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구조사 업무 영역 확대를 둘러싼 의료계의 대립

-환자 치료 막는 오래된 의료법? 과잉 처치의 시작?

현재 대한민국엔 약 3만 5000명의 응급구조사들이 활동하고 있다. 응급구조사는 의사, 간호사를 비롯한 다른 보건 직종과는 달리 국가고시를 봐도 면허가 아닌 자격증을 발급받게 된다. 하지만 응급환자가 발생한 현장에서 상담, 구조 및 이송 업무를 수행하는 만큼 의료법 제27조의 무면허 의료행위 금지 규정에도 불구하고 응급구조사들은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는 범위 내에서 현장에 있거나, 이송 중이거나 의료기관 안에 있을 때에는 응급처치의 업무에 종사할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활동하고 있는 응급구조사는 1급과 2급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각 급에 따라 수행할 수 있는 응급처치의 업무 범위는 다음과 같다.

1급 응급구조사의 업무 범위

가. 심폐소생술의 시행을 위한 기도유지의 삽입, 기도 삽관

나. 정맥로의 확보

다. 인공호흡기를 이용한 호흡의 유지

라. 약물투여 : 저혈당성 혼수시 포도당의 주입, 흉통시 니트로글리세린의 혀 아래 투여, 쇼크시 일정량의 수액투여, 천식발작시 기관지확장제 흡입

마. 제 2호의 규정에 의한 응급구조사의 업무

 

2급 응급구조사의 업무범위

가. 구강내 이물질 제거

나. 기도기를 이용한 기도유지

다. 기본 심폐소생술

라. 산소투여

마. 부목, 척추 고정기 등을 이용한 사지 및 척추 등의 고정

바. 외부 출혈의 지혈 및 창상의 응급처치

사. 심박, 체온 및 혈압 등의 측정

아. 쇼크 방지용 하의 등을 이용한 혈압의 유지

자. 자동 제세동기를 이용한 규칙적인 심박동 유도

차. 흉통시 니트로글리세린의 혀 아래 투여 및 척신 발작시 기관지 확장제 흡입 (환자가 해당약물을 휴대하고 있는 경우에 한함)

1급 응급구조사 업무는 1급 응급구조사만 행할 수 있고 의사의 지도하에 이루어져야 한다. (구두, 전화, 무전 등) 단, 급박한 상황에서 통신이 불가능한 상황이면 의사의 지시 없이도 응급처치 수행이 가능하다. 2급 응급구조사의 업무는 경미한 응급처치로 분류되어 1급, 2급 모두 할 수 있고 응급구조사 단독으로 행할 수 있으며 의사의 지시가 필요하지 않다. 이렇듯 단 14가지로 응급구조사의 의료행위를 규정하고 있는 탓에 응급상황에서 환자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한 의료행위가 업무범위에서 벗어나 무면허 의료행위로 고소, 고발 당하는 응급구조사들이 상당히 많다.

의료법이 응급구조사들의 소극적인 의료행위를 이끌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의료법이 상당히 오랜 기간동안 개정없이 유지되어 응급의학과 의료기술의 발전을 반영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평이 상당하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제 33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응급구조사의 범위는 2003년 2월 개정 이후 전혀 보완이 없는 상태이다.이에 대해 지난해 11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간사 윤소하 의원은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보건복지부 장관이 5년마다 응급구조사의 업무범위에 대한 적절성을 조사하고, 이를 업무 지침에 반영해 응급구조사의 업무범위를 현실에 맞게 조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인데 이에 대해 의료계에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응급의학회 측은 “위원회 평가 결과로 응급구조사의 업무범위 수정을 강제하는 것은 폭넓은 의견수렴과 검증의 과정을 어렵게 한다”면서 “위원회 구성과 성향에 따라 응급구조사의 업무범위가 바뀔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또한 응급구조사들이 허용해 줄 것을 요구하는 약물에 대해서도 의료계는 강하게 우려하고 있다. 즉, 항알러지 응급치료제 에피네프린과 부정맥 치료제 아미오다론 등은 전문의도 신중하게 처방하는 것으로 자칫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보다 전문적인 교육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애초에 의료법상 무면허의료행위 금지 예외조항을 둔 것은 응급처치와 관련된 의료행위를 응급구조사가 단독으로 실시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인데 이를 확대하는 것은 의료인 면허권 사이에 불필요한 충돌을 야기할 여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지금도 일부 병원들에서 응급구조사들이 수술실 보조로 근무하거나 주사 및 봉합수술을 진행하는 사례가 다수 적발, 처벌받고 있는 상황에서 법적으로 이를 허용하면 걷잡을 수 없게 될 것이라는 얘기이다. 이러한 근거로 일부 의료계에서는 현재의 경직된 응급구조사 업무상황을 인정하면서도 개정안이 지나치게 많은 부분을 허용하고 있다며 개정안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응급환자를 대상으로 한 섣부른 초동치료는 나쁜 예후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업무범위 확대에 있어서 신중해야 함은 분명하다. 환자의 생명이 달린 사안인만큼 의료계의 적극적인 협조를 뒷받침한 개정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우원경 기자/을지

<woo0mind@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