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료 없어 수술 못 해요” – 고어사 인공혈관 사태

2년 전 국내에서 철수한 고어사, 인공혈관 없어 수술 못 할 위기

 

사람은 2개의 심방과 2개의 심실을 갖고 있다. 우심방으로 들어온 피는 우심실, 폐, 좌심방, 좌심실을 거쳐 전신으로 순환한다. 하지만 그렇게 태어나지 못하는 아기들도 있다. 제대로 기능하는 심실이 1개인 선천성 심질환을 갖고 태어난 아기들은 적절한 수술을 받지 못하면 경우에 따라 청색증(cyanosis)이 심해지거나 심부전(heart failure)이 발생한다. 이 환아의 몸에 혈액이 적절히 돌기 위해서는 정맥(SVC, IVC)에서 우심실을 거치지 않고 바로 폐동맥으로 이어지는 길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바로 폰탄 수술(Fontan operation)이다.

이 아이들이 다른 이유도 아닌 수술 재료가 없어 수술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 놓였다. 폰탄 수술의 재료로 사용되는 인공혈관은 오직 미국의 ‘고어 앤 어소시에이츠(Gore & Associates)’ 사(이하 ‘고어사’)만이 독점적으로 생산해 공급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에 공급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가격 문제가 원인이라고 한다. 세계적인 수준의 의료진과 병원을 가진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왜 수술 재료가 없어 생명을 살리지 못하는 위태로운 상황이 벌어진 것인지, 본 기사에서 이 사건의 원인과 흐름을 짚어보고자 한다.

올해 인공혈관 공급중단 사태가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지만, 사실 고어사가 공급중단을 선언하고 우리나라에서 메디컬 사업부를 철수한 것은 2년 전인 2017년이다. 당시 고어사의 철수 소식을 접한 국내 대형 병원에서는 미리 경쟁적으로 인공혈관의 재고를 확보해두었다. 하지만 이제는 재고가 소진되어, 더는 남은 인공혈관이 없고 수술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생기자 사태가 커진 것이다. 작금의 상황은 2년 전 이미 예고된 것이다.

 

고어사 철수의 배경은 수가 인하와 GMP 인증 갈등

 

그렇다면 고어사가 국내 시장에서 철수한 이유는 무엇일까? 크게 두 가지 원인이 있다. 하나는 보건복지부에서 정한 인공혈관의 수가가 너무 낮아 회사의 수익이 잘 나지 않았다는 것이고, 둘째는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와 고어사 사이의 갈등이 커졌다는 것이다.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하 ‘심평원’)은 인공혈관의 수가를 지속해서 인하해왔다. 지난 2012년에는 인공혈관의 건강보험수가를 최대 22% 인하했고, 이어 2016년에는 19% 추가 인하를 단행했다. 이에 따라 2017년 철수 당시 국내에 공급되는 고어사 ‘STRETCH TYPE(보험 코드 G0434004)’의 보험 상한가는 약 46만 원이었다. 반면 같은 제품이 미국 시장에서는 80만 원대, 중국 시장에서는 140만 원대에 공급된다. 회사로서는 제조 원가, 국내 GMP 유지비, 의료기기 품목 시험 갱신비, 포장/운송비 등을 유지 비용으로 지출해야 하므로 비용보다 매출이 크지 않아, 중간이윤이 별로 없는 판매를 지속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더군다나 한국에서 가격을 인하하여 공급한다면 다른 나라의 더 큰 시장에서도 가격 인하 압력을 받을 수 있으므로 한국 시장을 포기하는 것이 고어사 입장에서는 이득이라고 판단했을 수 있다.

또한, 수가 인하 과정에서 정부에서 원가를 조사하기 위해 회사에 기밀 자료를 요구하고 승인을 위해 까다로운 조치를 요구하며 정부와 고어사 사이의 갈등이 커진 것도 철수한 이유다. 해외 의료제품을 국내에 판매하기 위해서는 GMP라는 품질보증절차를 3년마다 받아야 한다. GMP는 의료기기의 개발부터 출하까지 모든 공정에서 품질을 검증하기 위한 제도로, 2007년부터 시행돼왔다. GMP 인증에는 해외 제조원으로의 현장 실사가 포함된다. 이 과정에서의 모든 비용은 신청한 업체가 부담해야 하는데 한 번의 실사에 최소 3000만 원 이상을 부담해야 한다고 한다. 이런 절차 중에 식약처의 ‘갑질’이 크다는 것이 업계의 주장이고, 고어사도 마찬가지로 불만이 커진 것이다.

 

 

우리나라의 치료재료 상한금액 결정 방식은?

 

인공혈관 공급중단의 배경을 살피기 위해 다른 나라와 우리나라의 의료재료 가격 결정 방식이 어떻게 다른지 비교해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치료에 쓰이는 재료의 가격을 정하는 것은 단순한 재료 가격의 문제가 아니고 의료 행위에 대한 가격을 책정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전 국민 건강보험을 시행 중인 우리나라에서는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이 문제를 다루고 있다.

미국의 경우 우리나라와 달리 시장 원리에 의해 의약품의 가격이 결정된다. 독점적인 회사라 할지라도 특허가 유지되는 동안 최대한 많이 판매하기 위해 지나치게 비싸지는 않은, 적당히 비싼 가격에 약이 판매된다. 이런 상황에서 약 공급이 중단될 일은 없지만, 환자에게는 보험이 없으면 부담이 크기 때문에 미국은 민간 의료 보험이 매우 발달한 나라가 되었다.

우리나라는 1977년 의료 보험이 시작되며 정부가 의약품 가격을 통제하게 되었다. 실제 시장에서 거래되는 의약품 가격의 평균에 근접한 가격으로 제약회사와 건강보험공단이 협상하여 공급 가격을 결정한다. 수요독점을 가진 정부가 강력한 협상력을 발휘하면서도 미국과 같이 시장 경제적인 요소를 적절히 고려하여 상호 간에 합의를 이루는 방식이다.

치료재료는 가격 책정 방식이 약과 다르다. 협상이라는 장치 없이 복지부가 정하는 공식에 따라 수입 원가에 정해진 값을 곱하는 방식으로 가격이 결정된다. 개발 과정과 유통 과정에 상관없이 ‘원가’에 의해 가격이 결정된다. 복지부가 직접 조사해서 정하는 ‘원가’가 어떻게 측정되는지 논란의 여지가 크고, 판매까지 과정에서 필요한 GMP 등 각종 승인 절차의 비용은 빠져있어 문제가 있다는 의견이 많다. 이번 고어사의 인공혈관 공급중단 사태도 이러한 제도적 배경에서 발생한 것이다.

 

사태에 대한 환자단체, 의료계의 상반된 반응

 

이 사태에 대해 각계에서 다양한 의견을 표시했다. 고어사의 행태를 비윤리적이라 비판하는 주장과 정부의 저수가 정책과 과도한 규제로 인해 문제가 터졌다는 주장이 대립한다. 한국 선천성심장병 환우회에서는 정부도 책임이 있지만 가장 큰 책임은 제조사의 비윤리적인 행위에 있다고 주장했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도 “어린아이들의 생명을 사지로 몰고 있는 고어사의 반인권적이고 비윤리적인 행위를 규탄한다.”라고 성명에서 밝혔다. 한 환아의 가족은 수술을 받을 수 있게 해달라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글을 올렸고 2019년 4월 20일 현재 15700여 명이 참여했다.

의료계에서는 쌓였던 문제를 미봉책으로만 풀어온 정부의 책임이 크다는 입장이다. 대한의사협회에서는 “국민 생명을 방관한 정부는 반성하고, 사태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한편 대한 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 학생협회와 연세의대 학생회는 “이 사태에서 의료계가 정부 당국의 낮은 보험가격 책정을 비판하는 것은 반쪽짜리 답안”이라며 “의료의 본질은 산업이 아니며 복지라는 말을 다시 떠올리며, 저희는 ‘이윤보다 생명’이라는 가치를 말하고자 합니다”라는 내용을 담은 성명서를 게시했다.

 

고어사, 인공혈관 20개 국내 공급 결정

 

고어사가 2017년 철수한 뒤 국내 병원들이 비상으로 마련한 재고로 버텨오며 예고된 재료 부족 사태가 터지기 전까지 정부에서는 어떤 대비책을 세웠을까. 고어사가 밝힌 바에 따르면 올해 요청이 들어오기 전까지 2년간은 한국 정부로부터 인공혈관 공급에 대한 요청을 받은 사실이 한 번도 없다고 한다.

하지만 정부의 긴급 요청에 고어사가 소아용 인공혈관 20개를 우선 공급하겠다고 결정했다. 올해 3월 15일 식약처와 보건복지부는 고어사와 긴급 화상회의를 했고, GMP 인증절차를 일단 면제해 주겠다고 하고 철수 당시 가격의 3배인 137만 2000원에 인공혈관 20개를 구매했다. 고어사는 공식 입장문에서 “한국 철수를 둘러싼 인도주의적 염려를 잘 인지하고 있다”라며 “의료기기 수입을 위한 규제 처리 방법을 협의하고자 식약처와 건설적이고 유의미한 논의를 진행했다”고 했다.

다행히 당장 급한 불은 끌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는 몇 개월의 시간을 벌었을 뿐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고어사가 다시 한국에 진출할 생각이 없다는 입장을 밝힌 후 이 입장에 대한 극적인 변화가 나타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한편 지난 협상에서 몇몇 재료가 빠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3종의 인공혈관 20개는 공급되어 수술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다른 일부 환아의 수술에 필요한 인공혈관 4종 등 재료가 빠졌다. 정부에 의하면 현재 고어사와 정부 사이에 공급 재개를 다시 협상하고 있고, 이른 시일 내에 공급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한다. 고어사 인공혈관 사태가 신속히 해결되어 환아들이 필요한 치료를 받을 수 있기를, 그리고 재료가 없어 치료를 받지 못하는 사태가 다시 벌어지는 일이 없도록 최선의 노력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해본다.

 

김경훈 / 울산

gutdoktor@naver.com