에서 의료일원화라는 이슈로까지 논점이 확대되었다.
의료일원화란 무엇인가? 우리나라는 의학과 한의학으로 구분되는 이원화된 의료 체계를 채택하고 있다. 환자에 대한 접근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하려다 보니 불가피하게 의사와 한의사의 대립과 각종 부작용이 발생한다는 문제가 있다. 이를 해결하고자 분리되어 있는 의료인 면허와 교육과정 등을 하나로 통합하자는 것이 의료일원화이다. 의료일원화를 추진해야 한다는 것에는 의사와 한의사 양측이 모두 동의하지만, 의학과 한의학을 어떻게 통합할 것인지에 대해 양측의 입장이 상이하여 20년이 넘도록 제자리걸음을 반복하고 있다. 그동안 의사와 한의사는 의료 활동 허용 범위와 관련한 논란이 발생할 때마다 서로 첨예하게 대립하여 번번이 합의에 도달하지 못했다. 2014년 12월에 ‘한의사의 현대 의료기기 사용과 건강보험 적용을 허가한다’는 내용이 포함된 규제완화 정책 (규제기요틴) 을 발표했을 때, 그리고 2015년 1월에는 보건복지부에서 ‘2015년 상반기 내에 한의사에게 허용할 수 있는 현대 의료기기 범위를 발표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을 때의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다. 의사협회는 한의사들의 요구가 수용될 경우 집단 행동을 취하겠다며 강경하게 대응하였고 한의사협회는 그러한 의사협회의 태도를 맹렬히 비난하였다.
의사협회 ‘한의사 제도 폐지해야’ vs 한의사협회 ‘한의사도 현대 의료행위 할 수 있어야’
의료일원화와 관련하여 의사 측은 일본식 의료일원화 모델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의학 교육을 의과대학으로 단일화하고 의료인은 의사 하나로 규정하며, 희망하는 경우에 한해 한의학의 일부를 추가적으로 공부하여 한방의료를 행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근거중심의학 (evidence-based medicine) 을 기반으로 하는 현대 의학과는 달리, 한의학은 충분한 과학적 근거 없이 한의사 개개인의 경험에 의존하는 의술을 펼치고 있다. 의사들은 이 때문에 한방의료가 국민의 건강과 안전에 피해를 줄 수 있고, 따라서 한의학 자체를 최소한으로 남겨두고 없애야 한다고 말한다. 이와 같은 맥락으로 지난 9월 대한의사협회 최대집 회장은 SNS를 통해 한의대와 한의사 제도 전면 폐지, 의과대학으로 단일한 의학교육 제도 확립 등을 골자로 하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한편 한의사 측은 의사 면허와 한의사 면허의 범위가 같아지도록 의료일원화를 추진해서 궁극적으로 의사와 한의사가 동일한 의료행위를 하는 중국식 의료일원화 모델을 지향하고 있다. 국민의 불편 해소와 건강 증진을 위해서 한의사들이 현대 의료행위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또 의대에서 배우는 과목의 70% 정도를 한의대에서도 배우고 있기 때문에 한의사들이 현대 의료행위를 하는 데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 지난 해 대한한의사협회에서는 ‘국민 10명 중 8명은 한의사의 현대 의료기기 사용에 찬성한다’는 통계 자료와 함께 ‘보다 더 정확한 진단과 안전한 치료로 국민들에게 최고 수준의 한의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 현대과학의 산물인 의료기기를 진료에 활용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성명서를 발표한 바 있다.
지난 8월 31일, 봉침 사망 사고에서 비롯된 의료일원화 논쟁을 마무리 짓기 위해 대한의사협회와 대한한의사협회, 보건복지부가 비공개로 의·한·정 삼자 협의를 진행했다. 논의 끝에 의료일원화를 위한 합의문이 발표되었지만, 이 합의문이 의사들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고 나온 것이라며 의사협회 회원들이 거세게 반발하자 결국 최대집 의협 회장은 의·한·정 합의문을 파기한다고 선언했다. 그러자 한의사협회에서는 일방적인 파기를 선언한 의사협회를 맹비난했고, 의·한·정 삼자 협의는 원점으로 돌아갔다. 비록 지난 국정감사에서 보건복지부 박능후 장관은 ‘의·한·정 협의체에서 상당 부분 합의가 이루어졌고, 조금만 더 서로에 대한 이해를 높인다면 합의문 추인도 가능할 것’이라 말했지만, 의사와 한의사들은 아직 서로를 향해 겨눈 칼날을 거두지 않고 있다.
밥그릇 싸움으로 비춰지지 않으려면
의료일원화 논쟁이 벌어질 때마다 의사와 한의사는 각각 ‘국민 건강을 위해서’ 라는 근거를 제시한다. 하지만 의료일원화 논쟁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반응은 냉랭하다. 국민들의 눈에는 의사와 한의사가 국민의 건강을 핑계로 각 집단의 이익을 추구하고 있다고 비춰진다. 이러한 불신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성급하게 일원화를 추진하기 전에 서로에 대해 조금 더 우호적인 자세를 갖고, 각자의 영역에 충실히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의학과 한의학은 근본적으로 다른 학문이지만, 의사와 한의사는 이 사회에서 모두 의료인으로 활동하기 때문에 공통적인 지향점이 있다. 이 공통점에 초점을 두고 차이를 좁혀나가는 방식으로 합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한의사들은 의사들이 왜 현대 의료행위를 한의사들에게 허용하는 것을 반대하는지에, 의사들은 한의사들이 왜 현대 의료행위를 하려고 하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서로를 이해하려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 또 한의사들은 ‘검증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극복하기 위해 한의학계 내부적으로 과학적 검증에 힘쓰는 모습을 보이고, 의사들은 한의학과 한의사의 존재를 존중하고 그들을 소멸시키려는 독단적인 시도를 하지 않아야 한다. 의료일원화 논쟁이 밥그릇 싸움이 아니라 진정으로 국민 건강 증진을 원하는 사람들의 논의라는 것이 국민들에게 전해진다면, 의사와 한의사 그리고 국민이 만족할 수 있는 최선의 의료일원화 방안을 도출할 수 있을 것이다.
김태희 기자/인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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